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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Jan 22. 2022

감정에 관하여 - 행복의 연출

사진이 작아서 잘 안보일수록 더 이뻐 보인다 ㅋㅋㅋ


뒤룩뒤룩 달린 턱을 날려버리고 피부에서 잡티를 날려버리니 이쁜 거를 넘어 무턱대고 행복해 보인다. 


내가 만약 완벽한 타인으로서 우연히 이 사진을 본다면 이 가족은 뭔가 행복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아니, 나마저도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이 가족은 고민거리 하나 없이 행복할 거 같아'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사진인데도 나도 속을 정도다.


외모 보정을 넘어 행복함을 연출해 준다는 것. 이게 사진 보정 앱이 흥행하는 진정한 이유일까.


어쩌면 앱이 행복함을 연출해 주는 게 아니라 외모가 훌륭할수록 더 행복해 보이는 고정관념 같은 게 있는 걸까. 그래서 외모를 보정해 줬을 뿐인데 행복해 보인다고 지레 생각해버리는 걸까.


알면서도 모르겠다. 잘 생겨본 적이 없어서. 


사실 잘생기거나 돈이 많아도 똑같이 각자의 고민이 있고 인생은 고달프고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을 텐데, 내가 딱히 잘 생기지도 돈이 많지도 않아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과대평가하게 된다. 사람들이 내가 서울대 나왔다고 하면 나의 '공부 능력' 뿐만 아니라 그보다 많은 면에서 나를 과대평가해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 (아니면 공부 잘 한 거와는 달리 잘생기고 돈 많으면 좀 더 행복할 수 있을지도..!!)


오랫동안 카톡 프사를 비워뒀다가 이번에 이 사진을 프사로 올렸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왠지 외모든 우리 집이든 적나라한 사진은 올리지 못하겠더라. 왠지 남이 봤을 때 뭔가 행복해 보이고 싶은 사진을 고르고 싶더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뭔가를 연출하고 싶다는 건 나한텐 생소한 감정이었지만, 사실 싸이월드라거나, 페이스북이라거나, 인스타, 그리고 사진 보정 앱,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그 감정이 매우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리라. (물론 사람들이 오로지 남에게 잘 보이고 싶거나, 잘 보이기 위해서만 SNS를 한다는 건 아니다.)


나도 어쨌든 글이든 사진이든 나를 주제로 한 콘텐츠를 만들어내 보기로 한  이상 더 이상 그 감정을 아예 무시하며 살아갈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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