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위한 글 (2)
예전에 글쓰기 모임을 운영한 적이 있다. (코로나가 없던 시절) 다 함께 모여 글을 쓰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 사람들이 서로에게 피드백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나는 회사에서의 안 좋은 경험들, 불만들, 특히 내가 어떻게 불행했고 어리석었으며 그 대가로 어떤 정신적 불행함을 겪었는지에 대한 글을 종종 썼다. 그런 글을 읽고 고개를 들면 눈에 놀라움이 가득 찬 사람들이 있곤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글이 솔직하다'라는 피드백을 줬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힘듦과 고통을 숨기려 하고, 밝히고 싶어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며 나의 용기와 솔직함을 칭찬해 줬다. 그런 솔직함을 부럽다며 자신도 솔직한 글을 쓰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두 가지에서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하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내 글은 솔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솔직하다고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솔직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 숨기고 싶고 추잡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내 안에 있고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쓸 용기가 없다(굳이 쓸 필요성도 못 느꼈지만). 내가 경험한 수 많은 불행 중에 남들에게 말할 때 크게 용기가 필요거나, 남들이 알아도 상관없는 불행만을 이야기했다. 결국 솔직함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다른 한 가지는 글이 꼭 솔직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솔직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숨김이 없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에서 '끄집어내기 힘든' 이야기에 대해 쓰지 못함을 자책하며 그 이야기들을 글에 담아야 사람들이 본인들의 글에서 진정성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원하는 글은 솔직한 글이 아니다. 독자들이 원하는 글은 공감이 되고 재미있는 글이다. 공감도 안되고 재미도 없는데 솔직하기만 한 글은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누군가의 글이 오직 솔직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이 공감을 갖고 재미가 있으리란 생각은 오해고 착각이다. 지어낸 글이라도 공감이 되고 재밌으면 독자들은 재밌게 글을 읽는다(우린 그걸 소설이라고 부른다). 마음의 치유 등 특정 목적을 갖고 글쓰기를 하지 않는 이상 굳이 솔직하기 힘들면(=자신 내면 깊숙이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힘들면) 구태여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걸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솔직한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글쓰기에 있어서만 솔직해지려고 하지 말자. 글쓰기란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편집하고 연출해서 만들어내는 콘텐츠다. 갖고 있지 않은 걸 굳이 만들면서까지 쓸 필요는 없다. 쓸 수 없는 글을 억지로 쓰려다 보면 글쓰기를 포기하거나 글에 힘이 들어간다. 쓰는 사람이 편하게 써야 글도 편하게 읽힌다. 편하게 쓸 수 있는 글을 쓰자. 그거면 충분하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솔직하지 않더라도 아주 정교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