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보다 완성의 가치.
테일러의 로즈 레모네이드
무려 1886년부터 영국에서 티를 생산했다는 테일러
정확히는 Taylors of Harrogate
공식 홈피에 아쌈티와 일본의 센차를 베이스로 하는 티를 주로 만든다고 쓰여있다.
형님 (아내의 오빠)이 주신 숙박권을 사용하러 비스타워커힐 호텔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아무래도 형님이 주신 숙박권이다 보니 장모님을 모시고 다녀왔다.
그냥 서울로 직행하기보다는 이천에 들려서 도예마을도 다녀왔다.
작가님들이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찻잔을 1-5만 원선에서 구매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비스타워커힐 호텔 객실에 준비되어 있던 테일러 티백.
그리고 이천에서 사 온 너무 귀엽고 예쁜 찻잔.
아직도 아이들 방학이라서 이제야 겨우 올리는 글.
장미잎과 풍성한 시트러스 향이
영국의 시골 정원을 연상시킨다는 이 티는
장미잎과 레몬필 그리고 레몬그라스가 주재료이다.
와인을 연상시키는 진한 빨강 수색이 장미를 잘 표현한 것 같다.
풍성한 장미향, 뒤에 숨겨진 시트러스 향.
살짝 느껴지는 히비스커스의 존재감, 레몬의 상큼함.
끝에 남는 레모네이드의 달콤함.
"미완의 명작보다 어떻게든 마무리된 범작이 더 위대하다."
[아주 작은 태도의 차이] (시라토리 하루히코, 2025 클로츠)
혹시 작가가 아닌 누군가의 격언인가 싶어서 구글에 검색하니, 제미나이가 이 글을 "완성이 완벽보다 가치 있다."는 주장이라고 알려주었다.
아주 공감하는 말이다.
꼭 무슨 작품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는 것 그리고 일단 끝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 어떤 명작이라도 완성이 되지 않으면 명작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작품이 완성이 되지 않았는데 이것이 명작일지 시작만 그럴듯한 용두사미의 졸작일지 알 수 없다.
미완의 건축물을 시대가 흘러도 완성하고자 하고, 미완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다른 작가가 이어서라도 완성을 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그 작품을 비로소 온전한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닐까.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TV에서 봤는데 보통 한 작가가 책 한 권을 집필하기 위해서 약 400여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더구나."
출간작가의 꿈을 안고 그날부터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완벽한 문장들을 수집하며 좋은 표현들을 여기저기 여러 권의 노트에 적어가며 독서에 빠진 나를 보고 아내는 조선시대 선비 같다고 했다.
집안일도 가게일도 안 하고 언제 볼지도 모르고 붙을지도 안 붙을지도 모르는 과거만 준비하는 서생이라며.
글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부족하다.
지난 글들을 읽으며 아 이렇게 쓸걸, 여기서 왜 이렇게 했지 후회만 늘어놓는다.
일단 끝을 정해두기로 했다. 얼마만큼 쓰고 독립출판을 하든 e-book을 출판하든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졸작이더라도 내가 온전히 몰입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결과를 내보기로 한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온전히 나의 경험이 될 테니까.
나는 평일 저녁마다 수영을 한다.
늘어가는 뱃살과 나이 콜레스테롤과 혈압 등등 해야 할 이유야 차고 넘친다.
어렸을 때 3년 정도 배웠기 때문에 금방 늘었다.
수영을 1년 정도하고 나니 내 실력이 어느 정도 일지 궁금했다.
대전 동호인들만 참가하는 마스터즈 대회를 나가보았다.
신청 종목은 접영 100m. 목표는 완주.
결과는 0.4초 차이로 4등을 누르고 동메달.
대회장에 같이 갔던 코치님이 계속해서 강조한 게 있었다.
끝까지 완주할 것, 실격당하지 말 것.
그래야 그 경주가 온전히 내 것이 될 테니까.
그다음 해에도 같은 대회에 나갔다.
신청 종목은 평영 100m. 목표는 완주.
100m 종목은 신청자가 별로 없어서 내 나이대에서 3명이 출전했다.
완주만 해도 동메달.
또다시 코치가 강조했다.
끝까지 완주할 것 그리고 절대 실격당하지 말 것.
결과는 2등과 0.6초 차이로 3등.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2등의 실격. 그래서 나는 은메달.
내 꿈을 이루는 과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일단 완주를 할 것. 만족할 만큼의 결과는 아니더라도 완주를 해야 내가 공식적으로 그 꿈을 위해 노력한 게 된다.
실격당하지 말 것. 그 경험이 온전히 내 경험으로 남으려면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또 누군가의 도움이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노력을 해보기로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온전히 바르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선망하고 인정할 만한 완벽한 꿈은 아니더라도
온전히 내 힘으로 내가 해낸 내 경험은 충분히 그 가치가 있을 테니까.
내 목표를 미완의 명작으로 두고 멈출 것인가, 평범하더라도 어떻게는 완성시켜 더 큰 목표로 향하는 경험으로 삼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