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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Dec 21. 2020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수고했어 오늘도.

나는 지금 집에서 놀고 있다.


휴일이라서 노는 게 아니고 일이 없어서 논다.


사실 나름대로는 바쁘다. 일주일에 두 권에서 세 권 정도의 책을 읽고 책을 읽으면서도 필사에 가깝게 노트 필기를 한다. 그리고 거의 매일 노트나 브런치에 글을 쓴다. 또한 코로나로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6살 3살, 와.... 이제 곧 7살 4살 되는 떼쟁이들 뒤치다꺼리까지 한다.


집에서 노는 것도, 원래 내가 꿈꾸던 그림은 미국 시트콤 Two and a half Men에 나오는 애쉬튼 커쳐 같이 스타트업을 고가에 대기업에 팔아넘기고 다른 사업을 구상하며 쉬는 젊고 유능한 남성이었는데, 가족들의 평가는 영락없는 조선시대 서생이다.


얼마 전 아주 오랜 지인과의 식사자리에서 "그래서 요즘 뭐해?"라는 질문에 "집에서 책 읽고...... 아, 저 글 써요. 브런치라는 곳에서"라고 대답했더니 아버지께서 발끈하시며 또박또박 "다음 사업을 준비 중에 있다"라고 정정하셨다. 가족들 중에서도 유난히 아버지와 아내에게 브런치는 일단 "취미생활"의 공간, 또는 일과 병행하는 제2의 공간 그 이상이 되면 안 되는 곳이다. 브런치로 인한 "수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브런치로 인한 "만족"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위해 경영경제, 마케팅에 관한 책들을 읽었더니 요즘은 그런 게 인문학과 디자인이랑 연결돼서 철학과 디자인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그게 또 신학과도 연결돼서....... 해서 결국은 다시 유학을 가고 싶어 졌다"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더니 옆에서 아버지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서 반대쪽을 봤더니 아내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밥만 먹었다.




사람이 직업을 가지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수입 때문일 것이다. 수입이 있어야 기초적인 또는 더 나은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입은 많을수록 좋다.


원래 오리농장의 위탁사육 계약은 보통 1년 단위다. 그때 기준 사육 수수료를 정하는데 사육농가 협의회 임원단과 협의를 한다고는 하지만, 일단 계열회사의 수익이 보장되어야 농가 할당물량이나 연간 사육수수가 보장되기 때문에 계열회사의 입장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곧 기준 사육 수수료에는 시장 상황이 민감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준 사육 수수료는 1년에 여러 차례 바뀌기도 한다.


다만 기준 사육 수수료의 변동에도 변함없는 사실은 열심히 한 사람은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기준 사육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낮은 경우 수익률은 낮을 수 있으나, 실제 수령하는 금액은 다른 농가에 비해 월등히 많다. 사육 수수료가 내려갈수록 수익률을 위해서 운영의 효율이 더욱 중요해진다. 내가 운영을 해보고 또 많은 곳을 견학해보면서 성적이 좋고 수수료를 많이 받는 농가들에서 발견한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첫째, 성적이 좋은 농가는 오리와 보내는 시간이 많다. 한 지역 소장이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제 지역 농가 중에서 항상 상위 1-3등 안에 드시는 OOO사장님의 경우는 제가 언제 가던지 거의 대부분 항상 축사에서 나오세요, 관리사도 아니고 오리 장안에서요." 흔히들 식물도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하물며 오리는 어떻겠는가. 자주 들여다볼수록 오리의 입장에서 무엇이 더 필요한지 알기 쉽다.


둘째, 단순히 오리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걸 떠나서 자신만의 원칙과 규칙이 확고하다. 그때그때 누가 이게 좋다고 하더라는 방법이 아닌, 내 농장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나만의 사육법을 오랜 시간의 실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했다. 또, 다른 누가 와서 일을 대신한다 하더라도 (예를 들면 자녀나 아내) 사양관리에 문제가 없도록 일의 절차가 매뉴얼화되어있다. 즉 시스템의 프로세스화가 완벽히 이루어져 있다.


셋째, 자신의 우수한 성적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농장의 성공에 귀를 기울이고 최신 기술과 기계, 약품과 영양제 및 사료첨가제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특히 매일 꾸준한 사육관리 일지를 작성해서 사육이 좋았을 때와 나빴을 때의 조치방법의 차이점이나 문제점을 파악한다. 매주마다, 매 달마다, 매 해마다 달라지는 깔짚이나 난방유 같은 원자재 비용을 기록, 등락의 추이를 살펴보고 예산을 산정해서 농장을 운영한다.


넷째, 각종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사업을 놓치지 않는다. 대부분 5-60대분들이 많은 만큼 디지털 디바이드 즉 PC나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나 각종 사이트 또는 앱의 이용이 원활하지 않은 분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면사무소나 마을 이장 등에 수시로 전화하고 찾아가 보면서 지원 정보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신청한다. 때마다 나눠주는 소독약과 살서제 등을 수령하러 가보면 이런 분들이 가장 먼저 수령한 싸인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 이런 농가는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고장 난 채 방치되지 않고 잘 작동되는 소독기, 잡초 하나 없는 잘 정돈된 마당, 창고 안에 각종 공구나 사양기구들도 잘 정리되어있고, 심지어 장화도 깨끗하다. 정말 '기본'을 잘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 부분은 아버지께서 내 농장을 지나가실 때마다 늘 지적하시는 부분이기도 했다. 정말 뒤돌아서면 자라 있는 잡초들과 축사를 드나드는 트랙터 바퀴 자국, 누가 언제 버렸는지도 모르는 쓰레기들로 농장은 금방 지저분해 보이기 쉽다.


사육의 방식은 키우는 오리의 육종, 지리적 자연환경 (위치, 방위, 일조량, 강수량, 풍향, 풍속 등), 축사의 형태 및 자재, 환기 방식과 설계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딱 하나로 정해진 가장 좋은 방법이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장주가 "내 농장을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다. 내 농장을 가장 잘 알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능한 많은 방법을 시도해 보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 가능한 많은 가능성들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다.


한번 사육하는데 최소 40여 일, 일 년에 최고 6번 반 정도밖에 키우지 못하니 매번의 사육마다 계절도 매번 바뀐다. 그러므로 한 계절 최적의 사육법을 알아내는 게 몇 년이 걸릴지, 또 그때그때 새로 나오는 사료 첨가제 및 새로운 사료와의 조합이 얼마나 잘 맞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묵묵히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내게 주어진 오리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다른 요령도, 특별한 비법도 없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나는 경제가 나빠져서 실직한 것도 아니고, 조류 독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쉬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 사태 훨씬 이전에 이미 농장은 매물로 내놓았었고, 조류독감이 닥치기 훨씬 이전에 농장을 처분했다.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가 변해가는 시장과 기술의 발달, 그리고 경제의 구조와 소비의 형태가 더 이상 그 사업으로의 투자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이 되었고 전면적인 진로의 변경이 필요해서 일종의 갭이어를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의 그 어느 때 보다도 가장 활발히 독서 중이고 또 가장 다양한 분야에 대해 탐독 중이다. 또한 내 인생의 그 어느 때 보다도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나는 모든 과제가 최소한 A4 기준으로 3-5장의 글쓰기였다. 많게는 10장에서 15장짜리도 있었는데, 요령을 방지하기 위해 폰트, 여백, 자간, 행간이 지정되어있는 글쓰기였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더 많은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노력에 대한 정의, 성공에 대한 정의 그리고 그것에 부여하는 가치의 차이는 개인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네 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두고 무엇이라도 해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노냐고. 그런데 또 어떤 이는 말한다, 네 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두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더 큰 걸 준비해서 해달라고 하지 왜 아무거나 하려고 하냐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는 진짜 내가 해보고 싶은걸 하고 싶다고.


나는 유치원도 지인이 운영하시는 선교원을 졸업해야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행정구역에서 지정해 주는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대학교는 아버지께서 가라는 학교에 무조건적으로 진학했다. 아버지도 그럴 거면 좀 더 좋은 대학 가보라고 해보시지. 그러고 나서도 군대도 가라는 데를 다녀왔고 일도 하라는 걸 해봤다. 유일하게 내가 정한 것은 결혼할 여자였는데, 결혼식장과 시간, 축가 마저 아버지가 결정하셨다.


내 인생에서 모든 선택은 아버지가 하셨지만, 모든 삶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운동회에도 소풍에도 중요한 발표에도 내 콘서트에도, 아버지는 늘 바쁘셨다. 30년이 넘도록 매일 편도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셨고, 야근은 당연했으며 몇 달이 넘도록 월급을 못 받아오시기도 했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토요일도 출근하셨으며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도 없었다.


그게 아버지한테는 최선의 노력이었고 성공의 기준이었다. 그렇게 해서 두 자녀를 모두 유학 보낼 수 있고 안락한 집에서 생활할 수 있고, 아들에게 어떤 기회든지 마련해 줄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주는 게 본인의 목표이자 성공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아버지'로서의 성공은 자녀들 곁에 있어주는 거였다. 첫째는 어떤 성격인지, 둘째는 무엇을 잘하는지 세심하게 알아봐 주고 용기 낼 수 있도록 응원해 줄 수 있는 아버지. 다행히 나에게는 그럴 수 있는 여유와 아이들에게 그것을 실현시켜줄 할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들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에게서 그 짐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느새 70을 바라보는 진짜 할아버지가 되어있었다.


이제는 나도 노력을 해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연습도, 경고도 없이 그렇게 시간이 왔다.  이제 바뀌는 시대만큼 노력의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내 사명이라면 일단 나는 나를 좀 더 알고 싶다.


나라는 한 개인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무엇을 가장 잘하고 무엇을 가장 자신 있어하는지. 이제는 개인도 브랜드가 되는 시대다. 나를 잘 팔아야 내 제품이든 내 서비스든 내 상품도 잘 팔리는데 내가 나를 잘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케팅 책을 읽어도 그래서 나를 어떻게 팔 것인가. 철학 책을 읽어도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아이들에게 시달려도 그래서 나는 어떤 아빠인가. 아내에게 돈 벌어 오라고 구박을 받아도 그런 나는 어떤 남편인가를 항상 고뇌하며 사색한다. 그러니 조선시대 서생이라고 한다. 내 자아가 올바로 서서 올바른 정신으로 나와 내 가족을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또 내게 주어진 사명을 이해할 수 있을 때라야 도전도 가능할 것이다.


어제까지 아버지가 정해주는 대로만 살던 아이에게 오늘부터 나가서 돈 벌어오라는 건, 내가 우리 3살짜리 아들에게 갑자기 "이제 어린이집 말고 출근해"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를 바로 알자. 그래서 세상을 바로 이해하자. 그리고 제대로 노력하자. 노력이 나를 배신했다고 생각하기 전에 내 노력이 올바른 방향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자. 내가 나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그게 나에게 맞는 방법의 노력이었는지를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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