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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Nov 04. 2020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

딸아이가 만 33개월일 때 일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 아이는 "나는"이라는 1인칭 주어보다는 "XX 이는"이라는 3인칭 주어를 사용해 대화를 하고는 했다.

작고 예쁜 아이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참 귀여웠다.


어느 식사시간 딸아이는 고기 한 점을 받아먹으며 신이 나서 말했다.


"XX 이는 고기가 제일 좋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넘길 수 있는 단순한 말이었지만, 문득 이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이미 맛보고 여러 가지 고기 요릿 법을 맛 본 아이의 입맛에는 어떤 고기가 좋을지, 또 아이는 본능적인 대답을 할지 사회적인 대답을 할지 궁금했다.


"그럼, 여러 가지 고기 중에서 어떤 고기가 제일 좋은데?"

(그때 먹고 있던 고기는 돼지고기였다.)


당시 나는 오리농장을 하고 있었고 우리 딸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으며 농장도 종종 방문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아빠가 키운 오리 고기' 따위의 사회적이고 애교 넘치고 센스 있는 대답을 기대했었다.

내 아이의 지성과 눈치가 33개월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는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응, 엄마가 해주는 고기!"


밥을 떠먹여 주던 아내의 얼굴에 환한 승자의 미소가 피었다.


우리 아이의 지성은 내 예상을 뛰어넘어 이미 저기 먼 곳에 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고기 한 점을 벌어오기 위해 밖에서 노동의 고통을 감내하며 심지어 직접 고기를 생산하는 아버지의 노고를 딸아이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 그리고 손맛과 맞바꾸었다.

비교할 수 없는 가치지만, 이내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기는 엄마가 해주시는 고기다.




그랬던 딸아이는 요즘 채소도 잘 곁들여 먹고 튀긴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

그 이유는 "뚱뚱해지기 싫어서"이다.


영유아 검진 시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왜소하게 나온 아이의 발달상황이 걱정이 되는 우리 부부는 그래도 가능한 이것저것 많이 먹여보려고 하는데 벌써부터 아이가 몸매를 걱정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를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아이들의 마음속에 심어 두고 있는 건지 가끔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할 때가 있다.


그래도 아이들이 정말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음식들, 예를 들면 잠자기 직전에 먹고 싶어 하는 과자라던지, 젤리 같은 것들은,


"안돼, 너 지금 그거 먹으면 살쪄"


한마디로 내려놓게 만들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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