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고, 불안하고, 먹먹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부럽고 나는 그렇게 못 살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나는 사사로운 일상 속 일어나지도 않은 안 좋은 상황들을 떠올린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먹혀 창조적인 에너지가 고갈된다. 내 발목을 잡고 나의 호(好)를 찾아가지 못하게 붙잡는다.
세상의 편견에 먹힌 나의 일상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 나의 욕망이 충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의 호(好)를 쫓아 경제적인 안정감을 선택했다. 그리고 누리고 있다. 넘치게 풍족하지는 않지만 돈에 쪼들리지도 않는 생활을. 이것 하나를 위해 나의 무수한 호(好)들을 저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깨달은 후, 평가해야 되는 것은 단 하나다. 경제적인 안정감이 나의 호(好)들을 저버릴 정도로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 반대로 나의 호(好)들이 풍족한 생활을 저버릴 정도로 열정적인지.
세상의 호(好)를 쫓느라 숨이 차서 나의 호(好)를 들여다볼만한 여력이 없었다. 나의 호(好)가 무엇인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높은 열정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낯선 것에 높은 열정을 가질 수 없다. 사람 간의 관계가 시간이 지나 무르익어 애정이 커지듯이 우리는 사물과 행위에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애정을 높일 수밖에 없다. 한두 달 안 사람을 위해 나의 삶을 바칠 수 없듯이 어설프게 가진 나의 호(好)를 위해 안락한 의식주를 포기할 수는 없다.
호(好)를 위해 삶의 최전방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너무 부러워하지 말자. 그 누구도 어떤 것에 하루아침에 매혹되어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내어주지는 않는다. 끝을 보지 말고 한걸음 앞을 봐야 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약간의 재미, 약간의 흥미를 따라 나의 시간을 잠깐 멈추는 것이다.
결과 지향적인 삶은 세상의 호(好)를 쟁취할 때 필요하지만 개인의 호(好)를 찾을 때는 무의미하다. 나의 호(好)를 찾기만 한다면 실패와 성공의 개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패와 성공은 남들의 평가에 의해 구분 지어진다. 즉 평가주체가 세상이다. 하지만 개인의 호(好)를 찾을 때는 평가 주체가 나 자신이다. 그러니 내가 즐겁기만 하면 그 자체로 성공이므로 기다릴 결과 따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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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호(好)는 무사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