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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Nov 28. 2021

감정에 관하여 - 행복

요즘 들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재밌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입으로 튀어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보통 앞 또는 뒤로 한숨이 붙곤 한다. 질문의 종류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결국 궁극적인 질문이자 바람은 하나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행복하지 않기 때문일까.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해서 스스로를 괴롭힐 이유는 없지만 '행복' 별로 관심이 없었던 예전에는 분명 지금보다  행복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사랑이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불행한가. 그것도 아니다. 물론 불행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건 '정상적'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의 기복이라고 '믿는다'.


나는 행복하지만 예전만큼 행복하진 않고 그렇다고 불행하진 않다.


그렇다면 왜 예전만큼 행복하지 못할까.


1. 행복의 상대성


2019년. 두 달에 한 번 꼴로 첫째 딸이 열성경련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열이 잡혀야지만 퇴원할 수 있었지만 첫째 딸의 열은 단 한 번도 쉽게 잡히지 않았다. 만 1살이 갓 넘은 우리 딸은 한 번 입원했다 하면 적게는 3박 4일 길게는 일주일 넘게 병원에 있기를 1년 동안 5~6번을 했다. 당시 아내도 유산 선고를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뱃속의 둘째 딸을 지키기 위해 집에 누워만 있거나 집중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할 때는 입원을 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우리 에디(강아지)는 항문낭에 염증이 생겨 똥구멍 옆에 500원짜리 두 개만 한 구멍이 생겼다.


날 빼고 모든 가족이 아팠다(다행히 우리 고양이는 안 아팠다!). 몸이 아프진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지쳤다. 그냥 기절했다가 1-2년 정도 시간이 지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고 나면 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 해 동안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첫째 딸의 입원실에 들어온 의사 선생님이 '오늘 퇴원해도 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였다.


행복은 상대적이다.


2. 온전한 인간


예전만큼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행복은 상대적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생각해 봤다.


예전의 나는 스스로 온전한 사람이었다. 내가 가진 것들에 만족했다.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라 원하는 게 적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보다 가진 건 훨씬 더 많아졌는데 그때만큼 온전하지 못하다. 가진 게 늘어나는 속도보다 원하는 게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나 보다. 자연스럽게 원하는데 갖지 못한 걸 가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비교는 모든 불행의 씨앗이다. 이건 진리다.


스스로 온전한 사람일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그게 크든 작든 뭔가를 성장하고 성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던 시기였다.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 자신감이 없어진 게 먼저인지 아니면 인생이 정체기에 빠졌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게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더 이상 성취감이 없어진 인생은 공허했다.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충 지금처럼 적당히 살다가 적당히 죽겠구나.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졌구나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 가능성만 믿고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겪는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인생이 뻔하다는 생각이 인생을 가장 뻔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앞으로의 인생이 뻔하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은 큰 도전도, 큰 성공도, 큰 실패도 없이 무난해져 갔다.      


3. 유아지경(有我之境)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나'에 갇혀버렸다. 나는 여기 있지만 여기 있지 않았다. 정신은 항상 과거에 또는 미래에 가 있었다. 뭘 해도 집중하지 못했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이 사라졌다.


단 한순간도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너무 괴롭다.


과거 세상을 다 가진 왕들도 끊임없이 잔치를 열고 광대를 가까이에 두려고 했던 이유가 왕조차도 혼자 있을 때 자신과 직면하게 되는 순간이 괴로워서라고 하지 않았던가.


4. 행복의 더하기와 곱하기


행복은 상대적이지만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있다. 바로 건강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들이 있다. 가족. 사랑. 돈. 명예. 권력. 성취감. 건강 등등. 그중에서 건강을 뺀 다른 모든 요소들은 행복을 더 크게 만들어주는 '더하기' 효과가 있다. 하지만 건강은 그 모든 요소들을 더한 값에 '곱하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건강이 '0'이 되면 아무리 다른 요소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행복은 '0'이 돼버린다. 건강을 잃어버리면 다 잃는다.


행복 = (가족 + 사랑 + 꿈 + 성취감 + 재물 + 권력 +,,,+ 명예) X 건강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하게 건강을 잃었다. 목 디스크, 허리디스크, 불면증에 강박증까지. 내가 몰입을 못 하는 이유에는 몸의 제약도 적지 않다. 몸이 받쳐주지 않는다. 이건 정말 '절대적으로' 날 불행하게 만든다.


5. 복싱


서른 초반까지 운동이 유일한 취미였다. 2번의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시작으로 목 디스크를 거쳐 허리 디스크를 찍은 후 모든 운동을 그만둬야만 했다. 그렇게 5~6년이 지났다.


다시 운동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유일한 취미이기도 했지만 역시 무아지경을 경험할 수 있는데 몸을 움직이는 것만 한 게 없다. 다시 다치기가 무서워 달리기, 헬스, 필라테스, 걷기 운동을 해봤지만 도통 재밌지가 않다. 게다가 달리기랑 걷기는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잡생각이 많아진다는 부작용까지 있더라.


아내가 워낙 같이 하자고 해서 골프를 해보기로 했는지 시작도 못한 채 두 달이 지났다.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골프 회원권과 레슨비로 거의 백만 원을 한 번에 결재하려고 하니 선뜻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꾸준히 재발하는 팬데믹도 부담이다.


요즘 부쩍 복싱을 해보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의지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편하려고 가진 것들에 오히려 구속되고 나의 노력과 성취로 이루어낸 것들을 빼고는 나를 소개하기가 어려워졌다.


내 직업은 뭐예요. 사는 곳은 어디예요. 자산은 얼마예요. 폰은 뭐예요. 딸이 둘이에요. 육아휴직을 두 번했어요. 나이가 몇 살이에요. 아내는 무슨 일을 해요.

그런 거 말고. 그런 거 다 빼고.

난 정말 뭔데? 누군데?


그런 잡스러운 생각을 하다가 내가 온전히 소유한 것이라곤 몸뚱어리와 정신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몸과 정신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온전히 소유'하고 있단 말은 틀렸을 수도 있다. 아니, 틀렸다. 팔십 년대 중반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이라도 '강한 몸과 정신'을 가져본 적이 없다. 오롯이 내 것이야만 하는 몸과 정신을 온전히 지배한 적도 없거니와 점점 더 지배력이 없어지고 있다. 세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엉켜 살기에 인생을 지배할 순 없지만 내 몸과 정신은 지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해지고 싶다. 강한 몸 안에 건강한 정신을 갖고 싶다.


복싱을 하고 싶다고 그러면 '누구 패려고?'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패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사람을 패고 싶진 않다. 다만 패야 할 때는 팰 수 있는 힘을 갖고 싶다. 지키고 싶다. 내 몸을 지킬 줄 알아야 내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 있다.


6. 결론 : 지금, 여기에.


며칠 전에 회사 동료이자 고등학교 친구와 산책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어떻게 하면 재밌게 살 수 있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친구는 나에게 "지금도 충분히 재밌게 사는 거 같은데? 너무 재밌으니까 더 재밌기가 힘든 거야."라고 말해줬다. 고놈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 그렇게 이쁘게 말하는 기술을 터득했는지. "그래, 그럴 수도 있고." 친구의 말에 나는 동의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재밌다면 재밌고 재미없다면 재미없는. 행복하다면 행복하고 불행하다면 불행한 인생.

그렇다고 억지로 재밌다고, 억지로 행복하다고 세뇌시킬 생각은 없다. 세뇌시킨다고 세뇌당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내 두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에 '머무르며' 살고 싶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고 싶다.

그게 사실은 내가 가진 전부다.


All I Truly have is the moment righ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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