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대인동 블루스

by woohyunjeong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셨다. 스무 해 전의 기억을 상기시키면 그렇다. 목수 일을 하는 아버지의 손은 당시 내 머리보다 컸다. 뺨을 맞아 떨어져 나온 살점은 사랑의 크기였다. 어린 아이는 어른의 관점에서 잘못을 하나보다 그러곤 했다. 머리에 내려쳐진 쓰레받기의 갈라진 잔해들 또한 그랬다. 하나의 사랑에 무감각해져갔다.


남자들만 다니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친구들은 서로를 아꼈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친구를 다리 밑에 기어 다니게 만들었다. 나 또한 무관하지 않다. 맞는 친구들은 애써 웃었다. 정다운 사이였다. 웃지 않으면 더욱 ‘우정’해주었다. 당시에 나는 내향성 발톱을 앓아 파고들수록 곪았지만 어쩐지 아프지 않았다. 하나의 우정에 무감각해져갔다.


이러니 저러니, 기대를 품고서 대학에 진학했다. MT가 대학의 꽃이라니 흘러흘러 섞여 들어갔다. 나이든 선배 한명이 나를 같은 조에 넣어, 옆에 앉아 말해주었다. ‘우리 조’는 자신이 한명씩 지목하여 꾸렸다고. 그게 네 친구들이라고. 선배들은 옆자리에 내 친구들을 끼고서 사회생활이라며 술을 받아먹었다. 하나의 ‘사회’ 또한 무감각해져갔다.


이제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생물학적 남성이다. 그저 주어진 걸 누리고 살면 편할 것 같다. 일련의 시련들을 겪었고, 내게는 일종의 권력이 생겼다. 풍만한 사랑과 우정, 여타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저 일련의 세 가지들에 대해 여태껏 방관하며 살아왔던 것처럼, 존재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들은 사랑을 나누었다고 말한다. 성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쏟아 일련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라 말한다. 자신의 반려자와 애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위해 성을 산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는 그런 사람들이 사실을 숨겨 스스로가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연신 매스컴에 나와 떠든다. 거짓말이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끌어 함께 집결지에 가는 무수한 남성 친구들을 보았다. 어릴 적부터 그 친구들은 성의 시옷자만 입 밖에 나와도 얼굴이 붉어지며 키득거렸다. 다녀온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라 어깨를 으쓱거리면서도, 눈으로 지나가는 여성들의 신체를 조각내 읊으며 ‘걸레’라는 단어를 달고 살았다. 사이가 돈독해졌다. 거짓말이다.


서비스직을 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친구가 말했다. 자신은 ‘유흥업소’에 가는 것이 잘못임을 알지만, 비즈니스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그들이 원한다고 말했다. ‘사회’가 그런데 누굴 탓할 수 있냐고 말했다. 왜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싶냐 물으니 ‘돈’이었다. 가난한 나는 그 친구의 돈으로 술을 얻어먹고서, 가는 길에 게워냈다. 사회생활. 거짓말이다.


네 번째 문단에서 나는 마치 내가 반성할 것처럼 적었다. 그것도 거짓말이다. 내 방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사랑을 갈구하며, 우정을 받아들이고, 사회에서 생활한다. 단 한 번의 성찰로 나는 바뀔 수 없다. 나 따위가 뭐라고 사회를 바꿀 수 없지만, 아직 ‘나’ 조차도 바뀌지 못하는 게 나 자신이다. 내 존재는 거짓말이다.


대인동의 유리 너머로 작은 인형과 널 부러진 캐리어 하나를 보았다. 그것이 누구의 물건이었을지 머릿속에 그렸다. 공간에 대한 해설보다 때로는 전혀 상관없는 그 물건들이 과거를 잘 이야기해줄 때도 있다. 그 나래 속에서 물건을 들고 있는 사람은 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세 가지의 거짓말로 이루어졌고, 다시 세 가지 거짓말로 그들에 얼굴조차 채워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