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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Jan 28. 2022

출장 속에서 피어난 글

올해 매주 출장을 다녀왔다. 부산 1박 2일 일정 세 번, 인천 당일 일정 한 번. 영업일 20일 중에 7일을 출장 중에 있었으니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거 아니냐고 오해한다. 대부분의 출장은 대단한 일이 생겨서 가는 건 아니어서 가기 전에는 출장 갈 것까지 있나 싶지만, 또 전화로만 하면 안 되고 얼굴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가보고 별일 없으면 일찍 올라오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예상치도 못한 일로 야근은 물론 호텔 안에서까지 일을 하게 되고, 이번에는 좀 일찍 복귀하자고 백 번 말하지만 마지막 비행기도 겨우 타고 올라오게 된다. 데스크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많은 일들이 현장에서는 항상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일이 많더라도 요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뭐니 뭐니 해도 비행기다. 비행기가 너무 많이 흔들린다. 예전에도 분명히 비슷하게 흔들렸을 텐데. 아마 나이가 들어 더 예민해진 게 아닌가 싶다가도 같이 출장을 간 후배들이 나보다 더 비행기 타기를 싫어하는 걸 보면 또 내가 덜 예민한가 싶기도 하다. 다음부터는 갈 때든 올 때든 최소 하나는 비행기가 아니라 기차를 타기로 했다(실제로 이번에 출장을 같이 간 셋 중 한 명은 비행기 흔들리는 게 싫어서 서울로 올라올 때 혼자서 기차를 타고 왔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무려 열두 시가 넘었을 텐데 말이다!).



아내도 나만큼 비행기 흔들림을 질색한다. 천생연분?


김해공항에서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따뜻하다. 서울과의 기온 차이를 몸소 느낄 때 우리나라도 그렇게 좁은 것만은 아니네 생각한다. 그럴 땐 몇 년 전 부산 날씨에 대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부모님 고향이 부산이라 매년 명절 때마다 부산을 오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사촌들이 모두 할머니 집에서 모여서 놀았지만 모두 성인이 되고 나서는 우리끼리 나가서 술 한 잔 하곤 했다.


한 번은 사촌들과 서면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제일 늦게 부산에 도착했기에 사촌들은 먼저 만나서 놀고 있었다. 부산에 도착했는데 너무 따뜻해서 파카를 벗고 카디건만 입고 서면으로 나갔다. 사촌들은 카디건 하나 입고 나간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안 추워?"

"안 추운데? 서울은 이거보다 훠월씬 추워."


사촌들은 내가 할머니 집에 벗어두고 온 두꺼운 파카를 입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만 입으면 안 추워? 사람들이 형 쳐다보잖아."


아닌 게 아니라 길거리에 모든 사람들이 파카를 입고 있었다. 사촌 동생의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나를 쳐다보는 거 같기도 했다.



고양이 가족. 애기가 너무 이뻤다.



출장 기간 동안 탈 렌터카를 찾으러 왔는데 주차장에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나를 보더니 나한테 다가오려고 그랬다. 누가 봐도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 같았다. 주차장 사무실 근처에 밥그릇도 있고 물그릇도 있는 거 보니 주차장에서 키우는 애들 같았다. 아기 고양이를 보니 너무너무 귀여웠다. 우리 꼬미(우리 집 고양이 이름)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꼬미 중성화를 시킬 때 앞으론 절대 꼬미 자식을 보지 못 할 거라 고민하던 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자식도 자식이지만 한 번은 해보게(?) 해주고 싶었는데 한 번도 못 하고 중성화시킨 거에 대한 미안함도 컸다.



우리 꼬미도 애기 때는 천사였다. 나도 애기 땐 천사 같았겠지?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가면 너무나 적적하다. 아내는 합법적(?)으로 가질 수 있는 여유 시간을 즐기라고 했다. 누워서 뒹굴뒹굴하면서 티브이도 보고 맥주도 한 캔 하라며. 그러고 싶은데, 역시 집 밖은 불편하다. 게다가 말이 호텔이지 깨끗한 모텔이다. 호텔과 모텔의 차이*가 뭐냐면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호텔은 뭔가 편안하고 푸근한 느낌이 든다면 모텔은 정말 잠깐 눈만 붙였다 가는 느낌이다.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인 근거 없는 철저히 나만의 느낌적인 느낌이다. 아무튼 아내와 아이들이 같이 있을 때는 좀 혼자만의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데 막상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많이 허전했다.


(*) 매번 똑같은 호텔에 머문다. 네 번째 방문에서야 화장실 면봉 박스 안에 콘돔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면봉 찾다가 발견하고 순간 당황했다. 낼모레면 마흔인데 왜 당황했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거기는 모텔이 확실하다.


호텔에서 올린 인스타 피드. 인스타 놀러 오세요. 재미없고 감동도 없는 피드 많아요 ^^ @goveryslow



어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강아지 산책을 하고 있는데 부산에서 봤던 고양이랑 똑같이 생긴 고양이를 만났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괜히 고양이한테 "넌 몇 시 비행기 타고 올라왔니?" 물어봤다. 듣씹 당했다. 부산에서 본 애들이랑 비슷하게 꼬질꼬질했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서울 고양이가 불쌍 보였다. 하긴, 얘는 순수 길냥이고 부산 애들은 밥 주고 물주는 집사가 있으니 똑같이 꼬질 해도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고 해야겠다.


"애야, 너의 겨울이 부산 사는 네 친구들의 겨울보다 더 춥겠구나. 너도 나도 그냥 다 팔자대로 사는가 보다."


듣씹.


개를 보고 절대 피하지 않는 길냥이의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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