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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Dec 31. 2021

안 하면 나중에 섭섭할 것 같아서 하는 2021년 결산


올해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글상이 넘쳐난다. 그 모든 글상을 글로 승화시키고 싶지만 마지막 날인만큼 술도 진탕 먹어야 하기 때문에 올해가 가면 쓰지 않을 올해 결산을 올해 마지막 글로 남기기로 했다.


[가정]


1. 1월에 첫째 딸이 외사시 수술을 했다. 수술은 잘 됐고 앞으로 몇 년 동안 재발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올해 다섯 살인데 벌써 입원만 열 번을 넘게 한 것 같다. 마음이 아프지만 항상 강하게 이겨내주는 우리 딸이 기특하고 감사하다.


2. 9월 둘째 딸이 열성 경련으로 첫 응급실과 입원실을 동시에 경험했다. 그리고 이번 주 기관지염과 아데노바이러스의 동시 어택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2018년 12월 31일, 첫째 딸이 두 살이었을 때 첫 열성 경련으로 새해를 응급실에서 맞이했는데 하마터면 둘째 딸도 새해를 병원에서 맞이할 뻔했다. 역시 강하게 이겨내주는 둘째 딸이 기특하고 감사하다.


3. 우리 부부와 양가 부모님은 대체로 건강했다. 1년 동안 내가 가장 아팠고, 양가 부모님의 건강 걱정이 가장 심했던 때는 다행히(?) 코로나 백신 접종이었다.


4. 올해 복직하고 한 달 사이에 미친듯이 흰 머리가

늘었다. 충격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걸 머리로 아는 것과 눈으로 보는 건 확실히 다르다. 내 흰 머리 확장(?) 소식을 듣고 엄마는 "탈모가 있으면 흰머리가 안나거나 흰머리가 나면 빠지질 말든가. 넌 할 건 다 하는구나."라고 말했는데 재밌는 건 나도 정확히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엄마. 엄마가 이렇게 낳았잖아. ^^.


5. 우리 강아지와 고양이도 무탈하게 1년을 보냈다. 강아지는 연중에 비닐을 집어삼킨 게 가장 큰 위기였지만 검진 결과 아무 이상 없었다. 고양이는 한국 나이 12살이(내일이면 13살) 무색하리만큼 여전한 정력을 과시한 한 해였다. 우리 부부는 정력이 그의 건강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했다. 우리는 그에게 '변강묘'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6.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건강한 우리 가족이 됐으면 그것만으로 더 바랄 게 없다.


[회사]


1. 2월 두 번째 육아휴직을 했다. 둘째 육아휴직*을 썼지만 실상은 첫째 딸을 위해 사용했다. 수술을 한 첫째 딸이 회복하는 기간 동안 무한한 사랑을 주고 싶었고 회사를 다니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러지 못할 것 같아서 휴직을 했다.


(*)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자녀 1명당 1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월급이 안 나오는 대신 나라에서 '소정의' 육아비를 준다.


2. 육아휴직 기간에 잠시 아내의 사업을 도왔다. 10년 동안 대기업에서 배운 시스템적인 요소를 아내의 회사에 도입하는 것이 미션이었다.


3. 미션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 상대적으로 봤을 때, 대기업은 의사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결정이 난 이후에는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작은 회사에서는 의사결정은 바로바로 이뤄지지만 실제로 그 결정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이 아쉽다.


4. 9, 계획보다 이르게 복직을 했다. 원래 복직은 내년 1 2일에  생각이었다. 애 하나 있을 때의 육아휴직과 달리 애 둘이 있을 때 육아휴직은 확실히 경제적으로 압박감이 달랐다. 빨리 돈을 벌어야 겠다 싶었다. 회사에서 갑작스러운 조직개편이 이뤄졌고  과정에서 불필요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이른 복직의 중요한 이유였다.


5. 복직하니 사람들은 나를 '남성 육아휴직의 선구자(또는 개척자)'로 칭해줬다. 친한 동료의 "너 왠지 복지 관련된 임원 될 거 같아."라는 말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6.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육아휴직 가면서 내심 '내가 가 있는 동안 해결됐으면 좋겠다.' 했던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와서 결국 내가 다시 골칫거리를 담당하게 됐다.


[투자]


1. 1월에 비트코인에 들어가 있던 1,700만 원이 3일 만에 500만 원이 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나는 절대 도박을 할 깜냥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1,700만 원이 모두 사라질 것 같은 공포에 정신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매도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날이 서서 엄한 아내와 아이들이 그 짜증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때 만약에 내가 비트코인을 매도하지 않고 갖고 있었다면 지금쯤 내 1,700만 원은 1억 7천만 원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2. 연초에 만원 초반에 샀던 HMM 주식을 여름에 오만 원에 팔았다. 300%의 수익률을 달성한 건데 10년이 넘는 주식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높은 수익률은 투자금이 적을 때만 발생한다.


3. 상기 두 가지 외에는 올해는 거의 수익도 손실도 실현시키지 않았다. 12월 31일 기준, 약 40%의 평가손을 기록 중이다.


[자기계발]



1. 올해 대략 8kg, 작년 코로나 발발 전과 비교하면 거의 15kg 가량 원치 않은 중량에 성공했다. 하하. 살기 위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2. 달리기를 시작했다. 올해 242.6km를 뛰었다. 나는 뛰기에 재능이 없음을 확인했다. 달리기를 그만뒀다.


3. 달리기 싫어서 걷기 시작했다. 올해 4,271,350보를 걸었다. 거리로 환산하면 3,252km다.


4. 근육을 늘려야할 것 같아서 여름부터 홈트를 시작했다. 중량(?) 이후 한 번에 열개도 하기 힘들었던 팔굽혀펴기를 지금은 쉬지 않고 한 번에 60개까지 할 수 있다. 운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 말고 90kg 급 일반인 중에서 나만큼 팔굽혀펴기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 자부한다(물론 근거는 전혀 없는 자부심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의 팔굽혀펴기 능력과 단 하나의 팔굽혀펴기도 못 하는 80kg 몸 중 무엇을 선택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내 모든 가슴근육 악마에게 바쳐서라도 80kg 몸을 선택할 것이다. 훗. 여름에 동네 공원 한 복판에서 빡세게 팔굽혀펴기 하는 동영상을 첨부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 쑥쓰럽지만(내 입으로만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꽤 섹시하다. 캬캬캬.


5. 올해 밀리의 서재에서 86권의 책을 읽었다 빌렸다. 2년 동안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면서 230권의 책을 읽었다 빌렸다.


6. 올해 항상 글을 쓰진 않았지만 꾸준히 글을 썼다. 브런치 구독자는 대략 30명 정도 증가한 것 같다. 내가 글쓰기로 뭘 이루고 싶은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브런치에서 만들어준 연간 글쓰기 레포트 상 내 전문분야가 '회사'라는 게 좀 놀라웠다.


7. 웹툰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16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아이패드를 구매했고 20만원의 추가 거금을 들여 온라인 웹툰 작가 수업을 결재했다. 아이패드는 우리 딸 유튜브 시청 전용이 되었고 수업은 결재한지 8개월이 지났는데 아직 시작도 못 했다.


8. 올해 총 2,765,100원을 기부했다. 누적으로는 13,727,300원을 기부했다. 더 하고 싶었지만 7개월 동안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수입이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적지 않았다고 스스로 평가 하는 바이다. 내년에는 월간 기부금 상승율을 최소 연봉 인상율보다 높게 책정하는 것이 목표이다.



[마지막]


1. 오늘 퇴근 직전에 회사에 있는 나의 드립 메이트와 마지막 메신저를 했다. 잠깐 설명하자면 이 드립 메이트는 내가 신입으로 들어간 팀의 1년 선배였는데 내 인생에 둘도 없는 드립 메이트다. 우리 드립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자면 우리는 전생에 부부 정도가 아니라 한 몸 안에 좌심실, 우심실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회사에서, 아니 인생에서 이런 인연이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 올해 우리의 마지막 티키타카

  (드립 메이트) 트룰리 매들리 디플리 한 해 고생 많았고 올해도 같이 잘 놀았소이다

  (나) 그거 알아요? 넥스트 이얼 윌 비 이븐 몰 펀(Next year will be even more fun).


2. 올해 마지막 저녁으로 순대 국밥, 수육에 연맥(연태 고량주+맥주)를 먹는 중이다. 잠시 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으면 '굿바이 2021, 웰콤 2022'을 외칠 예정이다.


3. 저녁 식사에 먹을 술을 사러 편의점을 갔다 오는 길에 초등학생을 가득 채운 학원 버스를 봤다. 시계를 보니 오후 8시였다. 그 학생들이 오늘 밤에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4. 마지막으로 몇 시간 남지 않았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내년에는 하시는 모든 일이 잘 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돈도 많이 버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5. 난 내일 2022년 첫 로또를 사러 갈 예정이다. 2022년, 12년 만의 전성기가 날 기다리고 있다(나=호랑이띠).



(좌) 2021년 마지막 만찬 / (우) 올해 내가 가장 많이 쓴 이모티콘 '쏴리질러ㅓㅓ!!!' 너도 고생했다


흰백색의 종아리와 툭 튀어나온 궁뎅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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