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를정한일 Feb 15. 2021

컵라면 속에서 외친 대한민국 만세

(*) 본 글은 생생한 현장감 전달을 위해 제 평소 구어체와 사고의 흐름을 살려서 작성하였습니다. 


컵라면 안에는 물을 붓는 적정선이 있다. 나는 적정선보다 아주 살짝 물을 더 부어 먹는 걸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딱 내 입맛에 맞는  0.1mm 간격의 맛존(맛zone)이 있다. 반면 와이프는 적정선보다 살짝 물을 덜 넣어서 짭조름하게 먹는 걸 좋아한다. 조금이라도 물을 더 넣으면 귀신같이 “물 많이 넣었어?”하고 알아챈다. 이렇듯 컵라면에 물을 붓는 데에도 사람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다. 오늘 아침 컵라면에 물을 붓다 문득 대만에서 컵라면을 먹던 날이 떠올랐다.


2010년 2월, 대만으로 현지 초등학생 영어 가르치기 봉사활동을 갔다. 말은 영어 교육 봉사였지만 실상은 대만 초등학생들과 놀아주는 거였다. 국제 대학생 연합 봉사 동아리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이어서 인도네시아, 캐나다, 브라질 등등 세계 각지에서 학생들이 참여했다.

 

하루는 봉사활동을 마치고 봉사활동 참여자들과 다 같이 컵라면을 먹었다. 대만 컵라면은 어떤 맛일까 기대하면서 컵라면 봉지를 뜯었는데, 웬걸 물 붓는 선이 없는 게 아닌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물 붓는 선이 없는 컵라면을 본 25살 한국인(=나)은 당황했다. 주위를 둘러봤는데 거기서 당황한 사람은 나밖에 없어 보였다. 우물쭈물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대만 친구에게 물어봤다.

 

당시의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영어와 번역을 같이 하도록 하겠다. 참고로 영어 교육 봉사를 했다고 했지 영어를 잘한다고는 안 했다.

 

"Where is the water line?" (물 붓는 선은 어딨어?)

 

친구는 '얘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컵라면 먹는데 water line을 왜 찾고 있어.'라는 눈빛만 줄 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There's no water line. How much should I pour the water?" (물 붓는 선이 없어. 어디까지 물을 부어야 할지 모르겠어.)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날 보고 있다. 도무지 이 한국인(=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빛만 오고 가며 모두가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민망한 상황. 갑자기 캐나다에서 온 (당시) 22살짜리 여자애가 성큼성큼 나한테 걸어오더니 내 손에 있던 컵라면을 휙 가져가면서 말했다.

 

"J! Just pour the water!" (제이! 그냥 물 부어!)

(당시 내 영어 이름은 J였다. 당시라고 하는 이유는 나는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영어 이름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내 컵라면에 물을 콸콸콸 쏟아부었다. 그러면서 덧붙인 그녀의 한 마디.

 

“J! You’re like such a baby!” (제이! 넌 참 애 같구나!)

 

참회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 나는 얼마나 such a baby였는가. 고작 물 붓는 선 하나 없다고 컵라면에 물도 못 붓고 있었다니. 애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어머 저 Korean은 컵라면에 물도 알아서 못 붓나 봐. 정말 hand가 많이 가는 애네. 한국 대학생들은 저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라고 생각했을까. 

 

아. 우둔한 J여. 물 붓는 선 하나 없다고 컵라면도 못 붓는 J여. 선 하나에 이렇게 얽매이고 지배당해 살았으면서 이제껏 얼마나 많은 시건방을 떨며 살아왔는가. 역시 대륙에서 온 이 캐나다인은 다르구나. 나보다 세 살이나 동생인데, 하는 행동은 세 살 누나처럼 거침이 없구나. Niagara Fall처럼 물을 붓는구나.  

 

강제 참회 가운데 어느덧 컵라면은 면이 물에 다 잠길 정도로 차오르고 있었다.

 

'어느 정도까지 물을 부을까. 이 캐나다 청년은 물 붓는 선도 없는데 어떻게 나에게 최상의 맛을 선사할 것인가!'

 

내심 기대하며 얼굴을 들어 캐나다 청년의 얼굴을 봤는데 얼굴이 돌처럼 차분했다. 바로 그 순간. 그 돌 같은 차분함을 느꼈던 순간. 그녀의 손에서 내 컵라면을 뺏어왔어야 했다. 그녀는 눈 뜨고 자는 듯한 초점이 없는 눈으로 계속 물을 부었다.

 

'아?' 할 틈도 없이 계속 물을 붓는다.

 

'앗? 뭐지? 말려야 하나?' 할 땐 이미 늦었다. 컵라면은 생맥줏집에서 파는 맥주잔처럼 물이 찰랑찰랑거릴 정도로 가득 찼다. 컵라면을 가득 채운 수면을 바라보며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한데 내 컵라면뿐만 아니라 다른 봉사자들의 컵라면도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진짜 이렇게 먹는 거라고? 대만 컵라면은 원래 물 많이 넣어서 먹는 건가?'  

 

잠시 뒤 물이 넘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라면을 휘저은 후, 면 한 젓가락을 살며시 입으로 가져갔다. 두 단어가 떠올랐다.

충격과 공포.

 

너무나도 밍밍한 맛에 충격을 먹었고, 그걸 열심히 먹고 있는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의 모습에서 공포를 느꼈다. 배가 고파서 어찌어찌 다 먹었지만 그 거침없던 캐나다 청년은 내 인생 유일한 대만 컵라면을 정말이지 호탕한 기운으로 담가버렸다.

 

한국 사람들이 피곤하고 빡빡하게 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덕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컵라면 하나는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나저나 지금은 대만 컵라면에도 물 붓는 선이 생겼을까 궁금하다. 부디 생겼기를 대만 컵라면을 위해 조그맣게 기도를 올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