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독 매미 소리가 귀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유난히 무더웠던 날씨 때문에 매미들도 덥다고 맴맴 울부짖는걸까. 올해를 기점으로 20보다는 50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서 자연의 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된 걸까.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이유는 있다. 바로 1층으로 이사 왔다는 것이다. 하하하.
물론 작년에도 1층에 살았다. 하지만 작년엔 회사를 다녔고 올해는 육아휴직을 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평일 기준 평균 10시간 정도 더 많이 늘었다. 한 번은 방에서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친구가 매미 소리에 밖이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이상 24시간 내내 (잠재적) 매미 울음소리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사방팔방에 나무는 왜 이렇게 많은지. 2년 가까이 거기에 나무가 있었는지 알지도 못 했던 나무들을 매미소리 덕분에 인지하게 됐다. 나무에 붙어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화를 낼 수도 없고 피할 수 없으니 즐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득도를 통해 초월할 수도 없다.
매미 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에피소드 또한 무려 20년이 다 돼간다. 때는 20살. 대학교 새내기 때. 공강인 친구들 넷이 잠시 교내 카페에 모였다. '20살, 새내기, 공강, 카페'의 단어가 조합된 자리였던 만큼 그저 풋풋하고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다가 매미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친구 하나가 말했다. "매미 너무 부럽지 않아?" "응? 왜?" "7년 동안 계속 잠만 자다가 2주 동안 바싹 열심히 살고 죽잖아. 나도 잠만 자다가 빡 짧고 굵게 살다 죽었으면 좋겠어."
그 친구의 말에 모두가 빵 터졌다. 나도 빵 터졌다. 친구가 재밌게 말을 한 것도 있었지만 너무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제 막 20살에 대학교에 입학한 친구가 왜 그런 생각을 하지? 그만큼 인생이 힘들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그 친구의 말이 이해가 된다. 물론 그때도 이해는 됐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이해한다고 표현해야 정확한 걸까. 솔직히 그때 그 친구에게 약간의 우월감* 같은 걸 느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보다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이 또한 틀렸던 생각이라는 걸 안다. 그저 누군가가 뱉어내는 말 한마디로(또는 보이는 단편적인 모습으로) 누가 행복하고, 누가 불행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안다.
(*) 내가 느낀 우월감이 이 에피소드를 완성한다. 실제로 친구의 매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되뇌게 된 건 내가 취직을 하고 난 이후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잊고 있던 친구의 매미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20살 때 느꼈던 내 우월감이 꽤나 건방졌다는 생각도 함께 떠올랐다.
얼마 전에 첫째 딸 하원 버스를 기다리는데 내 옆으로 지나가던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와!! 매미 껍데기다!!" 그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등껍질이 벗겨진 매미 번데기 껍질이 나무에 붙어 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본 매미 껍데기인가. 저 아이가 가리키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겠지? 바로 눈 옆에 있었는데 말이지. 근데 매미 껍데기 색깔이 이렇게 밝고 영롱했나? 매미가 껍데기에서 부화(?) 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보구나. 이거 엄청 고단백질이겠지? 야생에 조난당하면 이런 거 찾아서 먹어야겠지? 개미들이 와서 가져가나?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이 껍데기가 지난 7년 동안 땅속에서 잠만 자다가 방금 막 땅 밖으로 나왔고 앞으로 2주 동안 살다가 죽을 매미가 나온 그 껍데기란 말이지. 그 매미는 지난 7년이 행복했을까. 앞으로의 2주가 더 행복할까. 난 지금 행복한가. 불행한가.
매미 껍데기 보고 느닷없이 행복과 불행을 논하는 진지충이 되어 있는데 이내 첫째 딸 하원 버스가 왔다. 딸을 데리고 곧장 매미 껍데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딸 저게 뭔지 알아? 매미 껍데기야. 매미는 태어나서 7년 동안 땅속에서 잠만 자다가 이제 나와서 날개 달린 매미가 되는 거야." 딸은 나에게 안아서 더 가까이에서 매미 껍데기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렇게 2초 정도 보더니 딸이 그만 내려달라면서 말했다.
"아빠."
"응"
"초콜릿 먹고 싶어."
그래. 매미고 뭐고. 다 알게 뭐야.
딸, 집에 가서 우리 초콜릿이나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