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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Jan 27. 2022

2022년 1월 27일에 쓴 글

지난가을, 인스타를 만들었다. 인스타에 올려야겠다 싶은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댔다. 하지만 실제로 인스타에 올린 건 몇 장 되지 않았고, 그렇게 찍기만 하고 올리지 않은 사진이 수백 장이 여전히 핸드폰 사진첩에 고스란히 묻혀있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당시 가장 많이 찍었던 사진은 단연 단풍이었다. 


단풍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계절적으로 사진적으로 '인스타용'으로 가장 적합했을 뿐이다. 사진을 찍다 보니 더 자세히 보게 됐다. 매일 똑같은 장소, 똑같은 나무가 서서히 색이 변하는 모습을 찍었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 등 하루 이틀 사이의 변화는 미미해 보였지만 일주일이 지나니 그 변화는 컸다. 얼핏 보면 노란색이거나 빨간 색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달랐다. 단풍은 몇 주에 걸쳐 들었지만 낙엽은 일주일 사이에 다 떨어졌다. 


단풍이 지는 과정을 보다 보니 문득 봄에 새싹이 뿜어내는 강렬한 초록색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릴 때는 형형색색 단풍이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어릴 때 육식동물은 나쁜 놈이고 초식동물은 연약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커보니 초식동물들이 더 난폭하고 육식동물도 나쁜 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설명할 수 없는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데, 단풍보다  새로이 싹을 틔우는 그 어두침침한 초록색이 더 강렬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난 아주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시적인 표현에 능하지 않지만 굳이 시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생명력을 잔뜩 머금고 세상을 찢고 나오는 새싹의 초록은 강렬함을 넘어 파괴적이었고, 스스로가 단풍 구경 가듯이 자기 안에 꼭꼭 숨겨뒀던 가장 이쁜 옷을 꺼내 입고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는 듯한 단풍의 빨강에서 측은함이 느껴졌다.

 

서른 중반, 아직 젊음이 한창인데 벌써 이런 생각을 하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의 봄은 지나갔다. 자연은 봄이 가도 1년 뒤에 새로운 봄을 맞이하지만 우리의 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좋은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거지만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을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젊은 날의 엄마, 아빠가 떠오른다. 기억 속의 엄마, 아빠가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단 걸 생각하면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 먹었지 보다는 엄마, 아빠도 그때 청춘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명절이다.

용돈 장전 완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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