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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Dec 18. 2020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일상에서의 변화라는 것은 어쩌면.

농장을 운영하다 보면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오늘은 도대체 또 어디가 고장 나서 나를 귀찮게 할까'를 고민하며 출근했다가 '와 내가 이런 일도 할 줄 아는구나'를 깨닫게 되면서 집에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일을 해보고 사람을 불러보고 수리해 보고 어깨너머로 배우고 고쳐보고 나서 좋은 점은, 집안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오리를 사육하는데 꼭 필요한 사양기구들은 24시간 가동이 되도록 유지를 해야 하는데 마치 군부대를 운영하는 것과 원리가 비슷하다. 즉, 늘 전투대기 및 훈련상황을 상정하고 기구나 기계를 운용해야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빛, 열, 물과 관련해서는 24시간 끊김이 없어야 한다.


덕분에 예고 없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조치, 예를 들어 사소한 전구를 가는 일 (아주 푹신한 바닥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약 3미터 높이의 전선에 대롱대롱 매달린 전구)부터 플라스틱 급수관의 해체 및 재연결, 재단 및 배치, 급수용 모터의 교체 및 압력 스위치의 교체 또는 간단한 점검, 높이 3미터가 넘는 행거 도어의 롤러를 갈아주는 일, 윈치 모터의 점검과 퓨즈 교체 등등 급작스런 상황들에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야 한다. 일단 오리 농장에는 매일 꼭 확인하거나 조치해주어야 하는 일이 정해져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는 환기와 온도 관리, 그리고 사료 급이와 급수량 확인하기가 있다.


특히 환절기나 겨울철의 경우에는 시간대별로 또 기상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날씨별로 일조량과 축사 내부 온도에 신경을 쓰면서 환기를 해주어야 한다. 환기의 방법에는 후면과 중간 팬의 작동과 옆면 윈치 막의 개폐 정도를 이용하거나 축사 문의 개폐 또는 천장에 뚫어 놓은 침니형 환기 굴뚝을 사용하는 방식 등이 있다. 축사의 문이나 옆면의 윈치를 개폐하는 경우에는 환기량의 정도를 계량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자주 축사 내 공기 상태를 확인해주는 것이 좋으며 다른 동물, 특히 조류의 축사 내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그물망 설치가 필수다.


정해진 시간에 축사 내부를 순찰 돌면서 시설물의 파손을 확인하거나 수리하고 다친 오리나 폐사체를 치료하거나 수거해야 한다. 또 각 사료통을 확인해서 잘 안 먹는 쪽과 잘 먹는 쪽의 오리를 몰아서 섞어주고 바닥상태를 확인해서 깔짚을 깔아줄 스케줄을 조정한다. 계절에 따라서는 어마어마하게 생겨나는 거미줄을 걷어내 주는 것도 일과 중 하나다. 또 급수 라인을 쳐보면서 물은 잘 나오고 있는지 수온은 알맞은지 높이는 적당한 지도 확인하고 오리가 몰려있는 것을 보고 오리가 없는 곳의 사료가 부족하진 않은지 물은 잘 나오고 있는지 온도는 적당한지 어둡지는 않은지를 확인하고 조치해주어야 한다.


축사 입구에 설치된 급수통으로 물은 잘 들어가고 있는지, 여분의 물은 충분한지도 확인하고, 설치한 쥐약은 잘 줄고 있는지, 근처에 죽은 쥐의 사체는 없는지 확인해서 수거해야 하고, 발판소독조의 소독약 상태는 괜찮은지 교체시기가 되었는지 장화의 상태는 괜찮은지도 확인해야 한다.


축사 밖으로 나와서 사료빈을 확인하고 다음 사료 주문일을 결정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일령별로 먹는 사료의 종류가 세 종류이므로 어떤 종류의 사료를 주문할지, 벌크차로 한 번에 오기 때문에 총합을 얼마로 주문하되 각 동별로 어떻게 나누어 부어야 할지, 남은 사육기간이 얼마고 한번 부었을 때 다 먹는 기간이 얼마인지를 잘 계산해서 시켜야 한다. 또 사료차의 크기에 따라 사료 적재량에도 차이가 있고 우리 농장 진입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런 상황도 잘 고려해야 하며 또 겨울철에는 언제 이동중지가 떨어질지 모르니 조금 여유롭게 주문하는 것도 필요하다.


겨울철에는 맑으면서 가장 날씨가 따뜻한 시간이 가장 바쁠 수밖에 없다. 일단 환기를 무조건 해줘야 하기도 하지만 소독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소독은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이 원칙이지만, 영하의 온도에서는 소독약의 효과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겨울에는 자주 해주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조류독감이 성행할 때는 매일 소독을 권장하지만 영하 11도 등의 날씨에서는 사실상 액체류의 약품을 이용한 소독은 어려움으로 생석회를 활용한 소독과 차단방역을 철저히 하는 수 밖에는 없다.


소독약도 산성 계열과 알칼리 계열 등의 성분 종류와 원재료에 따른 약효, 그리고 유효기간과 지속 주기, 희석 배율 안전지침 등이 모두 다르므로 잘 읽어보고 사용하되 겨울철에는 생석회와의 혼용 가능성도 고려해서 구입하고 사용해야 한다.


이 외에도 봄부터 가을까지 주기적으로 예초 및 제초, 담장 등과 같은 외부 시설물 점검을 통한 야생동물 침입 요소 제거 및 배수로 점검 등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군대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상당히 즐거운 일은 아니다. 군대에서 그런 일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한 친구는 내 애타는 속도 모르고 아예 일을 할 때 예비군복을 입고 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말도 했었다. 나쁜 XX.




처음에는 오히려 일 배우는 것이 수월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전역 직후였으므로 딱히 노동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고, 하는 일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으니 어렵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일 년여 매뉴얼 작성 및 각 농가 견학 그리고 인턴십에서 잘리고 농장 인수까지 쉬고 난 뒤, 아무 도움 없이 혼자 하는 것은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고 무엇보다 정말 귀찮은 일이었다. 결국 삼촌에게 도움의 손길을 벌리긴 했지만 무척이나 외롭고 지루하고 요령이 생기기 전까지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보장이 있을까? 가령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대신에 아주적은 소득으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또한 일을 하면서 늘어가는 능력과 기술에 대한 만족도 있다. 경력이 쌓이면서 함께 늘어나는 전문적인 기술이나 관계 또는 경험들은 단순히 소득과 일이라는 이분법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가치를 안겨주기도 하고,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서 더 좋은 조건으로의 이직이나 새로운 분야로의 진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직업이라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또는 내게 필요하거나 내가 얻어낼 수 있는 소득과의 접점인 것 같다. 그 접점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에 또는 현재의 직장에 불만을 느끼는 게 아닐까.


 "안다거나 이해한다는 것은

 '바뀐다'는 뜻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지음 2020, 다산북스)


오늘 하루 열심히 일했고 무엇이라도 배웠다면 어제의 나와는 달라진 새로운 나 인 것이다. 그것이 일적인 부분이었든지, 아니면 직장동료와의 긍정적이든 부정적인 관계 부분이었든지, 아주 작은 깨달음에도 성장하는 나를 바라보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지만, 어제와 달라지는 나를 만들어 갈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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