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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Dec 22. 2020

올바른 방향에 관하여.

자녀 양육과 오리 몰이의 공통점.

"몰이"    

명사 :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목으로 몰아넣는 일. 또는 그렇게 몰아넣는 사람. (표준국어대사전)

몰이에서 중요한 것은 목으로 가는 방향이다.


요즘 들어 아내와 아이들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제 1년 뒤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슬슬 어떤 교육방법과 방향으로 아이를 지도해야 할지 우리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아내는 소셜 미디어에서 "~코치"님들의 라이브 방송이나 블로그 등을 참고하며 몇 학년 때부터는 뭘 준비해야 하고 영어는 언제 시작해야 하고 수학, 과학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고 등등을 한참 이야기했다.


"그래서?"

"응?"

"그렇게 공부하면 뭐가 되는데?"

"서울대 가지."


"어디를 가냐고 물은 게 아니고, 어떤 사람이 되냐고."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누구를 만드는 게 아니야, 어디를 보내는 게 더 중요한 사회라고."




교육의 목표가 학교 이름이나 전문직종이 될 수 있는 전공이라는 게 너무 안타깝다.  대학교육이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목적이 되다 보니 무조건 전문직종이 될 수 있는 곳이 최고가 된 것이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고수입이나 안정적인 수입의 직업"이 최고라고 여기는 사회적 풍조도 한몫한다. "엄마 친구 아들"들이 흔히 갖는 직업전문직 아니면 대기업 사원 아니면 국가 연구원이다.


요즘에는 공무원이나 공기업도 높게 쳐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나 어느 모임에서든 우리 어머니는 항상 꿀 먹은 벙어리 었다. 유학은 갔으나 한국사람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아이비리그나 유명 주립대도 아니고, 졸업은 했으나 외국계 대기업이나 컨설팅, 무슨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기업에 다니지도 않았다. 소박하게 시골에서 오리를 키웠다.  


오리를 키우다 보면 오리를 몰아주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병아리를 처음 받아서 한번 몰아준다. 이때는 몰아준다기보다는 마구잡이로 날뛰게 큰소리로 불러본다. 인공부화로 부화한 병아리들은 안타깝게도 성오리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사람이 "꽉! 꽉!"이라고 하든지, "꽥! 꽥!"이라고 하든지, "꼬끼오!" 하든지 다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달려온다.


이때는 병아리의 건강상태와 활력, 즉 타고난 기초체력과 병력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종오리의 영양상태, 부화장의 알 보관상태, 부화기 내부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일부 병아리는 집단사육을 버틸 수 없을 만큼 약하게 태어나는데 이런 몰이 과정을 통해 걸러내기도 하고 대강의 건강상태를 파악해서 부화장에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


이때 병아리 소리가 나는 쪽으로 무조건 달려왔다가 아무것도 안 해주면 무리를 이루어 축사 내부를 원을 그리며 크게 돈다. 이때 약한 개체는 가장자리로 치이거나 가운데 덩그러니 남아있게 된다. 이런 몰이는 병아리 기간 동안 며칠간 계속되는데 초기 폐사 및 약한 개체들의 질병 유무와 사육 가능성 유무를 빨리 파악해야 사료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분동"이라는 과정에서 몰아주게 된다. 분동은 주로 온도 유지를 목적으로 한 곳에서 키우던 오리를 각 축사동의 크기에 맞게 무리를 나누어 이동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보통 11-15 일령 사이에 한다. 병아리장에서 각 축사동까지 칸막이를 이용해 통로를 만들고 발이나 다리가 다치지 않도록 깔짚이나 보온덮개 등을 깔아준다.


일부 무리는 엄청난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날씨와 온도, 풍속 등 날씨 상황도 중요하고 병아리장에 남아서 떠나는 오리들을 지켜보는 오리들 새로운 축사에 들어가서 적응해야 하는 오리들의 스트레스를 얼마나 잘 관리해 주느냐가 사육에서 거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병아리장과, 이동한 오리가 머무는 축사의 온도 관리 및 스트레스 완화 첨가제, 사료의 준비, 깔짚의 상태, 이동시의 발걸음 속도 등이 중요하다.


몰이에서의 방향은 이때 중요해진다. 몰이꾼이 서는 위치, 몰이꾼이 내는 소리나 몸짓, 한 번에 몰아가는 오리 떼의 마릿수 등이 오리 떼 이동의 효율을 결정하기도 한다. 무작정 오리 떼 가운데로 뛰어들거나 한 사람이 너무 앞서 나가면 오리 떼는 양옆으로 헤치게 되므로 함께 모는 사람들의 이동속도나 거리 간격 등도 중요하다.


이때 최소한의 움직임과 위치 선정으로 오리 통로가 설치된 목으로 몰아가는 게 노하우라고 할 수 있는데 가끔 일종의 "알파(우두머리)"오리가 얻어걸리면 수십 마리 오리가 그냥 따라가기도 한다. 일단 통로에 들어서면 앞만 보고 달리는 개체가 많기 때문에 속도만 조절해주면 된다.


이 외에도 성체를 키우면서 깔짚을 깔아주기 위해서나 어떤 공간 수리를 위해 비워야 하는 경우, 사료 섭취량이 너무 떨어지는 개체들이 모여있거나 오리가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 그때그때 몰아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리를 몰아주는 건 "출하 전 검사"라고 조류독감에도 무증상을 보이는 오리들 때문에 오리는 출하 2-3일 전 무조건 독감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농장주가 각 동별로 20여 마리를 몰아서 가둬두면 동물위생시험소에서 인원이 나와 오리 목구멍을 면봉으로 무자비하게 찔러대고 분변의 샘플을 가져가서 검사한 다음 그날 안에 출하 가능 여부를 알려준다.


출하 때는 출하를 담당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몰이를 하므로 나는 몰이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안 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 사람들은 오리를 정말 상품으로 대하기 때문에 오리 몰이에 자비가 없다. 빨리 트럭에 실어내고 다음 농장으로 가면 그뿐이다.




병아리 때는 말소리,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나도 반갑다고 몰리던 오리들은 20 일령이 지나기 시작하면 사람만 보면 기겁을 하고 도망가는데, 은근히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동물적 본능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유전적 학습도 없을 텐데, 매일 보는 사람을 그렇게 피해서 도망쳐야 하는 먹이사슬 아래 단계의 날지 못하는 새를 매일 보던 내 일상은 이미 철학적인 사고와 많은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오리를 가장 지치지 않게 힘들이지 않고 몰아주는 방법은 일단 때를 잘 정하는 것이다. 11 일령에서 15 일령이라는, 시기의 차이가 길게 나는 것도 일단 전기 사료에서 후기 사료를 먹고 소화시킬 수 있거나, 전기 사료통에서 후기 사료통에 닿을 수 있는 크기가 될 수 있을 때까지 성장을 해야 하면서도, 너무 커버리면 몰이꾼의 말을 듣지 않고 이리저리 흩어져 버리거나 걷지 않고 주저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또 그 주간에 장마 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오리가 이동시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 수시로 날씨도 확인해야 한다.


내가 처음 분동을 하는 날은 옆동네에서 헬리콥터로 농약을 치는 바람에 오리가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했다. 또 언제인가는 눈 녹은 물이 처마에서 똑 똑 떨어진다고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아무리 날씨를 예측하고 변수를 생각하고 준비를 하고 날짜를 정해도 늘 예상치 못한 일은 마주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분동길이 튼튼하게 잘 되어있고 몰이꾼이 숙련이 되어있으면 시간이 걸릴지언정 분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 방향이 올바르면 나아가는 속도가 더뎌도, 나아가는 개체가 겁을 먹거나, 날씨가 나빠져도, 몰아주는 사람만 잘 인도해주면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


아이에게 대학 이름만 보고 앞으로 달리라고 할게 아니라, 어떤 가치를 보고 가야 할지를 알려주고, 천천히 걸어가더라도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것의 중요성을 부모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속력보다 어떤 방향을 인도해 주어야 하느냐가 아닐까 싶다. 과연 누구의 꿈과 희망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변화할 세대와 미래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기 힘든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방향이 옳다고 나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아이에게 지도하는 방향이 내가 이루지 못한 콤플렉스의 대리만족이 아님을 어떻게 나는 확신하며 단속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일러줄 방향을 조금 거창한 말로 표현하면 "비전"이 될 것 같다. 기업에 있어서 비전을 정하는 것 설립 단계에서부터 중요하듯이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올바른 비전을 심어준다는 것은 올바른 사고관이나 인성같이 유아기부터 제대로 심어주는 것이 맞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오리를 다 보면 무리에서 오리 한 마리가 갑자기 반대방향으로 뛰어갈 때도 있다. 아무래도 지내던 곳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한두 마리가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해서 몰이꾼은 당황하지 않는다. 곧 무리가 짓는 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통로 즉 올바른 방향에서는 뒤로 가든, 앞으로 가든, 돌아가든 결국 새로운 곳으로 가서 잘 적응하고 훌륭한 오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오리의 경우는 좋은 식자재가 되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 아이에게 "무엇이 되어라"라고 말하지 않고 "누구가 되어라"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라서 꼭 어디를 가는 것보다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더 중요한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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