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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Dec 30. 2021

죽음에 관하여

요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다.




고등학교 2학년 한문 과목이 있었다. 한문 선생님은 어느 학교에서 한 명쯤은 있을 법한 다독가 셨다. 스스로 본인의 전공은 한문가 아니라 '잡학'이라 하고 다니셨던 만큼 수업 시간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흥미로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육십 대 어르신이 수십 년 알아온 친구를 술자리에서 살인한 사건에 대한 기사가 조간신문에 실린 날이었다. 어쩌다가 수업 시간에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반 친구들은 대체로 '아무리 그래도 친구를 죽일 수 있냐. 그게 사람이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글쎄. 살다 보면 남을 죽이거나 또는 죽기보다 더 잃고 싶지 않은 게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선생님의 말에 잠시 교실에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친구들은 다시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건 안된다.' 하며 대상 없는 야유를 보냈다. 교실 한 구석, 나이보다 훨씬 더 늙게 살고 있던 17살의 청년(=나)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선생님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 사람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게 있는 거야. 그걸 잃어버리면 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 (당연히 그 행위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로부터 1년 거슬러 올라가, 고등학교 1학년 영어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Decease(죽음)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디씨스(Decease의 발음). 어때요, 발음이 깔끔하죠? 디지즈(Disease의 발음. 질병이라는 뜻). 이건 발음이 지저분하죠? 디씨스. 디지즈. 디씨스 죽다. 디지즈 아프다. 디씨스는 깔끔하게 죽는 거고 디지즈는 지저분하게 아프면서 사는 거예요."


선생님은 우리가 단어를 쉽게 외울 수 있도록 예시를 들어줬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기억하는 학생(=나)이 있으니 분명 효과가 있었다. 당시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그러니까 '크게 아프거나 아픈 사람을 본 적도 없으면서' 선생님의 예시에 깊게 공감했다.


'그래, 아프면서 살기보다는 깔끔하게 죽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죽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었다. 내가 태어날 때,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갖고 태어난 타고난 기질이었다. 거기에, 그 생각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잘 몰랐을지언정,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직/간접적으로 터득하고 '선택한' 죽음에 대한 해석이었다.


대학교 시절. 정확히 몇 년 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나는 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계단에 있었다. 날씨가 매우 좋은 날이었다. 그곳에서 '행복 전도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우자와 함께. 지병을 갖고 있었고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는 유서를 남겼던 걸로 기억한다.


그 소식을 듣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그럴 수 있지' 생각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훨씬 지나고 나서의 일이지만, 나도 너무 아파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목 디스크로 인해 단 한순간도 통증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보낸 3개월이 있었다. 말 그대로 3개월 동안 1초도 아프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아무리 진통제를 먹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에 병원 문 열리기만 기다리다가 병원 문 열리자마자 찾아가서 의사 선생님께 제발 신경 주사 좀 놔달라고 애원했다. 누워있으면 더 아파서 의자에 앉아서 자야 했다. 길어야 30분 자고 아파서 눈이 떠지면 다시 안 아픈 자세를 찾기를 밤새도록 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내일도 이렇게 아프면 그냥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아프면 그렇다. 아프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이때 고통이 가시고 난 직후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언젠가 삶이 너무나 버거우면 차라리 죽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사는  무섭지 죽는  무섭나.'라는 말에 공감했고 진지하게는 아니지만 어떻게 죽는  가장 고통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했다. 고통 없이 죽을  있다면 죽음무섭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다. 죽음이 두렵다. 예전처럼 그 과정, 그러니까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이 아플까 하는 그런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 자체가 무섭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더 이상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없다는 것. 화낼 수도 없고 짜증 낼 수도 없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오늘이 없다는 것. 내일이 없다는 것.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 그런 것들이 모두 무섭다.


2020년 가을 즈음. 크지 않은 회의실에서 여러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 좁은 데서 굳이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해야 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듣는 둥 마는 둥 핸드폰을 보다가 어느 연예인의 극단적 선택 기사를 접했다. 순간 목구멍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안 그래도 좁게 느껴지던 회의실 벽이 사방에서 나를 짓눌러 오는 것 같았다. 회의실에서 뛰쳐나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의사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순간 공황 상태가 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공황이 아무 계기나 전조도 없이 그날 갑자기 하늘에서 지나가는 새똥 맞듯이 생긴 건 아니었다.


그 공황의 씨앗이 심어진 건 2018년 12월 31일, 첫째 딸이 처음 열성 경련을 일으킨 날이다. 열성 경련은커녕 살면서 경련이라는 걸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나는, 갓 돌이 지난 딸이 열성 경련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입에 담기도 무서운 그런 일이 내 딸에게 일어난 줄 알았다. 워낙 작은 아이라서 숨을 쉬고 있었지만 육안으로도 촉감으로도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이후에도 첫째 딸은 3~4번, 둘째 딸도 한 번 열성 경련을 일으켰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 두 딸 모두 건강하게 잘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일련의 사건들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친한 형이나 친구, 회사 동료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고를 당했을 때도, 그 외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가슴 아프고 이해할 수 없는 죽음들을 접해했을 때도,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팠을 때도 죽음이 두렵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가는 내 딸들을 보면서 '죽음이란 이런 거일 수도 있겠구나. 죽음이란 이렇게 모든 게 끝나고 사라지는 거구나.' 비로소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죽음이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예고 없이, 누구나에게 찾아올 수 있음을 느꼈을 때, 죽음이 무서워졌다.


그 이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명제가 되어버렸다. 죽음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곧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인생에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한 선택을 남들보다 빨리하게 됐다. 어쩌면 평생 걸려서도 못할 선택, 또는 깨달음을 나는 강제적이고 타의적인 (그리고 다소 폭력적인(?)) 방법으로 하게 된 것이다. 의식을 잃은 딸을 안고 응급실로 뛰어 들어가는 경험을 하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당장 오늘 죽을 수 있는데 왜 지금 불행해야 하지?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자.
오늘, 지금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더 감사하자.

- 고베리슬로우


꼭 '더 행복해야 돼! 불행을 줄여야 돼!' 하는 자세로 인생이 바뀐 게 아니다.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저 그 순간에 최대한 몰입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됐다. 다만 가능하다면 좋은 건 좀 더 오래 간직하고, 나쁜 건 좀 더 빨리 내보내려고, 이 또한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부작용도 있다. 매 순간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니 정신적으로 매우 지친다. 가끔은 그 두려움에 잡아먹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불안감에 잠식되는 날도 있다. 오늘 당장, 내일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지? 왜 굳이 애쓰면서 살아야 하지? 하며 게을러지기도 한다.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인생엔 100% 좋기만 한 건 없으니까.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내가 인생에 대한 태도를 변하기 위해서 죽음을 도구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그 상황 속에서도 더 잘 살아볼까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죽음에 대한 나의 태도 변화는 내가 원해서 생긴 게 아니듯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더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질 수도 있었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어쨌든 더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게 어딘가. 비록 그 애씀이 괴롭고 발악에 가까울지라도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함께 할 때, 특히 커 가는 자녀들을 볼 때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순간을 떠올려보라.
인생의 묘미는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과 관련이 높다.

죽음이 멀리 있다고 믿을수록 인생은 빨라지지만
죽음은 어디에나 있음, 나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깨달으면
내가 온전히 가진 건 오로지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 고베리슬로우



당장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순간에 좀 더 집중하고 행복할 수 있다니, 이건 아이러니일까 인생의 진리일까. 뭐. 사실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 덕분에 더 소중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다만 부디 그 마음가짐 갖고 착하게 살 테니 죽음과의 거리는 최대한 천천히 좁혀지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아, 한 가지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나중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어느 날 문득 이 글의 제목을 "삶에 관하여"라고 바꾸고 싶은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요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삶에 대해 강렬히 욕망한다.





진심을 다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일흔 살이 되었어도 올리브 나무를 심을 만큼,

후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긴 하지만 죽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이 죽음보다 더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


가령 지금 심각한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 흰 침대에서 다시 못 일어나게 될지 모른다 해도,

다소 이른 떠남을 생각하면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해도

그래도 재미있는 농담을 들으면 여전히 웃을 것이고

비가 내리는지 차 밖을 볼 것이고

가장 최근의 뉴스를

여전히 궁금해하지 않겠는가.


···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어디에 있든

마치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짐 히크메트, <산다는 것에 대해> 중에서

류시화 엮음, <마음 챙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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