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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Dec 04. 2020

12월이 오면.

빠른 년생의 나이 먹기.

아내가 달력을 보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벌써 12월이야!!"


"응, 그러네"


그러고 보니 벌써 한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갑자기 날씨도 부쩍 추워졌다. 아침에는 차 앞유리에 성애도 끼어있다. '패딩을 꺼내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아내가 다시 소리쳤다.


"벌써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단 말이야?!!!"


'아........'


아내는 날씨가 추워지는 것보다, 아이들의 겨울방학 보다, 가족들과 함께 할 크리스마스 같은 낭만 보다, 한 살 더 먹는 나이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만 나이가 있잖아 힘내"라고 말해주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아내 생일은 1월이니까.




"지금은" 사실 나이가 나에게 그리 중요한 고민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딱히 내게 나이를 묻는 사람도 없어졌고, 애를 둘이나 데리고 다니는 30대 아저씨가 어디 가서 굳이 나이를 밝히는 일도 거의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를 말할 때마다 낭패였던 적이 있었다. 어쩌다 누가 나이를 묻기라도 하면 한참을 계산해 봐야 하는데 비단 나이를 잊고 살아서기도 하지만, 나는 나이가 좀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빠른 년생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어떤 걸 기준으로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보통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 큰 성인이 학생도 아니고 빠른이 어딨냐며 그냥 나이를 이야기하라고 한다. 그래서 어디선가 그냥 나이를 이야기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그 이유는 내가 사는 이곳은 남자 중학교가 한 곳이어서 남자들이 기본적으로 모두 선후배일 수밖에 없는데, 나랑 동갑인 아내 역시 토박이다 보니 같은 기수를 따지게 되는 것이다. (여자중학교도 한 곳이라 여자들도 기본적으로 거의 다 선후배다.)


즉 내가 나이를 계산한다는 것은 나이와 연도가 아니라 내 나이를 묻는 사람의 배경과 나와의 이해관계, 그 사람의 인간관계를 통해 나와 또 겹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계산해야 한다는 뜻이다. 뭘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그렇게까지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히 찔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빠른 년생 친구들을 족보 브레이커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를 나에게 물어보았으니 대답하는 것뿐인데 내가 눈치 보게 만드는 문화가 정말 싫었다. 아내와 나는 같은 빠른 년생 동갑내기로 1월과 2월에 태어나 학교를 일찍 들어갔다. 부모님은 우리가 딱히 영재 여서도, 우리가 학교를 일찍 들어감으로써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그런 것도 아니고 당시에 행정기관에서 그렇게 안내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게 무려 30년 전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어디 가서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눈초리는 내가 받아야 되는 게 아이러니다.


본디 지금은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사용한다는 "세는나이"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고, 나이 한 살로 서열과 말투가 달라지는 복잡한 문화적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호칭과 존대법이 너무 세분화되어서 그런 것일까, 어디선가 들은 거처럼 식민지배의 잔재 때문일까. 누가, 언제부터, 왜, 세는나이로 벼슬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지금 욕은 내가 먹고 새로 누군가 관계를 만들어야 할 때 나만 눈치를 본다.


어렸을 때는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내 자식은 꼭 1-3월은 피해서 낳겠다고 다짐했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 제도가 없어졌다고 한다. 30년 전에 없어졌어야 하는데.




근데 또 신기한 게, 다른 사람 나이는 궁금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도 참 이중적이다. 누가 내 나이를 물으면 난감하면서 나는 궁금해하다니. 그래도 난 대놓고 묻지 않으니 뭐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그거 안다고 달라질게 하나도 없는데,  상관없는 사람 나이가 그렇게 또 궁금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던 적던 그냥 존중해주고 높여주면 되는 건데 말이다. 아마도 잘 됐으면 잘 된 대로 '몇 살 인대 벌써 저렇게 성공했을까, ' 안됐으면 안 된 대로 '몇 살인데 아직도 저럴까.' 이렇게 평가하는 안 좋은 습관이 내 안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나이 같은 문제에 초연하게 살고 싶어도,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이들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게 세월이다. 하루가 다르게 작아지는 아이들 신발과 옷들, 그리고 이제 하나 둘 늘어나는 내 주름살과 빠지는 머리카락.......


나이가 들어가는 건 싫어도 봄은 왔으면 좋겠다.

계절에도 그리고 내 마음에도.

코로나로 힘든 우리 모두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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