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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Mar 14. 2021

[워코밸3부작] 1부 하루아침에 꿈의 직장

(*) 워코밸 : Work-Corona Balance. 워크-코로나 밸런스의 준말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새롭게 형성되는 일과 삶의 균형, 새로운 근태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 글의 제목을 생각하다가 내가 만들어냈고 다분히 끼워 맞췄기 때문에 괜히 어디 가서 써먹지 않길 권장한다. 




육아휴직을 전에 이직 준비를 했었다. 이직 준비라고 해봤자 할 수 있는 건 가고 싶은 회사의 채용 공고를 확인하고 자소서를 써서 제출하는 일뿐이었다. 직접 지원한 회사에서 모두 서류 탈락을 하고 난 후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놨다.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자주 헤드헌터들에게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직할 회사에 합격한 것도 아니고 단지 헤드헌터들이 나에게 특정 회사의 특정 Job position에 지원해볼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는 연락뿐이었지만 그들이 판단하기에 내가 합격할 경쟁력이 있으니까 연락이 왔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연락만으로도 자존감이 높아지고 내가 무언가 되는 기분이었다.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전혀 모른 채 나의 스펙만으로만 인정받는다는 건 묘한 희열이 있었다.

 

하지만 희열이 밥 먹여 주진 않는 법.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퍼가 들어오는 모든 회사는 내가 다니고 있는(=떠나고 싶어 하는) 회사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한 증오심이 극에 달할 시기였음에도 내심 헤드헌터들이 권하는 회사에 이직할 거면 그냥 남는 게 낫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날을 잡아 그때까지 한 번이라도 연락을 준 모든 헤드헌터들에게 메일을 돌렸다. 내 이력서, 그동안 경력직으로 지원한 모든 회사 명단과 자소서를 첨부한 후 내가 이직에 있어 원하는 조건을 명확히 썼다.  

 

"딱딱한 대기업을 벗어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회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곳이면 가장 좋습니다. 연봉이 많이 깎여도 상관없습니다."

 

이 메일을 보낸 이후로 헤드헌터들의 연락은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뚝 하고 끊겼다.

 

좌절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어렸더라도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탓하며 괴롭히는 대신 의식적인 자기합리화로 고개 떨구려는 내 자존감의 멱살을 끌어 잡아 올렸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게 있다면 자기 합리화에 죄책감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 해줄 회사는 대기업 중에는 없을 것이다. 스타트업, 그중에서도 거의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 정도 돼야 어떻게든 사람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조건을 받아들여줄 가능성이 있다. 회사와 구직자를 연결해 주고 돈을 버는 헤드헌터들은 굳이 그런 스타트업에 구직자를 연결해 줄 필요가 없다. 수당이 높은 대기업 위주로 사람을 연결해 주고 싶어 할 것이므로 대기업에 취직할 일 없는 난 그들의 포트폴리오에서 아웃됐을 것이다.'라고 믿기로 했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연락을 주신 헤드헌터가 딱 한 분 있었다.

 

"좋은 잡 포지션이 있는데요. 대리님이 원하는 조건을 들어주려면 그 회사에서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아먹었다.

 

"없어요."

"네?"

"그런 거 없어요. 그래서 연봉이 많이 깎여도 된다고 한 거였어요." 

잠시 정적. 

"이 회사가 참 기업문화 좋기로 소문나고 자유로운 곳인데요. 대리님이 원하는 정도로 자유로울지 모르겠어요."

 

그 회사는 대기업이었다. 아무리 자유로운 곳일지언정 자유로운 근무시간을 허용해 줄 대기업은 없다. 끈질기게 연락 주시는 헤드헌터 분이 고마워서라도 면접을 한 번 봐볼까 싶다가 (건방지게도) 합격해도 안 갈 거 같아서 결국 면접을 마다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재택근무가 난데없이 실현됐다. 무려 연봉 삭감도 없이 말이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다 덮어놓고 좋았다*. 아침 여덟 시 오십 분에 일어나 컴퓨터만 켜면 출근 끝, 저녁 여섯 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퇴근 끝이었다. 평소에도 직장 생활의 8할은 출퇴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출퇴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체감으로는 연봉이 80% 인상되는 행복감을 느꼈다. 코로나 시국에 지하철을 안타도 된다는 점도 너무나 감사했다.

 

(*) 코로나가 발생한 게 좋았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아무리 출근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생기는 것조차 바라지는 않는다. 코로나는 너무나 싫지만 회사에 안 가는 상황은 좋았다는 말이다.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나서 거의 두 달 동안 나는 매일 강아지를 산책하는 30분 정도 빼고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와 두 딸도 모두 집에만 있었다. 나와 아내는 애초에 집돌이 집순이라 집 밖을 안 나가도 전혀 아쉬울 게 없다. 

 

칩거 생활이 3주 될 즈음, 첫째 딸이 미치기 시작했다. 내가 재택근무가 시작한 날부터 딸 어린이집도 문을 닫았다. 나는 강아지 산책이나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고 잠시라도 밖에 나가곤 했지만 딸은 거의 3주 동안 단 한 번도 문밖을 나가지 못했다. 소리를 지르고 나와 아내를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졌다. 일을 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일 하지 못하게 괴롭히거나 노트북을 부숴버릴 것 같이 두들겨 팼다.

 

모두가 예민해졌고 매일 집안에 다툼이 가득했다. 나는 아내와 싸웠고 딸과 싸웠고 고양이와 개랑도 싸웠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재택근무는 정말이지 가정에 어마어마한 불화만 만드는 것 같았다. 


너무 짜증 나서 그냥 출근을 해버릴까 생각이 들 때 즈음 회사에서 재택근무 지침이 나오고 나서 내가 속한 조직에서 한 번도 회사를 나가지 않은 사람이 나뿐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역사상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업무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인력을 제외하고는 전원 재택근무를 하라는 회사의 공식 지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누군가는 눈치를 보느라 출근을 했다. 과장, 부장들은 거의 매일 출근했고 대리, 사원급 후배들도 일주일에 2-3일은 출근했다. 


오늘은 후배에게서 카톡을 받았다. '대리님 빼고 다 왔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회의실에 나 빼고 내가 속한 조직 전원이 모였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난 날 제외한 조직의 전원이, 그러니까 약 50여 명의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나만 없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나에게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다 출근했는데 나만 출근하지 않은 상황에 쾌감을 느꼈다. '나도 나갔어야 했나'하는 걱정이나 근심, 눈치 같은 건 단 1도 생겨나지 않았다. 난 진심으로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특히 우리 딸들의 건강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이 시국이기에 더더욱)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오늘은 일을 좀 내려놓고 점심시간에 마스크 꼭꼭 싸매고 딸을 데리고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 나가 놀았다. 여섯 시 정각이 되자마자 회사 노트북을 닫고 두 시간 넘게 딸이랑 놀았다. 딸이 침대에 누워 자기 전에 말했다.

 

"아빠, 오늘 재밌쪘쪄."

 

우리 딸은, 정말 정말 오랜만에 엄마 없이 나와 단둘이, 내 배를 베개 삼아 잠들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고 잊을 뻔한 두 가지를 떠올렸다. 내 꿈은 친구 같은 아빠가 돼서 웃음과 이야기가 넘치는 가정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과 회사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돈을 버는 수단 뿐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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