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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Nov 09. 2021

감정에 관하여 - 걱정과 고민

고민은 하되 걱정은 하지 않는 삶을 지향하고 살았거늘. 나이가 들수록 고민은 그대로 많은데 걱정도 많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해결되면 걱정이 없겠다 하지만 이런 겨울에 눈 내리는 소리에 항상 하는 말이 있으니. 그건 바로 '말이 쉽지'다. 다만 라임이 쩔었으니 특별 가점은 줄 수 있겠다. 물론 쓸데는 없다

고민 또는 걱정을 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무궁무진하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그 문제에 대한 지배력'이 나한테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무리 큰 문제라도 내가 통제하고 해결할 수 있으면 고민을 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고민과 걱정의 차이점은 그 문제에 대한 지배력의 정도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내가 어느 정도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하면 고민하게 되고 아예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걱정하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실제로 그런 지배력이 존재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고민은 그래도 하다 보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떠오를 수 있는 생산적인 측면이 있다. 반면,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문제에 매몰되거나 스스로를 갉아먹다가 심하면 종국엔 파멸(?)의 길까지 이어지는 것이 걱정이다. 고민은 해도 괜찮지만 걱정은 안 할수록 좋다.


나이가 들수록 걱정이 많아지는 이유는 점점 내 인생에 대한 지배력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 인생인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내 몸뚱어리도 내 말을 안 듣는다. 나이가 들수록 운명론자가 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어릴 때는 다 내 능력과 노력으로 이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돌이켜보니 그게 과연 내 능력과 노력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라는 말도 똑같은 말이다. 그래서 걱정은 괴롭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마냥 좋다는 것도 아니다. 고민 또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에 시작된다. 문제가 없으면 고민도 없다. 회사 생활에서의 회의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회의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좋은 회의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만 고민하지만 애초에 왜 회의를 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회의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행위일 뿐이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없었다면 회의를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고민과 회의의 목표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고민을 위한 고민, 회의를 위한 회의를 지양하기 위해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물론 '말이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사서 고민을 하는 때가 있다. 불안한 미래가 가장 큰 이유지만 그 외에도 우리네 인생은 아무리 지금 만족스럽다 할지언정 더 발전할 수 있는 여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고민하지 않으면 좋든 싫든 지금 사는 대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인생의 딜레마는 미래에 걱정을 덜 하기 위해 오늘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는 건데 그렇게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오늘의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자고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데 고민하고 걱정하다 보니 행복하지 않게 된다. 칼같이 시간을 나눠서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고민, 그다음은 만족, 또 그다음은 고민, 또 만족' 이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게 된다면 '사람이 아니무니다'.

마음 챙김 명상에서 가장 처음 명상을 시작할 때 하는 말이 있다. 너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생각과 싸우려고 하지 말아라. 고민이 많은 나도 나고, 걱정이 많은 나도 나다. 고민하는 나를, 걱정하는 나를 부정하지 말아라. 역시. '말은 쉽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저런 말이 있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고민과 걱정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남이 불행하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지만 나 혼자만 불행하지 않다는 건 역시 위안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나만 이렇게 고민과 걱정으로 불행한 거 아냐?' 하는 걱정 하나는 사라진 셈이다.

오늘 하루도 여지없이 날 괴롭힌 나의 고민과 걱정을 부정하지 않고 소중히 껴안아주며 푹 자야겠다. 걱정아, 고민아. 너네들도 나 잘 때는 좀 자렴. 굳이 꿈에서까지 볼 필요 있겠니. 그래야 내일 또 힘내서 날 괴롭히지 않겠니.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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