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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Nov 12. 2020

겨울나기.

고장 난 보일러 덕에 깨닫는 덕(duck)의 마음.

우리 집 보일러가 고장 났다. 아파트 콘덴싱 가스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나는 기억이 있을 무렵인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지금까지, 중간에 미국 유학과 군 시절 그리고 농장에 딸린 주택에 살았던 1년을 제외하면 평생을 아파트에 살았는데, 아파트 보일러가 고장 난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어쩐지 한번 달아 놓으면 평생 갈 일 없을 것 같은 보일러를 TV에서 광고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내구연한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 


처음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제조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가진단법을 통해 시키는 대로 껐다가 켰더니 3일간 되다 말다 하면서 되길래, 안될 때마다 켰다 껐다 반복하면서 지냈는데 이제는 무얼 해도 안된다. AS 접수를 하고 증상을 적어놓으니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지사 담당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런 고장은 심각한 고장인 데다가, 잘 구비해놓지 않는 부품(그럼 아마 잘 고장 안나는 부품이라는 뜻인 듯)이라서 부품 준비후 이틀 후에나 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증상이 처음 나타났을 때 전화를 주지 그랬냐고 했다. 


그럼 제품 사용설명서나 자가진단 방법에 적어주지 그러셨나요. 도서산간지역은 혹시 모르니 어떠한 형태의 고장도 자가로 해보려고 하지 말고 일단 전화부터 하라고. 덕분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도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아내와 애들은 처갓집으로 피난을 보냈다. 그래도 혼자 집에서 이틀을 보냈으니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것 같다.




난방은 오리 축사에도 필수다.

사실 우리의 방한제품에 오리털 제품이 많은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듯이 오리는 추위에 상당히 강한 축종이다. 오리를 직접 만져보면 자체 체온이 엄청 높은 걸 알 수 있는데, 게다가 잘 관리해줄 경우 깃털과 솜털이 촘촘하게 자라면서 몸을 따뜻하게 보호해준다. 그러나 공장식 축사(개인적으로는 이 표현이 싫다. 나름 체계화된 이론과 공식, 공법과 매뉴얼로 고른 품질의 육류를 적정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인데, 마치 자본주의의 산물로,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오리를 학대하는 시스템으로 보는 시선이 담긴 단어 같다.)에서 사육하는 오리는 대부분 40에서 45일령에 출하한다. 즉 청소년기 즈음의, 아직 제대로 어른이 되지 않은 어린 오리들이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역시 코로나로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단순 감기더라도 호흡기 감기 증상이 있으면 실내 출입도 안되고 의심의 눈초리와 의심 검사를 해보아야 하듯이, 오리도 단순 감기(우리는 호흡기성 질병이라고 부른다)라도 걸리면 조류독감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건강관리를 잘해줘야 한다. 또한 감기에 걸린 오리들은 아무래도 식욕도 없고 기운도 없는데, 건강한 개체에 치여서 사료나 물 섭취량이 줄어들고 결국 출하 시 중량 차이로 이어질 수 있어서 온도, 습도, 환기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리는 사육비를 정산할 때 무게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중량의 차이는 곧 소득의 차이다.


대표적인 오리축사 난방방법으로는 열풍기, 원적외선 튜브히터, 화목난로 등이 있으며 일부 병아리 장은 바닥에 전기열선이나 원적외선 히터(선풍기처럼 생긴, 사무실이나 가정에 하나씩 있음 직한 빨간 불 들어오는 그것 맞다. 다만 축사용으로 따로 나온다.)등으로 난방을 보충하거나 보완하기도 한다. 난방에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난방기기의 효율성과 축사의 구조, 그리고 중천장이나 덧문, 비닐 같은 시설보조를 통한 보온 관리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오리는 사육 매뉴얼상 1~3 일령에 부화 조건과 비슷하게 최소한 섭씨 32~34도를 유지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한겨울 외부 온도가 섭씨 영하 5도만 되어도 온도차가 40도에 육박한 것이다. 게다가 매뉴얼에서 말하는 온도는 "오리의 높이에서"이다 즉 지면에서 10~15cm 정도.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특성상, 지면 온도가 그 정도가 되려면 작업자가 서있는 온도는 36도가 넘어가고 축사 천장 쪽은 40도가 넘기도 했다. 작업자들도 감기에 걸리기 쉬우며 그만큼 난방기기의 연료 소모가 많다. 그래서 가장 야속할 때가 오리 받는 주간에 기록적인 한파가 예상된다는 둥, 이번 주가 가장 추울 거라는 등의 소식을 듣거나 허허벌판에서 몰아치는 칼바람들 사이로 연소되어 사라져 가는 등유들을 바라볼 때이다.


나는 등유를 사용하는 열풍기를 사용했었다. 열풍기도 요즘은 열량과 효율별로, 또 고정식과 이동식 등 다양한 제품이 나오지만 주로 축사에 사용하는 크기와 브랜드가 있다. 오리는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대부분 병아리동을 따로 사용하는데 축사의 형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300평의 병아리동에 4대의 열풍기를 가동했었다. 고정식 열풍기의 경우 등유 탱크에서 급유선을 이어서 연료를 공급했는데, 탱크의 크기가 한정적이고 날씨에 따라 사용량이 들쭉날쭉하며 시골이라는 특성과, 언제 이동제한이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과 언제 방역기가 얼어 터질지 모른다는 불확실 성 등의 이유로 항상 이틀에서 사흘 전에는 미리 계산해서 주문을 해줘야 했기 때문에 일기예보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계획을 세웠었다.  날씨란 것은 예보를 항상 벗어나거나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에 항상 일정 시간 단위로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병아리동을 따로 운영할 경우의 단점은 오리가 어느 정도 자라고 약 12일에서 14 일령 정도가 되면 마릿수를 나누어 각 오리장으로 분동을 해주어야 하는데, 분동 거리가 길어질 경우 겨울 날씨에 따라(눈이나 비, 강풍 등) 날짜를 정하기가 쉽지가 않고, 분동 후 오리들의 건강관리에 더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후에 나는 마지막 3년 즉 사육의 절반은 분동식으로 나머지 절반은 각 축사의 앞부분을 막고 병아리를 키우다가 뒤로 터주는 식으로 사육을 했다. 이런 사육 방법의 단점은 축사의 앞을 막을 때 열손실을 너무 고려하면 환기가 어렵고, 대충 막아두면 열 손실이 많아 연료비가 많이 든다. 장점은 분동의 시기를 날씨나 온도와 상관없이 원할 때 그리고 오리가 커가는 만큼씩의 공간만 틔워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오리가 새로운 환경과 온도에 적응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열심히 먹다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면, 열심히 먹는 것만으로도 추위를 이기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그리고 적당한 온도일수록 내가 더 잘 먹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가을은 말뿐만 아니라 오리도 살찌게 해주는 축복의 계절이다. 맛있는 과일도, 곡식도, 견과류도 수확할 수 있고 온도도 가축의 생육에 적당하다. 요즘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에 가을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속상하고 아쉽다. 


내 기억으로는 섭씨 15도에서 위아래로 2도 정도의 온도에서 오리가 가장 잘 먹었는데, 축사의 내부는 오리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오리 자체 체온이 높고 마릿수가 많으며 축분이 깔짚인 톱밥과 만나 발효하면서 생기는 열로 인해 섭씨 10도 이상의 온도가 자연적으로 잘 유지된다. 사실 외부 온도가 섭씨 0도 근처 정도에 맑은 날이라면 오히려 내부 온도는 섭씨 10도를 크게 넘어서서 환기를 해주어 온도와 환경을 조절해 주기도 한다. 환기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겠다. 


문제는 소독시설이다. 조류독감의 위험성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영하의 온도에서는 약효도 금방 없어진다니 많이 타놓지도 못하고 얼어버리니 어디 보관도 힘들고 고압분무기나 차 단방 역기 호스 속에 물을 뺏다가 사료나 기름차 온다고 하면 전날부터 녹이고 채우고 난리를 쳐도 매년 겨울 꼭 어딘가 어느 호스든, 어디 피씨관이든 얼어 터졌던 것 같다. 꽁꽁 언 관과 호스를 꽁꽁 언 손으로 직접 교체를 해야 했는데 그럴 때는 약속시간보다 미리 오는 부지런한 사료 기사님들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우리 농장의 경우 한 사람이 상주하면서 나는 매일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대인소독기가 항상 가동 가능한 상태였어야 하는데, 겨울이면 조그만 난로를 대인 소독기 안에 틀어주기도 했다. 그러면 동네 고양이들이 근처에 와서 쉬다 가고는 했는데 이 또한 방역지침에 위배되는 사항이었으므로 참 난감했다. 방역기를 항상 가동 가능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방역지침을 지키기 위해 야생동물의 유입을 차단한다는 방역지침을 어기는 꼴이 되어버렸으니 이런 딜레마가 또 있으랴. 그리고 길고양이들은 와서 쉬는 것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이 가끔씩 축사 외부의 쥐를 잡아먹었는데 그게 또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틀 째 집에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으니 집이 점점 추워지고 있다. 아파트가 남서향에 앞에 건물이 없어서 해가 하루 종일 들어온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날씨가 흐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옷을 껴입고 지내고 잘 때는 전기장판을 켜 두면 돼서 씻는 거 말고는 큰 불편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춥지는 않은데 몸이 으슬으슬한 느낌이 든다. 내가 난방비를 아낀다며, "어차피 너희들 체온도 높고 따뜻한 털도 입고 있으니 열풍기 온도 좀 내릴게." 했을 때 오리들 기분이 이랬을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요즘 좀 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워졌었다. 일단 내 글의 구조는 일상에서 얻은 영감을 농장에서의 기억과 연결하는 1단과, 1단에서 기억했던 농장 관련 개념과 운영에 관한 설명이 2단, 그리고 어떻게 내가 농장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과거로 돌아가 회상하는 3단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그런데 점점 할 말이 많아지면서 그런 구조의 글이 너무 길어져서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그런 구성을 갖출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었다. 이를테면 농장을 시작한 것은 일종의 서사니까 서사대로 그냥 풀어나가고, 농장 운영이나 경험, 정보전달은 음... 누가 궁금하기는 할까? 그런 내용이 도움이 되기는 할까? 그런 고민에서부터 그럼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전달하면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혹시라도 오리농장에 관심이 있거나 귀촌이나 귀농이 궁금했던 사람들 또는 그냥 재미로 읽는 사람들에게라도 지식과 정보와 흥미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날이 추워지면서 돌아다니질 않으니 (내 필명이 "낭만 곰돌이"인 것은 비단 외모가 곰돌이 같아서이기도 하지만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잘 움직이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크게 영감을 받는 일도 많이 줄어들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자꾸 돌아다니며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가 보다. 이러나저러나 겨울은 참 힘든 계절이다.


결정적으로 발행한 글들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기에 앞서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고 언질을 드렸더니, 당연히 내가 가명과 허구를 곁들여 나의 정체성을 적당히 모호하게 가리면서도 현실성 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그러면서도 자조적인 경험과 감상을 바탕으로 어떠한 울림을 주는 "소설"을 쓰는 줄 알고 계셨다. 그런 영감을 주는 작품은 뭐 아무나 쓰는 줄 아시는 건지 내가 그런 작품을 쓸 줄 아는 줄 아시는 건지. 시작부터 아버지에 대한 원망(물론 나중에는 감사로 바뀌지만 아직 거기까지 쓰지 않았으므로 보여드리지 않았다)이랄까 아니면 푸념 같은 내용이 잔뜩 등장하는데 과연 이것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도 되는 것인가 하는 고민도 들었다. 이래저래 고민만 잔뜩 하다가 시간만 흘렀는데 마침 보일러가 고장 나서 뜨뜻했던, 그래서 너무 싫었던 한겨울 병아리장이 생각났다. 그리고 어떻게 이 고민을 마무리 지어야 할지 또 다음 글부터 어떻게 써야 하는가 고민이 끊기지 않아 글을 끊을 수 없는데, 보일러 기사님이 오셨다. 보일러 기사님은 오늘은 진짜 나의 기사(knight)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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