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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Dec 14. 2020

세 친구의 대화.

그래서 해? 말어?

"야, 이게 얼마 만이야!"

"그러게 한 반년은 된 거 같은데?"

"우리 일 년에 두 번은 보냐?"

"그래도 그 정도는 보지 않냐?"


25년 지기 죽마고우  세 사람이 고깃집에서 만났다. 개구쟁이 초딩들은 머리가 숭숭 빠진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친구3 : ........아니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는 사람이 자기는 불쑥 소리 빽 질러놓고 내가 맞받아 치려고만 하면 "애들 앞이니까 그만해!" 이래 버린다니까.


친구1 : 아니 OO 씨가 그런 면도 있단 말이야? 난 예쁜 사람들은 화도 안내는 줄 알았는데.


친구3 : 야 예쁘면 사람 아니냐, 너는 40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동심이 있다. 총각이라서 그런가.


친구2 :  야, 넌 아직도 와이프를 이기려고 하냐? 아직 멀었구먼.


총각인 녀석도 끼어있는지라 아무리 결혼 얘기, 아이 얘기는 안 하려고 해도, 서로 직업도 직종도 모두 다른 친구들은 일상 얘기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결국 와이프 흉보기가 나왔다.


친구3 : 그럼, 무조건 져 주라고?


친구2 : 져 줘야지, 여자들은 이게 논리적으로 맞는지 틀린 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냥 자기 말에 수긍해 주길 원하는 거지. 그냥 미안하다고 싹싹 빌어야지.


친구1 : 와... 어렵다 나는.


친구2,3 : 그러니까 너는,


친구1 : 여태 총각이라고~ 에라이, 이거나 드세요~


오랜만에 만났어도, 오래 쌓아온 우정과 세월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넘치고 언제나 시간은 부족하게 느껴지지 마련이다.


친구2 : 그러니까 좀 자주 보자.


친구1 : 그게 되게 어렵다 그치? 너는 3교대고, 나는 2교대고 여기 싸장님은 여기 안 살고.


친구3 : 야, 거기서 여기가 얼마나 멀다고~ 나는 애 키우느라 바쁜겨.


친구2 : 애는 너만 키우냐?


친구3 : 애 둘은 나만 키우지~


친구2 : 아오 나도 둘째 낳는다 낳아!


친구1 : 니가 낳냐? OO 씨가 낳지. 나는 언제 낳냐~!


친구2,3 : 너도 니가 낳는 건 아니자너~ 결혼부터 해!


저녁 8시가 넘어서 만났건만, 11시가 넘어가자 어김없이 친구 2의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1, 3 : 빨랑 들어가 인마~


친구2 : 아녀, 뭐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거야.


친구3 : OO 씨가 방법을 바꾸셨네, 그게 들어오라는 말이지!


친구1 : 이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구만.


친구2 : 알아 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늦게 들어가 보냐. 너네도 방황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 애 보신 다는 분 얼른 들어가세요~


친구3 : 네 걱정이나 하세요~ 우리 애들은 벌써 자니까.


친구1: 에효 됐다 이것들아, 택시 잡아줄게 빨리들 꺼져라. 너네들 보면 내가 결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그냥 이렇게 혼자 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친구2, 3 : 해야지! 결혼은 해야지!


친구1 : 왜? 뭐가 좋은데?


친구3 : 저렇게 늦는다고 전화해 주는 사람도 있잖아~


친구2 : 저렇게 철없는 애 잔소리해주는 사람도 있고~


친구1 : 그게 좋은 거냐?


친구2, 3 : 좋은 거지! 해 무조건 해!


친구2 : 주변에 누구 좀 소개해 주면 좋은데 참......


친구3 : 엄두가 안나지? 인간관계 다 끊길까 봐?


친구1 : 아직 안 갔냐?


친구2 : 아니 내가 집, 회사 집, 회사인데 누굴 알아야 뭘 소개를 해주지.


친구3 : 너도 하고 나면 더 성장하는 너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친구1 : 키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안 컸다.


친구3 : 그러니까 마음이라도 크라고.


친구2 : 몸은 옆으로 잘 크네 뭐.


친구1 : 그냥 내가 먼저 갈란다 이 썩을 놈들아.




일 년에 두 번이라도, 명절 때뿐이라도 저렇게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참 그립다. 지금은 만나는 건 커녕 전화 통화도 일 년에 두 번이나 하나? 각자 먹고살기 바쁘다고, 가족들 건사한다고, 아등바등 살아보겠다고,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슴에 묻어두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것 같다.


오늘도 문자가 울린다. 연말 모임을 자제하고 타 지역 이동도 자제하란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는 만큼 마음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본다. 다시 만나면 또 어떤 아저씨들이 되어있을까. 비록 자주 연락하고 만나지 못해도 어제 헤어진 것 같은 그런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다음번에 만날때는 머리도 더 빠지고 더 아저씨 같아질지 몰라도, 우정은 더 깊어졌으면 좋겠다. 기다렸던 만큼 더 우러나고 진해지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작고 파란 고래는 마침내 깨달았어요.

우정이 어떤 모습이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무슨 맛이 나고

어떤 느낌인지 말이에요.

그건 분명 오래도록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답니다."

- 동화 "파란 고래"에서.




<파란 고래. 글 베스 페리, 그림 리사 먼도프, 옮김 홍연미. 2018, (주)웅진싱크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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