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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Feb 15. 2021

읽씹 vs 안읽씹

(*) 읽씹 / 안읽씹 : 읽고 씹다 와 읽지 않고 씹다의 줄임말.

요즘 메신저에는 내가 보낸 메시지를 상대방이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내가 보낸 메시지 앞의 숫자가 사라지면 상대방이 읽은 것이다. 


처음 이 기능이 나왔을 때 어떻게 이런 기능을 생각했을까 참 획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상대방의 메시지를 미리 보기로 확인하고 답장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나서 인생이 피곤해졌다. 메시지를 미리 보기로 보면 메시지 내용을 다 보면서도 상대방에겐 본인이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메시지를 미리 보기로 확인하고 답장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진심으로 놀랐다(사실 그런 기능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다). 상대방에게 본인이 메시지를 읽었다는 걸 알리지 않기 위해 메신저를 켜지 않고 휴대폰 바탕화면에서 미리 보기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할 말 없으면 그냥 읽고 답장 안 하면 되지 않아?"  

"그럼 상대방이 기분 나쁘잖아.”


과연 그게 합리적인 말인가 의아했다.


읽씹 당하면 '얘 읽고 씹네?’하면 그만이다. 복잡한 해석이 필요 없다. 사이가 좋으면 상대는 답장을 하려다가 갑자기 일이 생겼거나 아님 딱히 할 말이 없거나 아님 원래 그런 식으로 대화를 잘 끊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이가 나쁘면 상대의 읽씹은 나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명확한 신호다. 얼마나 깔끔한가.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혹시나 무슨 사고가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불필요한 상상에 빠질 일이 없다. 


반면 1이 사라지지 않으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읽었는데 안 읽은척하는 거 아냐?’ 에서부터 ‘휴대폰을 잃어버렸나?’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교통사고라도 난 거 아닌가? 내가 마음에 안 드나? 혹시 무슨 불만 있는 거 아냐? 날 차단한 건가?' 등등 끝이 없다. 사라지지 않는 1이 신경 쓰여 머릿속은 온통 잡생각으로 가득 차고 시도 때도 없이 1이 사라졌는지 메신저를 확인하게 된다. 내가 보낸 메시지의 숫자는 사라지지 않았는데 다른 단톡 방에서 그 사람이 말을 하면 아무리 친해도 기분이 조금 상한다. 

 

내 메시지 앞의 숫자가 사라지지 않으면 신경이 쓰인다. 미리 보기로 확인하고서 안 읽은 척하는 거 같다. 읽고 안 읽은 척 당하는 거보다 읽고 답장이 없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


굳이 지인들에게 내 카톡은 차라리 읽씹 해줘 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마음만은 나는 내 사람들과 서로 당당하게 읽씹 해도 개의치 않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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