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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Jan 29. 2022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글을 위한 글 (1)

처음 글쓰기에 재미를 느낀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공놀이하다가 담임한테 걸려서 반성문을 쓰게 됐다.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서 반성문을 쓰는데, 나는 10분도 안 걸려 반성문 한 장을 뚝딱 써냈다. 살면서 일필휘지를 해본 적이 있다면 바로 그때다. 

 

다 쓰고 보니 친구들은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애들이 내 반성문을 돌려 보더니 잘 썼다며 베끼기 시작했다. 뭐랄까, 기분이 좋은데 좋은 티는 내기 싫은데 입꼬리는 막 올라가려고 하고 안 웃으려고 하는데 눈은 이미 웃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대학교 때는 싸이월드에 쓴 일기를 보고 진지하게 글을 써보면 어떠냐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지 인생 아니라고) 취직하지 말고 여행 다니면서 글을 써보라는 친구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글을 잘 썼다기보다는 남들은 보통 잘하지 않는 생각들이 내 안에 잔뜩 있었던 것 같다. 그때도 지금도 딱히 좋은 문장을 쓰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친한 이와 편하게 대화하듯이 편한 마음으로, 다만 이 글을 사람들이 읽을 거라는 의식만 갖고 생각들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편이다.  

내 대학생활은 ‘도서관’과 ‘소설’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시간이 남거나 할 일이 없으면 학교 도서관에서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설 속에 인생의 전부가 있고, 소설만이 최고의 장르라고 믿는다. 나 또한 그랬다. 소설을 탐닉하다 보니 자연스레 소설을 쓰고 싶었다. 

 

졸업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아빠한테 “다음 학기 휴학하고 글을 좀 써볼까?” 물어봤다. 아빠는 글은 회사 다니면서도 쓸 수 있다고 그랬고 난 알겠다고 했다. 솔직히 진심으로 휴학하고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긴가민가 했고 아빠가 해보라 그러면 한 번 더 고민해 봐야지 했기에 아빠의 대답에 바로 수긍했다. 그때 내가 포기한 건 휴학이 아니라 '조금은 달라졌을 수 있는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빠 탓하지 않는다. 아빠는 기억도 못 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글 쓰는 걸 보면서 그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할걸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나는 나중에 우리 딸들이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 싶다고 할 때 ‘그렇게 해. 해보고 싶은 거 해봐’라고 말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의미에서 노력하고 있다.)

 

항상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실제로 글쓰기를 시작한 건 첫 번째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였다. 퇴사하려다가 아무 준비도 없이 퇴사하기보다는 일 년 동안 시간을 벌어보자는 심상으로 시작한 육아휴직이었다. 어떻게 하면 회사원이랑은 다른 커리어를 걸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글쓰기는 기본으로 깔았다. 살면서 조금이라도 하고 싶다고 느낀 게 글쓰기였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었다. 솔직히 내 블로그가 유명해져서 파워블로거가 되고 광고로 돈을 벌거나 여기저기서 출판 제의를 받게 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지 않았다고 하면 뻥이다. 실제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사회적 풍조도 글을 쓰자는 다짐에 일조했다. 나처럼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 취미로 블로그를 하는 보통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오히려 일반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는다. 전문작가를 보면 나는 절대 저렇게 될 수 없어 생각하지만 일반인 작가를 보면 나도 그들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글 쓰는 게 쉽지가 않다. 자기가 즐기는 걸 업으로 삼으면 더 이상 즐길 수 없다는 거창한 말이 아니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글 쓰는 걸 즐겼다고 말할 수도 없다. 글을 쓰며 돈을 버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걸 즐겼을 뿐이다. 게다가 아직 글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없으니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글쓰기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브런치 글을 읽을 때마다 '글쓰기 자존감'이 ‘글쓰기 자괴감’으로 바뀐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냐. 브런치 글을 읽기 전에는 모두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보다 보면 그들은 결코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내 글쓰기 실력이 평균 이하가 확실하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글은 못 쓸 텐데... 이 사람들은 전문적인 작가도 아닌데... 이 사람들도 심지어 본업이 따로 있고 취미로 글을 쓰는데 나 같은 사람이 (떼돈을 버는 게 아니라도) 글쓰기로 돈을 벌고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냥 애 보다가 회사에 돌아가야 하나?

 

글쓰기에 대한 자괴감이 커질 때마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내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서. 내 글을 누군가가 읽어줬으면 좋겠기에. 돈을 벌고 싶어서. 쓰다 보니 실력이 좋아져서 기고를 하거나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하면서 살고 싶어서. 글을 쓰다 보면 회사에 안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당장은 또는 수년 안에는 힘들어도 10년, 20년 쓰다 보면 그때는 글쓰기가 제2의 커리어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거나 희생할 정도로 치열하게 갈망하느냐 한다면 단언컨대 아니다. 글쓰기에 치열하고 싶지 않다. 글쓰기로 괴롭고 싶지 않다. 글쓰기에 대한 확신도 열정도 없으니 매번 길을 잃고 글쓰기는 중단된다.

 

어쩌면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살면서 처음으로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른 중반이 돼서야, 그 고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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