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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Dec 09. 2020

코로나와 조류독감,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께 바치는 반성문.

코로나가 세계적 대유행이 되고 감염자와 사망자가 늘기 시작하면서 한때는 인터넷 가득히 세계적인 전염병의 발병과 피해상황을 나타내 주는 인포그래픽이 넘쳐났었다. 역사와 패션은 반복된다고 했던가. 지금 우리에게는 또 다른 악몽의 반복이 찾아왔다.


조류독감.


한번 올 때마다 농가와 계열회사, 유통업자, 판매자 모두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재앙적 질병.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는 것을 이미 8년 전에 알게 해 준 우리의 주적이다. 그리고 절대 안전지역은 없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었다.




2016년 11월 30일, 내 농장과 불과 70여 미터 떨어진 육용오리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 항원 검출로 반경 500m 안 농장의 가금은 무조건 예방적 살처분한다는 원칙에 따라 20 일령의 내 농장 오리 1만 2천여 마리도 매몰했었다. 예방적 살처분의 범위 설정과 방역대의 설정 그리고 보상금 적용을 위해 실시한 반경 1km 농장 전수검사에서 내 농장 오리들은 조류독감 음성 판정을 받았고, 그 지역에 전무하다시피 한 음성 농장의 사례로 고위공무원의 상징인 노란 잠바의 분들이 시찰을 왔다 갈 정도로 방역의 모범사례가 되었었지만 내가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은 문서화된 보상금이 전부였다.


나에게 오리를 주던 회사도 종오리, 종란을 살처분하기도 했고, 안전지역 농가에 우선 배정해야 하는 점, 그리고 군청과의 입식 일정 조정 등으로 이듬해 3월까지는 다시 오리를 줄 수 없었다. 4월에 받은 오리는 6월이 조금 안돼서 출하했으니 나는 6개월 동안이나 보상금 외에는 소득이 없었다. 보상금은 살처분 분량에 대해서만 나왔기 때문에 한번 사육 분량뿐이었고 그때 생활비 명목으로 받은 은행 대출은 아직도 갚고 있다. (6개월은 3번의 출하 분량이 넘는다.)


어느 날 아버지는 슬픈 눈과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 때문에 이런 직업을

선택하게 해서."


오리를 묻기 약 1주일 전이었다.

오리는 묻고 난 후보다는 묻기 전이 더 힘들다.




전국 어디서든 육용오리 농장에서 의심신고라도 들어가면 오리협회에서는 안내 문자와 함께 철저한 방역에 대한 당부 및 곧이어 내려질 "가축 등의 일시 이동중지 명령"에 대비할 것을 안내해준다. 말 그대로 모든 가금류와 그와 관계있는 사람, 차량 등의 이동을 48시간 단위로 중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축사, 차량에 소독을 해야 한다. 영하의 기온에 장비나 내 손이 얼어 터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강력한 행정명령으로 중지명령 위반 시 고발, 벌금 등의 처분이 내려진다.  전국적으로 내려지는 이동금지도 있고,  반경 10km 및 해당 도단위 행정구역과 그 농장이 납품하던 계열회사 위탁농장, 같은 사료나 부화장에서 납품받은 농장들에 한해서 내려지는 이동금지가 있다.


처음에는 상관없을 것 같이 먼 지역에서 발생한 항원 검출과 확진 판정은 점차 북으로, 남으로, 동으로 서쪽으로 구분 없이 뻗어나간다. 지역소장들의 농가 방문도 중지되는데, 지역소장들은 협회와 도청 상황실 등 관계기관과 끊임없이 연락하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발생농장과 주변 방역대에 우리 계열회사의 위탁농가가 포함이 되는지, 된다면 살처분 예정 마릿수가 몇 마린지 그리고 우리 계열회사 직영, 위탁농장이나 도계장하고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파악해서 보고하고 근처 농가들에게도 전파해준다.


처음에는 우리 농장에서 20km 떨어져 있다던 발생 농장은 며칠 뒤에는 12km, 그리고 또 며칠 뒤에는 8km. 이런 식으로 사람의 숨통을 조여 오고 피를 말린다. 나는 그때부터 20일 만에 부산에서 한양까지 점령해 오는 왜군을 보며 의주까지 피난을 간 선조의 심정을 이해하기로 했다. 나도 갈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 농장을 이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국 어디로도 내가 갈 곳은 없는 것처럼 보였고, 하루하루 출근이 두려웠다. 오늘은 어디에서 터질까. 내 농장은 언제 방역대 안에 들어갈까. 언제 이동중지가 떨어져서 나는 집에 오지도 못하게 되거나 할까. 매일 집을 나서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때 해주신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말씀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러나 그때 나는 비로소,

지난 40년간,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출근했는지 깨달았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IMF, 내가 유학 중일 때 처음으로 터졌던 조류독감, 2008년부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불경기에도 아버지는 출근하셨다. 내가 너무 어리거나, 경제에 무관심해서 지나쳤던 수많은 불경기와 실적 저조에도 아버지는 매일, 심지어 빨간 날에도 출근하셨다. 그게 아버지의 사명이었고, 가장의 무게였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직도 일 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늘 감사하셨다.


결국 반경 600m 밖의 농장에서도 항원이 검출되고 그 이틀 뒤 바로 옆 반경 70m 농장에서의 의심신고로 나와 조류독감과의 전쟁도 끝이 났다. 간절한 바람도, 절절한 기도도 소용이 없었다. 질병은 예외 없이 내 주변에도 찾아왔다. 옆 농장의 확진 발표 후 당연히 나도 묻을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느 곳에서도 안내가 없더니, 밤 11시 반에 연락이 와서 내일 아침 9시부터 묻는다고 했다. 얼마나 공무원들이 바쁘면 그럴까 싶었다. 온다던 전수검사 요원들도 안 와서 매몰작업도 미뤄졌다. 한동네에 농장이 몰려있으니 터진 곳은 얼마 안 돼도 일거리는 넘쳐났다.


하늘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비가 부슬부슬 오던 날 외국인 노동자로 이루어진 용역업체 직원 18명은 아직 20 일령의 병아리를 마구잡이로 몰아서 틀에 가두고는 비닐을 씌워 가스로 질식해 죽였다. 질식하지 않은 오리는 일일이 삽으로 때려죽이거나 목을 밟아 비틀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지난 20일간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가며 이 아이들을 애지중지 키웠을까. 저 사람들도 하루에 최소 두, 세 농장 작업해야 하고 연말까지 일이 밀렸다고 한다. 빨리 죽이고 빨리 묻고 가야 하는 저 사람들. 한국인들은 아무도 버티지 못해 외국인을 쓴다고 했다.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를 말을 쓰는 저 사람들은 왜 타국에서 오리를 때려잡으며 이 역하고 고된 일을 해야 할까.



그렇게 오리를 죽여서 산처럼 쌓아놓으면 5톤 장축 트럭에 큰 매몰통을 가져와 포클레인으로 땅에 매몰하거나 농장 한 구석에 두고 집게차로 (여러분이 재활용 수거할 때 보는 그 집게차가 맞다) 노란 병아리 사체를 매몰통에 쓸어 담았다. 한두 마리 떨어지는 것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한 마리씩 던져 넣었다. 그리고 잘 부패하라고 미생물제와 냄새 많이 나지 말라고 무슨 약을 넣는데 딱히 효과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묻어두고 돌아서는 순간 그 통은 이제 군청 축산과에서 환경과로 소관이 넘어가는 듯, 냄새로 인한 민원신고에서는 환경과 직원이 나왔다. 파리 때는 축산과 직원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걸리지 않았으니 패한 것도, 오리를 모두 묻었으니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삶이 힘들고 고달팠는데, 바이러스는 올해도 또다시 이렇게 활개 치는 것을 보니 그때 내가 졌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대비는 부족했고 적은 언제나처럼 강력했다.




2020년 11월 2일 한 농장의 의심신고를 시작으로 조류독감은 다시 가금 농장에 전쟁을 선포했다. 11월 28일 육용오리 농가에서 고병원성 항원이 검출되면서 다시 바이러스는 북으로, 동으로, 남으로 진격했다. 결국 12월 8일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계열회사에서 불과 12km 떨어진 메추리 농장에서 의심신고가 들어갔다. 올해는 유난히 메추리 농장 의심신고가 많았는데, 나는 이 업계에 있었으면서도, 우리나라에 메추리 농장이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한 농장에서 그렇게 많은 수의 메추리를 키우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머니께서 전화로 "애들한테 할아버지 힘내시라고 동영상이라도 찍어서 보내드려. 오늘 아침에 출근하시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냐고 하시면서 출근하시더라." 해주신 말씀이 하루 종일 가슴에 멍이 되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까지 힘들게 사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면 이제 그만 쉬세요." 쿨하게 말씀드릴 수 없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난 아직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고, 불안하니까. 내 아이들은 아직도 어리고 내가 혼자서 이 아이들의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부터 들었으니까. 지난날, 내가 더 용기 내지 못했고 내가 더 노력하지 않았고, 내가 더 도전하기 못해서 지금 아버지께 편안한 휴식을 드릴 수 없는 것 같아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이런 이기적인 내가 부끄러웠다.


사실 얼마 전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회사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올해 코로나 19로 인해 소비가 극심하게 위축되면서 회사 운영지표가 너무나 어려워졌고, 다른 계열사들과 함께 구조조정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일주일을 제대로 드시지도,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하면서 구조조정을 피해보려 했지만, 결국 몇 사람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고, 누군가는 억울함을, 누군가는 서운함을 표현하며 원망했다. 모두의 사정과 형편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모두를 아끼는 아버지는 그렇게 슬퍼하셨다. 참모진에게 차라리 자신이 가장 먼저 그만두겠다고 말씀하시는 걸 뜯어말렸다고 했다. 그게 불과 일주일 전인데, 이제는 조류독감이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왔다.  


왜 이런 고통과 고난은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일까. 내가 아직도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더라면 나도 또다시 피 마르는 심리적 전쟁을 하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도 하고, 나만 이런 고민을 피해 간 것이 더더욱 아버지께 죄송했다. 나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게 해주려고 했을 뿐인 아버지는 결국 지금도 혼자서만 고생하시는 게 되어버렸다. 농장을 정리하고 몇 달간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아들이 이럴 때 뭐라고 위로해 드릴지 그 말 한마디를 생각하는 게 어려워서 이렇게 밤새 고민하는 것도 한심했다.


오히려 지금 아버지를 조여 오는 그 두려움의 실체를 너무 잘 알고, 그것과 함께 맞서 싸우던 전우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심정을 너무 잘 알아서 지금 아무 말도 해드리지 못했다.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밀었던 대표이사가 어떻게 이 위기의 순간에 매일매일 남아있는 직원들을 보며 힘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지. 암울한 회사의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각자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독려해야 할지. 아버지는 그 어려움과 민망함 그리고 그 쓰라린 마음을 어떻게 다잡으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계실지 눈에 너무 선해서 눈물이 났다.




그동안 한 업계에서, 한 회사를 40년이나 다니시면서 대표이사의 자리에 올라가신 아버지 덕분에 나는 유학도 다녀왔고 남부럽지 않은 다양한 경험들을 했으며 많은 가치를 배웠고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살았다. 같은 업계에서 종사하면서 나는 닿을 수도 없었던 아버지의 영향력을 확인했고, 아버지 인맥의 도움도 받았고, 아버지가 받고 있던 존경과 부러움, 시기와 질투들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 조차도 닿지 못하는 더 높고 더 멀리 있는 벽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에게는 최고의 영웅이었고 위인이었고 모델이었다. 오늘 나와 아이들이 누리는 행복의 날들만큼 어제 아버지의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다. 다만 아버지도 그 행복에 함께 기뻐하고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보람으로 그 짐을 지고 오셨을 터였다.  지금 우리가 함께 웃을 수 없음에 슬프지만, 다가오는 주말이 아버지의 생신이라는 게 더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을 하시는 아버지와 아이들의 영상통화를 보면서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었다.


아버지께서 무엇을 위해 아직도 이렇게 힘들게 사시냐면,


그것이 우리가

함께 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부족하고 못나서 이지만,

아버지와 같은 꿈을 꾸고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으며,

또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아버지를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늘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께, 그리고 코로나와 여러 가지 어려움과 맞서 싸우고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오늘도 가족을 등에 업고 출정하는 모든 아버지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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