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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Nov 30. 2020

모를 때는 물어봐도 괜찮다.

질문을 어려워하지 말자.

누구나 처음 하는 일은 있다.


처음 하는 일은 서툴기 마련이다. 궁금한 것 투성이고 실수 투성이지만 우리는 '이런 것 까지 물어봐야 하나?' 또는 '어디에다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지?' 등을 이유로 그냥 모른 채 지나가는 일들이 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 할당받는 업무부터 시작해서 이국적인 음식을 주문하거나,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일 까지, 우리는 일상에서도 때때로 처음 경험하는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요즘 핫하다는 프랜차이즈에 큰 마음먹고 가보았는데 메뉴가 생소해서 어려움과 당혹감을 느끼는 경우 같은 일들도 흔하다.


간단한 문제 거나, 선택의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실수도 괜찮고, 얼마든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기도 하지 않는가. (사실 난 소심해서 그러지 못한다.) 그러나 때로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을 마주하거나 큰 비용이 들어가는 일, 또는 주변에  일에 대하여 아는 전문가가 흔치 않은 일들을 마주 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오리농장이 그랬다.

여러분도 생각해보자, 주변에 오리농장을 오래 운영한 사람이 있는가?


난 없었다.




많은 경영지침서들은 조직의 리더에게 멘토를 찾아 조언을 구할 것을 추천한다. 나는 오리 농장을 운영하면서 개인 농업경영체의 형태가 아닌, 농업회사법인으로 운영을 했다. 법인체를 경영하면서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거래처들과 관계를 맺고 납품 주체인 계열회사 인물들과 나름 사회생활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경험하고, 명함에 큼지막하게 농업회사법인 대표이사라고 적어 다닐 만큼 대외적인 지위를 누렸으면서도 아쉬운 게 있다면 바로 멘토가 없었다는 점이다.


멘토 : [명사]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아무리 인턴활동을 통해 오리를 키워보았다고 한들, 당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최첨단 설비와 자동화 시설을 갖추고 여러 명의 인력으로 돌아가는 정말 공장 같은 농장에서 가진 겨우 일 년 남짓한 실전 경험과, 수십 군데의 농장을 눈으로 보고 농가주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전부였던 나는 태어나 처음 살아보는 지역에서, 태어나 처음 해보는 일 (농장 전체의 경영과, 생활의 독립), 그리고 태어나 처음 느끼는 감정들과 마주해야 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경매를 통해 생각지도 않게 아버지께서 운영하시고, 내가 오리를 납품할 계열회사 가까이 위치한 농장을 얻게 되었다. 때문에 주변에 같은 계열회사에 납품하는 농가가 많이 있었다. 대부분 수십 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계셨고 성적도 좋으시고 성격도 좋으셨다. 그중에서 몇몇 농가주분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셨다. 그 관심들 중에는 젊은 친구가 사육에 가져주는 관심과 열정 그리고 도전에 대한 기대도 많았지만, 그동안 농장의 입장을 잘 몰라주던 계열회사의 대표의 아들은 과연 얼마나 오리를 잘 키울 것인가에 대해 두고 보자는 식의 관심도 많았기 때문에 어깨가 무거웠다.


나는 직접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멘토를 요청하기가 어려웠는데,


첫째는 내 성격 탓이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배움을 요청하고픈 만큼의 경험과 실력 그리고 인품을 가진 분은 수십 년에 이르는 경력도 있는 탓에 최소한 50대 후반에서 60대 초중반 정도로 아버지뻘이었는데, 그런 분들 중에는 언제든지 농장에 놀러 와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정보도 나누자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신 분들도 있었지만, 아버지를 어려워하는 나에게는 그분들 역시 대하기 어려운 어른들이었다. 나는 원래 남에게 부탁을 잘하는 성격도 아니고 처음 농장을 시작하는 시기에는 혈기왕성한 마음에, 멘토링을 이유로 관계가 맺어지면 사적으로 친밀해지면서 매일 불려 다녀야 하지는 않을까, 귀찮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서기도 했다.


둘째는 방역지침 때문이다.

농장에 대한 조언을 듣거나 사육의 팁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 내 농장에 오던가, 내가 누군가의 농장으로 직접 들어가서 배우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변종과 독해지는 조류독감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수정되는 방역지침은 농가 간의 교류를 가급적 자제할 것을 권하고 있다. 농가 외부에서의 만남 조차 겨울철에는 자제해야 하는 마당에 축사 안을 직접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내가 보통 사육의 어려움을 겪는 계절은 겨울이었기 때문에 다른 농장의 사람이 오는 것도, 내가 가보는 것도 어려웠다.


셋째는 특혜 논란의 여지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어떤 특정 농가와 멘토-멘티가 되어 조언을 구하고, 그로 인해 사육성적이 향상된다고 할 경우 다른 농가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계열회사에서 어떠한 특혜를 더 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구조조정 당시에도 나를 가장 먼저 해고할 정도로 정의감이 넘치는 대표이사님이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비록 나에게 수십 년 경력의 농가주 멘토는 없었지만, 위탁사육의 장점 중 하나는 계열회사의 품질 향상을 위해 농가마다 사육본부 소속의 지역소장이 배치되어 사육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요청을 하는 대신에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궁금한 것이 있거나 잘 향상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사육부에 공식적으로 문의를 했고, 사육본부에서 각 농가들에게 생겼던 문제들과 그 해결방안에 대해서 수집해놓은 데이터들과 다른 지역의 사례들을 공유해 줌으로써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많이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농가주들보다 사육부 직원들하고 더 친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인턴으로 함께 일하면서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두었다. 당시 사육본부장님은 조직원들의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협업의 중요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매년 두 차례 자체 워크숍을 진행했다. 친목도 다지고 맡은 지역이 서로 다른 지역소장들이 정보를 교류하고 친분을 쌓아 업무협조가 용이하도록 노력했다. 덕분에 사육본부 직원들 뿐 아니라 병아리 분양차 기사님들이나 직영 농장의 반장님들과의 친분도 만들 수 있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나에게 친절했다. 내가 잘못 행동했을 때에는 진심 어린 충고도 해주고 내가 자신감을 잃었을 때는 용기도 많이 주었다. 직원들에게 사회생활과 조직에 대한 소속감, 그리고 조직 내에서의 행동요령 등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언제든 모르는 것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내 담당 지역소장에게 연락했었는데, 언제나 함께 고민해주었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아는 사람을 찾아서 나 대신 물어봐주기도 했다. 그냥 연락처만 나에게 던져주어도 되었을 텐데, 내 농장 사진을 보여주면서까지 다 알아봐 주고 물어봐 주고 노력해준 그 선의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오히려 대표이사님의 아들이라는 꼬리표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담당 소장이 자주 바뀌었는데, 결과적으로 여러 지역소장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내 농장을 위해 신경 써주고 노력해주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아버지 덕분이든, 그 사람들의 인성이 좋아서든 나에게는 큰 행운이고 복이었다.




미안함이나 걱정이 앞서 혼자서 끙끙 싸매고 고민만 하다가 결국 누군가에게 털어놓았을 때 일이 생각보다 술술 풀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6년이라는 짧은 시간 농장을 경영하면서 느낀 점은 모를 때는 물어보는 것이 최고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럽거나 상대방이 무시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이런 것도 모르나?' 생각할까봐, 아니면 '이런 것 까지 질문해도 되나?' 싶은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고, 어차피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사람들이 나의 고민과 문제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질문을 하고 느낀 것은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물어봐 주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일까? 그리고 일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과 진솔한 질문은 오히려 자기 분야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꼭 같은 분야, 같은 경험이 있었던 사람만이 조언을 해주고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어떤 통찰력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멘토는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대현자 같은 사람이 아니다. 책으로 높게 눌러 쌓인 탑에서 수염을 길게 기르고 수정구슬을 만지며 미래를 예언하거나 언제나 나에게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내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 주고 나의 결정에 도움이 되어주기 위해 조언을 해주고 거기 있어주는,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전문성이 없거나 학력이 낮거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더라도, 분야를 넘나들 지식을 넘어서고 세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의외로 가까운 사람이 그만큼 나를 잘 알고 나를 오래 지켜보았기 때문에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봐 주면서도 내 편이 되어주는 좋은 멘토가 돼줄 수도 있다.


그리고 쓴소리도 결국 나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닐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고 상처 받지도, 그렇다고 무시하고 흘려듣지도 말고 궁극적으로 나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면, 그 사람의 나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다시 보게 될 수도, 그동안 내가 그 사람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게 될 수도 있다.


멘토가 있는가, 멘토가 누군가 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이 기꺼이 도와주고 싶고 공감하고 싶은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닐까?


나의 길을 스스로 밝히는 사람은 주변에 좋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빛을 내기 마련이다.




내가 미국에서 느끼기에는 사람들이 정말 질문을 잘했다.  강의나 토론은 물론 그냥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냥 모르는 게 나오면 언제든 질문했다. 특히 인종이나 출신 지역별로 억양도 다르고 발음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지, 중요한 자리일수록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단어나 개념의 의미를 확실히 정리하기 위한 질문도 많았다. 이렇듯 질문은 우리에게 명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꼭 필요하기도 하다. 특히 전문용어의 사용이 많은 경우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어려울 수 있는데, 모호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질문은 필수다.


농장을 시작할 때는 나도 모르는 단어 투성이었다. 각종 축산 용어들 뿐만 아니라 지역 사투리도 섞여있어서 당최 무슨 말인지 몰라도 눈치로 때려 맞추기 바빴는데, 아무 스스럼없이 질문하는 여자친구 (지금의 아내)를 보며 이 분야의 사람이 아니면 당연히 모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가 나에게 오리에 대해 물어봐 주는 게 참 좋았다. 나를 이해해주려는 것 같았고, 나에게 관심 가져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답하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었다. 질문은 때로는 관심의 표현이다. 내가 너를 더 알고 싶고, 너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싶을 때 질문한다.


모르면 물어보자.


의외로 상대방도 우리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몰라서 못하거나 실수하는 것을 막아주고, 우리의 관심을 표현해 주며 명확한 소통을 통해 분명한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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