까마득해서 잊은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수능날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7시 기상. 따뜻했던 샤워.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 엄마 아빠랑 같이 수능 장소로 가는 차 안. 차가 막힌다며 말다툼하는 엄마 아빠. '무슨 이런 날에 내 앞에서 싸우나?' 하며 남일인 양 뒷좌석에서 창문 밖만 보던 나.
수험장 정문. 그 앞에서 엄마 아빠한테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0.1초 동안 했던 고민. 쑥스러워 안 하기로 빠르게 결정.
시험 볼 학교 건물. 계단. 4층. 교실. 책상. 책상 오른쪽 위에 내려놓은 은색 스와치 손목시계. 많은 문제를 찍어야 했던 1교시 언어. 2교시 수리 끝나고 운동장 구석 농구 골대에 친구 네 명이서 쭈그려 앉아서 먹었던, 반도 넘게 남겼던 도시락. 밥 먹으면서 친구 한 놈이 불문율을 깨고 수리 문제 답이 어쩌고 저쩌고 해서 필사적으로 틀어막은 귓구멍. 어려워서 당황했던 외국어. 도무지 답이 안 보여서 문제가 잘못된 건 아닌가 싶었던 사탐. 제2외국어 시험지 나눠주는 감독관을 보며 들었던 생각, '이제 진짜 마지막이구나'. OMR 카드 작성을 마치고 창밖으로 보이던 노을.
끝나고 쫄래쫄래 타고 온 버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방에 들어가 문 닫고 했던 가채점. 내 생에 최고의 점수. 놀라서 방을 뛰쳐나가며 지른 소리. "나 다섯 개 틀렸어!!" 그 소리에 놀라서 각자의 방에서 뛰어나왔던 엄마 아빠, 누나. 그날 저녁 먹었던 삼겹살. 친구들이랑 문자로 주고받은 가채점 점수들. 얘는 얼마래, 쟤는 얼마래. 자려고 누우니까 비로소 스멀스멀 떠오르던 OMR 작성 실수에 대한 걱정. 동시에 다음날 학교 가는 게 은근히 기대되던 밤.
이 모든 게 14년 전, 2004년 11월 17일, 내가 수능을 봤던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
비록 어제서야 내일이 수능이라는 걸 알았지만 부디 내일 수능 보는 모든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