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걷다

by 고베리슬로우


복직한지 한 달이 지났다. 불과 한 달인데 많은 일이 있었다. 복직전에 했던 많은 근심 걱정들은 (역시나) 기억도 안날 정도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고민은커녕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발생했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건가 보다. 그렇다면 굳이 앞서서 근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건데 그걸 알고서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올해 7월 즈음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가빠 왔다. 복직전에 서둘러 건강검진을 받았다. 심장이 빨리 뛰는 듯하고 호흡이 가쁘다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증상이 없었기에 정신적인 문제라고 생각은 됐지만 확인을 안 하고 넘어갈 순 없었다.


​복직을 얼마 앞두지 않고 했던 건강검진 결과가 복직한 주 금요일에 나왔다. 역시나 심장은 건강했다. 호흡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대신 눈에 이상 소견이 나왔다. 시신경 손상이 의심되니 빠른 시일 내에 전문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으라고 했다.


​시신경 손상. 우리가 흔히 아는 '녹내장'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시신경 손상이 심하거나 손상된 채로 오래 방치하면 녹내장에 이른다. 녹내장을 오래 방치하면 실명까지 할 수 있다.


​진단 결과를 받고 네이버에서 시신경 손상과 녹내장에 대해 찾아본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앞을 못 보고 손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안과에서 정밀검진을 한 결과 '아직'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시신경이 손상된 건 맞지만 시각에 어떠한 이상도 감지되지 않았다. 만약 녹내장이라도 하더라도 아주아주 극 초기일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녹내장입니다'라고 진단하긴 어렵다고 했다. 대신 앞으로 6개월에 한 번씩 추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동시에 씁쓸했다. 이전엔 없던 새로운 걱정근심이 내 인생에 하나 더 생겼다.

그로부터 얼마 뒤(하지만 여전히 지난 한 달 사이) 지방 출장을 갔다 사무실에 복귀했는데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내는 다른 말없이 계속 내가 뭐 하는지 바쁜지만 물었다. 느낌이 싸했다. 이내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말고 들어. 아기 열경련 와서 지금 응급차 타고 대학병원 가고 있어."


​솔직히 놀라지 않았다. 첫째가 열경련을 네 번이나 했기 때문이다. 놀라지 않았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고난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하는 말을 난 믿지 않는다. 고난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육체적으로 신체적으로 사람을 망가뜨린다. 내가 놀라지 않은 이유는 이전에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의 감정이 상처받기 않기 무뎌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체에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이 글을 나중에 우리 애들이 읽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둘째보다 첫째에게 더 많은 애정을 느낀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첫째가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이제 만 4살을 넘긴 우리 첫째는 열경련과 눈 수술로 벌써 여섯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갔고 일곱 번을 입원했다. 죽을 때까지 응급실에 한 번도 안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과정을 같이 겪고 같이 이겨내고 점점 더 건강해지는 우리 첫째 딸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물론 둘째 딸도 사랑하지만 편애를 했다.

이번에 둘째가 열경련을 하는 걸 보고 속으로 '얘가 자기 사랑해달라고 시위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둘째 딸은 효녀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유산의 위기를 뚫고 살아난 아이답게 잘 먹고 잘 싸고 잘 잤다. 아프지도 않았고 아파도 금방 이겨냈다. 혼자서 건강하게 잘 생활하니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픔이 많았던 우리 첫째에게 더 애정을 쏟았다. 사람은 역시 잃어보지 않으면 그 소중함을 모르는 법인가 보다. 다행히 우리 둘째는 평소 건강한 아이답게 아주 씩씩하게 열경련을 이겨냈고 그 이후 아주 조금씩 둘째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미용실에 갔다 온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나 머리가 많이 자랐다. '이번 주에 머리 자르러 갈까?' 거울 앞에서 지저분해진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충격적인 것들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바로 흰머리.


​원래 흰머리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몇 가닥. 넉넉잡아 열에서 스무 가닥. 근데 오늘 내가 본 흰머리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앞, 옆, 위, 뒤 구분 없이 흰머리들이 득실했다. 처음에는 씁쓸하기만 했는데 나중에는 짜증도 났다. 인간적으로 탈모든 흰머리든 둘 중에 하나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릴 때 곱슬머리는 탈모가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건 뻥이다. 난 곱슬인데 탈모가 왔다. 거기에 흰머리까지. 진짜 머리카락의 신이 있다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정말 나쁜 신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내린 결론이 있다면 '인생을 아끼지 말자'였다. 나의 건강은 물론 내가 가진 모든 것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절대 당연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누군가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은 누구나에게 벌어질 수 있음을, 나도 그 '누구나'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되새겼다.


​모든 것들이 당장이라도 사라질 수 있다면 지금을 온전히 살자고 생각했다. 내일에 대한 불안으로 오늘의 즐거움을 절제하지 않기로 했다. 금전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게 아니다. 온전히 감정, 그리고 행복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체력'을 조금씩 덜 아끼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어차피 죽으면 평생 잘 것을 잠에 대한 집착을 의식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했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쩌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불행히도 내 몸은 한 해 한 해 드라마틱 하게 망가져가고 있다. 오십 살, 육십 살에 건강하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부터 건강해야 한다.


​마침 가을이라 그런지 '낙엽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세월이더라'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나도 매일매일 시간을 걷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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