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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Nov 24. 2020

인턴의 한마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에 이 지역에 새로 생긴 농공단지에 한 대기업 공장이 입주했다.

얼마 전 그곳의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동생과 저녁을 먹는 자리가 생겼다. 한 동호회에서 알게 된 동생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동호회 활동이 중지되면서 오랜만에 갖는 만남이었다.


"형님(이곳 사람들은 한, 두 살만 차이나도 아주 예의 바르게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준다), 주변에 일할 사람 좀 있으면 저희 소개 좀 시켜주세요. 이왕이면 아주머니들로. 요즘 김치 속 담을 사람이 많이 필요하대요." 라며 명함을 건네는 동생에게 물었다.


"그거, 30대 남자는 하면 안 돼?"

"왜요, 형님이 하시게요?"

"응, 나 집에서 노느니 그거 할 수 있으면 해 보게."

"글쎄요, 안된다는 말은 없는데..... 형님이 이런 일 할 수 있겠어요?"

"왜, 김치 속 담는 거 많이 어려워?"

"그거야 배우면 금방 하실 거 같은데, 하루 종일 서서 그게 쉽지는 않으실 텐데...."


즉, 그 동생의 걱정은 곱게 자란 내가 이런 육체노동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뜻이었다.




육체노동은 나도 해봤다. 오리농장에서.


농장에서 가장 기본은 바로 위치 선정이다. 오리농장은 외진 곳에 위치할수록 좋은데, 신규 축사의 경우 각종 지자체의 조례 및 규제 그리고 주민들의 반대 등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조류독감에 대한 예방 차원에서 다른 가금농장과의 이격거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동떨어질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농장들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며 지하수가 풍부하고 배수가 잘 되고, 거점 소독소와 인접하면서 큰 사료차량,  병아리 차량, 출하차량이 진입하기 용이한 넓은 도로와의 접근성이 좋은 부지의 농장이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면소재지나, 읍소재지가 가깝다면 여러 행정 문제를 처리하기도 좋고 생필품 구입이나 노동력 확보에도 좋으니 더 좋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런 조건은 농장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하기에도 좋은 조건이라서 대지 구입비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농장들의 경우도 아파트처럼 일정 조건(축사의 시설, 건축 자재 및 크기, 위치, 지역, 자동화 비율 등)이 충족된다면 프리미엄이 붙어서 매매가 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축산허가 등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에 행정적인 절차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시간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은 늘 거래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다.


농장의 위치가 너무 좋은 경우 의외의 복병이 숨어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원 또는 주변 사업자와의 불화다. 나는 매년 여름이 되면 주변 비닐하우스에서 내 농장에 대해 파리 발생 문제로 군청에 민원을 넣었었다. 원래 군청에서는 민원인이 누군지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이 술을 드시고 농장으로 찾아와서 자랑스레 민원을 넣으셨다고 자랑을 하시는 통에 알게 되었다. 문제는 그분의 하우스 주변에는 내 농장을 포함해 오리 농장 2곳, 양계농장 1곳, 젖소 농장 1곳, 육우 농장 2곳이 있다는 것이다. 각 농장과 하우스의 거리도 비슷하고 파리가 어느 농장 때문에 생긴다고 말할 명확한 근거도 없고, 무엇보다 축사에는 당연히 파리가 생긴다.


나도 물론 파리 구제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도 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이 문제가 되었듯이, 축사에서 그런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것에는 굉장한 까다로움과 엄격한 절차가 따른다. 해충 방제 약품이 사료나 깔짚, 축분에 섞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는 주로 축사 벽면이나 통에 발라두는 파리약을 설치했었다. 효과는 충분히 눈에 보일만큼 있었다고 자부했지만 민원인을 만족시키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그런 민원으로 인한 추가적인 비용(약품 구입비용, 약품 설치 시간, 도구 구입 비용뿐 아니라 나의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은 모두 나 혼자 부담해야 한다는 것도 단점이다.


내가 자란 도시를 떠나 타지에서 농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외로움이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가 막힌 우연으로 농장을 인수하기 전부터 연애를 시작했던 지금의 아내는 친정이 바로 이곳이다. 도시를 동경하고 똑똑하고 야망 있던 소녀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서울에서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결혼을 하고 출산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런 결혼을 바로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로 종종 부부싸움을 무마하고는 한다.


그런 아내와 달리 나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회사가 가깝기는 했어도 아버지도 한 시간여 거리를 출퇴근하시는 데다가, 내가 인턴 생활하면서 친해졌던 직원들 역시 대부분 근처 도시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 지역에서는 친구나 어울려 놀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농장을 인수하고 결혼하기 전까지 약 6개월간 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예비 장모님이었다. 함께 만나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이야기도 두 시간씩 하고 드라이브도 했다.(심지어 운전도 장모님이 하셨다)


그때도 지금도 장모님과 나는 이야기가 잘 통한다. 말 수가 별로 없는 아내의 어린 시절 이야기, 형님의 이야기들도 모두 그 당시 장모님을 통해 들었다. 또한 농장 개보수를 위해 필요한 인력과 업체의 동원도,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어려운 시골에서 발이 넓으신 장인어른의 인맥과 이 지역에서 유류사업을 하시는 장인어른의 동생, 즉 아내의 삼촌(결혼을 아직 하지 않으셨다)분의 인맥으로 좋은 분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요즘은 귀촌, 귀농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이며 귀농, 귀촌 인구의 연령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그 말은 곧 귀촌, 귀농의 이유가 은퇴 후 조용한 삶의 영위에서 직업적 대안을 위한 이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지방에 있는 공장 등에 취업 목적으로 오는 것이 아닌 이상은 축산업, 임업 등을 포함한 전체적인 농업의 형태가 직업, 즉 소득의 한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부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예비 농업인들은 아직도 지역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나 친지들이 있으니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귀농하는 사람들이 꼭 한번 고민해봐야 할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인적 인프라가 아닌가 싶다.


내가 명확하게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그것에 대한 기술과 노하우가 확보가 되어있지 않은 이상은 결국 사람을 만나고 관계하면서 아이디어도 나누고 서로 배우고 나누고 하면서 얻어야 할 점이 많다. 완벽히 혼자 사는 시스템을 갖추고 시골에 오지 않는 이상은 결국 사람들과 관계 맺고 어울릴 수 밖에 없는데 이왕이면 즐기면서 취미생활이나, 동호회, 여러 가지 봉사활동 등을 통해 인맥을 만들어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운동이나 여러 친목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이왕이면 아는 사람이 있는지역 또는 잘 아는 지역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인턴이었을 때 일이다. 사육부 주관으로 사육농가협의단체장들과 간담회 겸 회식자리가 있었다. 사육농가협의회란 위탁농가주들이 모여서 계열회사 측에 요구사항이나 안건, 의견, 조언 등을 제시하는 일종의 교섭단체이다. 식사가 진행될수록 술도 몇 순배 돌면서 그동안 서운했던 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된 불만족 사항은 바로 "계열회사가 영업과 세일즈에 관련된 대리점주들에게만 잘해준다"였다.


이렇게 농가협의회 지역장들과 회식은 종종 있었지만 대리점주들과는 종종 골프대회도 하고, 간담회 형식을 통한 일종의 판매실적에 대한 시상식도 진행하는 등 여러 가지 보상 활동과 격려활동을 많이 하는데 반해 위탁 농가주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나 격려차원의 소통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소비자들과의 소통에만 열중하지, 납품 관계자들과 소통을 중시하는 문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갑과 을이라는 표현까지 있을까. 나는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이었고 직급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돌아다니면서 술잔을 채우고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회식 때마다 꼭 건배사를 들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날도 농가 협의회장님께서 날 가리키시며 한마디 하셨다.


"그럼 우리 새로 들어온 인턴사원도 건배사 한마디 하지?"


사실 엄청난 관종인 나는 갑작스러운 지적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뭔가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가 이분들의 오해와 서운함을 풀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주제넘은 생각도 들었다. 사실 농가협의회장님은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계셨으면서도 그런 대화가 오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것과 굳이 마지막 건배사를 나에게 시킨다는 점에서 나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건배사 전에 일단 인사부터 드리고 감히 한마디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육부 인턴사원 XXX입니다. 저는 현재 직영농장에서 사육 보조 및 사육관리 매뉴얼 개발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OOO 대표이사님 아들입니다. 아까 많은 사장님들께서 대리점들과의 어떤 차별대우에 관해 말씀 나누시는 것을 들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육부에 인턴사원으로 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직영농장으로 출근하기 전날 대표이사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을 끝으로 건배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육이야 말로 이 산업에서 가장 기본이고 근본이 되는 과정이다. 네가 이 사육을 잘 알아야 이 산업 전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제품이 더 비싸고 인지도가 높은 이유도 바로 이 기본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잘 수행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네가 다른 농장들도 돌아다니면서 그분들께 그런 노하우도 배우도록 해라."


"그래서 제가 앞으로 사장님들 농장에 배움을 청하러 들리게 되면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아낌없는 조언과 지금과 같은 회사에 대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대표이사님께서 비록 표현은 못하시지만 위탁농가들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계시며 저희 제품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바로 사장님들 손에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사육 농가와 소통의 시간이 많이 없었다는 점은, 죄송하지만 사장님들이 일을 너무 잘하셔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 서운함 푸시고 앞으로는 제게 말씀해주시면 귀담아듣고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잔을 들어주시면 건배사 하겠습니다. 자, 실질적으로 XXXX를 대표하는 모든 사장님들을 위하여!!"




부장님과 농가협의회장님의 따봉을 몰래 받으며 자리에 앉았고 그날 회식은 끝이 났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기 아들뻘 되는 인턴 청년의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협의회 회장님은 대표이사님께서 이렇게 말 잘하고 듬직한 아들을 두셔서 아주 좋으시겠다며 어깨를 두드려주시고 만족한 표정으로 식당을 떠나셨다. 인사치레였을지 모르는 몇몇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면서 마음이 두근거렸다.


마지막 농가 사장님들께 드린 약속은 아버지와 사전 조율 없이 내 멋대로 즉석에서 해버렸지만 그 후로 인턴생활 동안, 그리고 내 농장을 운영하면서도 나는 농가와 계열회사 사이의 입장 차이를 해소하고자 아버지께 많은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또 토론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회사가 과연 얼마나 소비자에게 떳떳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내가 한 말 때문은 아니지만 사육부는 이날 의견을 받아들여 원래 매년 개최하던 농가 전체 모임의 성격을 변경해 경품 추첨도 하고 성적 우수 농가주가 직접 앞에 나와 사육 노하우에 대하여  발표하고 경청하는 시간을 추가했다. 또 오랫동안 회사를 바꾸지 않고 위탁농가로 남아주신 분들께 공로패도 드리고, 신규 위탁농가를 환영하는 시간들도 가지면서 회사가 농가의 의견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지 행동으로 보여줬다.


나도 매년 아내와 함께 이 행사에 참가했었는데, 그렇게 평소 며느리에게 다정하신 아버지는 이날만큼은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시고 다른 농가 사장님들과 소통하며 직접 안부를 묻고 건의사항을 듣고 함께 식사하시면서 회사가 얼마나 사육농가의 노고를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몸소 보여주셨다. 경품 추첨도 얼마나 공정한지, 4년을 그렇게 TV를 타길 소망했지만 선풍기만 3번을 탔더랬다. 이 행사도 코로나로 인해 올해는 열리지 못했다.




농장의 시작에 대한 글을 쓰면서 새로운 사업 구상을 함께 하고 있는 나로서는 초심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단단하고 튼튼한 기초를 올바른 방향으로 세우는 일. 비록 이제 오리 농장은 아니지만 다른 기초를 세우는 일에 또다시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라도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우리 집 가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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