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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Nov 17. 2020

겨울은 해가 짧다.

해가 짧은 거지 하루가 짧은 건 아니다.

오늘은 비가 오려는지 날씨가 잔뜩 흐렸다. 비도 간간히 몇 방울씩 내렸다가 말았다가 한다. 이런 날은 왠지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오늘은 그래서 책도 안 읽고, 자료조사도 안 하고, 아침에 짧은 글만 편집해서 올렸더니 벌써 해가 다 넘어갔다. 해가 다 넘어가니 하루가 벌써 다 간 것 같다.


나는 밤눈이 어두운 편이다. 그래서 어두운 것을 싫어하는데 내가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도 낮보다 밤이 길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하는 일이 많은 농장은 겨울에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계획적으로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가장 따뜻한 시간에는 환기도 넉넉히 해주어야 하고, 소독도 얼기 전에 해두어야 한다. 기껏 소독했는데, 비나 눈이 오면 기분이 참 그렇다.


모든 사업장은 겨울에는 조명과, 난방기구 등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는데 농장도 그렇다. 특히 수도관이 얼어 터지지 않게 열선도 감아두고, 소독실에 전기난로, 관리사에는 전기장판, 그리고 축사에 조명까지.




사실 오리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질을 위해서는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육용 오리사는 24시간 빛을 유지하는 것이 사육 매뉴얼이다. 가급적 깊은 수면 대신 자주 움직이면서 언제든지 사료와 물을 찾아먹기 용이하게 해 주기 위해서다. 특히 여름 같은 경우는 더운 낮에 사료섭취량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밤과 새벽시간에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잘 먹어야 추위도 잘 견디므로 어쨌든 잘 먹이는 게 중요하다.


오리의 사육 매뉴얼에는 정확한 조도 수치까지 나와있지만 기억나지 않고,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정도"라고 함께 쓰여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매뉴얼을 완벽히 준수한다는 농장을 가 보았는데 생각보다는 좀 어두웠다. 하지만 난 어두운 공간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농장의 시설이라는 것은 군대와 비슷해서, 매일 어딘가는 언제나 고장이 났다. 축사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전구도 그중 하나였기 때문에 넉넉히 달아두었다. 또 업무협약 때문에 방문했던 캐나다의 오리 축사는 밤에도 대낮처럼 밝았기 때문에 내 농장의 조도도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전기세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는 맑은 날에는 낮시간 동안 불을 꺼두었다가 오후에 다시 틀어주고는 했는데, 그때 겨울에는 옆 벽이 항상 닫혀있으므로 빛의 투과율도 중요하다. 일령이 높아져서 따뜻한 오후에 잠깐 열어줄 수 있는 경우가 가장 좋은 경우다. 빛과 환기, 결로, 바닥 관리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전이나, 결로 등으로 불이 한 번에 나가거나, 열풍기의 열로 코드가 느슨해져서 가끔 접촉 불량으로 불이 꺼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오리가 놀라서 쏠리다가 다칠 수도 있고, 사료도 잘 안 먹기 때문에 축사 건축 단계에서부터 전력의 관리와 설계는 중요하다. 나는 농장을 직접 짓지 않고 인수했었는데, 전선의 용량이 달려서 환기 휀의 운용이 어려운 적도 있었다.




나의 농장 이야기 시리즈 중 "연필로 쓰기" 마지막 부분에서 내가 어떻게 농장을 시작했는지 이야기가 잠시 멈추었었는데 이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다.


아직 내 글에 그렇게 열성적인 구독자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들과 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왜 하필 오리농장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사실 귀촌이나 귀농의 대안이 참 많다. 더군다나 요즘 떠오르는 미래산업은 스마트 팜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대형 축종도 아니고, 흔한 양계농장도 아니고, 하필 오리 농장이었다.


첫 번째는, 전에도 말했다시피, 그때, 2011년 오리 산업은 참 핫했다. 두 번째는, 오리라는 축종이 워낙 건강하고 까다로움이 덜해서 사육 초보자들이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수월하게 시작하는 것과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세 번째는, 바로 내가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가장 큰 함정이자 가장 큰 자산인, 바로 나의 아버지께서 오리 계열화 사업자의 대표이사라는 것이었다. (계열화 사업자란 종계, 부화, 사육, 도축, 가공, 유통의 과정을 한 회사에서 수직적으로 관리해서 운영하는 회사를 말한다)


가장 그 업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하는 말을 믿지 못할 이유도 없었고, 그만큼 나라는 사람에게 투자해줄 사람도 없었고, 그만큼 나에게 실무에 맞는 이론과 경험을 알려줄 수 있는 인프라를 준비해 줄 사람도 없었다. 또한, 아버지는 내 영웅이었고, 내가 늘 닮고 싶은 모델이었으며, 넘어서고 싶은 목표였다. 그래서 같은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이 사업의 가장 중요한 상품이자 토대가 되는 오리를 사육하는 것에서부터 잘 알아야 전반적인 시장과 소비자의 니즈에 어떻게 대응할지 파악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믿었다.


오해가 생기기 전에 미리 밝혀두자면, 아버지는 사업자의 소유주가 아니고 전문 경영인이므로, 직영농장을 그냥 떡하니 맡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운영할 농장을 새로 짓거나 인수했어야 했고, 적당한 농장이나 부지를 구할 때까지, 그리고 충분한 자금이 모일 때까지, 나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회사의 직영농장에서 사육에 대하여 인턴의 신분으로 직접 일하며 배울 수 있었다.


여기서 또 황제 인턴을 상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당직을 서시는 다른 직원 분들보다 훨씬 적은 급료를 받았으며, 그 농장은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한 번에 오리 4 만수를 사육할 수 있는 농장으로써 이상적인 작업자의 수는 4명이지만, 아직까지도 단 한 번도 4명의 직원이 모두 채용된 적이 없는 3D업종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안 뽑혀서 일손이 부족한 농장에 마침 나는 일을 배우러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농장에서 직접 일도 하고, 또 1년을 오리협회가 배포한 공식 매뉴얼과 영국의 종자회사에서 배포한 매뉴얼, 그리고 해외의 논문들을 찾아 비교하고 수정하면서 나만의 매뉴얼을 만들었다. 틈틈이 사육 부 소속으로 위탁농장들을 다니며 사육 보조와 품질관리를 하는 지역 소장들과 함께 농장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나라 각 지역과 각각의 축사 형태를 견학하고, 농가의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보고, 사육방식과 축사 형태의 장단점, 사육 노하우등을 직접 듣고 배웠다. 그리고 마침 아버지 회사가 진행 중이던 캐나다 오리 회사와의 합작 제품 협약에 참여하게 되어 캐나다에 파견되는 기술 인력의 통역과 조인식의 통역도 하고, 캐나다 농장과 공장도 견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가는 동안 오리시장의 거품이 사그라들고 조류독감의 폭탄을 맞으면서 시장은 점차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각 회사들 마다 큰 어려움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회사도 직원들의 봉급을 3개월간 삭감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아버지는 대표이사부터 모범을 보여야겠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본인 봉급을 삭감하심과 동시에 나를 해고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목요일 저녁에 오셔서 월요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직원들이 월급도 삭감되는 마당에 버젓이 출근하는 대표이사 아들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겠냐는 아버지의 말씀에는 백번 이해가 갔으나, 이제 난 하루아침에 대학을 졸업한 지 5년이나 된 나이 30이 다 된 백수가 되었다. 경력이라고는 인턴 2년이 전부인 백수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다시 고민하는 거보다 이제는 그냥 농장을 알아보는 게 쉬운 일 같아 보였다.


겨울의 해는 짧지만, 빨리 어두워진다고 해서 하루가 빨리 가는 것은 아니다. 하루의 시간은 똑같이 흘러간다. 지금의 어둠이 마치 하루의 끝인 듯 무기력해지고, 쉬고 싶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아직 하루가 끝난 것이 아니었고 내게는 똑같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도 해가 뜰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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