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과 설움으로 얼룩진 그대에게
일요일 오후, 거하게 낮잠 한숨 잔 후 브런치스토리를 열어 어디 재미있는 글 하나 없나 탐색하는 나의 레이더에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글 하나를 보았다. 직장에서 잘려 모욕을 당하고 팀원들에게 미움도 샀지만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이 확고하여 본인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사람과 상황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의 배는 유유히 항해했다는 이야기. 그 멋진 글을 읽는 순간 21살 어린 나이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받았던 나의 핍박과 설움들이 생각났다.
무턱대고 달려간 호주 땅에는 생각보다 알바 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었고 겨우 한인식당 한 곳에 들어가 서빙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곳 매니저는 딱 봐도 질이 나빠 보이는 남자였는데 힘없고 기댈 곳 없는 워홀러 아이들에게 “X발 똑바로 안 해?”라는 등의 욕설과 손님상에서 남은 반찬들을 재활용하게 시키는 인간 이하의 사람이었다. 더불어 이쁜 직원들을 딸이라고 부르는 역겨움까지 갖추고 있었다. 처음 이력서를 들고 찾아간 식당에서 그 남자는 삐딱하게 나를 쳐다보며 “이런 일이랑 안 맞을 것 같은데?”라고 시비를 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황당하였지만 모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습관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웃으며 대답해 줬다.
그날 당장 트레이닝이 시작 됐고 남자는 14개 정도 되는 테이블을 랜덤으로 가리키며 몇 번 테이블이냐고 물었다. 바로바로 대답이 나오지 못하자 남자는 나에게 “너, 고등학생 때 반에서 꼴찌였지? 어우씨 이것도 못 외워?” 라며 인신공격을 시작했다. 나름 서울의 멀쩡한 대학에 합격한 내게 딱 봐도 대학도 안 나온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자꾸 공부로 공격하니까 어이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 이력서를 들고 오더니 매니저 포지션에 지원한 것도 너냐고 물었다. 맞다고 대답하니 네까짓 게 뭔 매니저에 지원하냐는 듯한 뉘앙스로 장난하냐고 물어봤다. 이런 인신공격과 함께 저녁장사를 끝마친 후 내일도 출근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도저히 같이 일할 수 없는 놈이란 생각이 들어 바로 전화해서 출근 못 한다고 말하니 웬걸 180도 다른 상냥한 목소리로 아쉽다며 알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개 X 끼는 하루 일당도 주지 않았다.
그 후 Ingham이라는 닭공장에 들어갔는데 내가 속한 part의 슈퍼바이저가 유명한 또라이였다. 이름이 바바라였나. 그녀에게 몇 번의 “fucking stupid”를 듣다가 3개월 만에 그만뒀다.
한인 식당에서도 Ingham 공장에서도 나의 배는 유유히 항해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고 또 다른 도전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어 나를 위축시켰다.
거시적인 시점에서는 못난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누군가 나에게 험한 말을 하게 될 때는 마음에 큰 소용돌이가 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편도체 안정화 연습이 필요하다. 요새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내면소통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근력 훈련’을 도와주는 책으로 우리의 배를 유유히 항해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스킬을 갖춰야 하는지 말해준다. 앞으로는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겠어! 이제 내 목표를 이루는 데에만 집중해야지!라고 아무리 다짐해도 같은 상황이 오면 또다시 흔들린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예방을 할 수 있는 스킬이다. 한마디로 편도체가 활성화되지 않는 기술이 필요하다.
책을 삼분의 일 가량 읽은 지금의 내 생각으로서는 사람들의 저런 말에 쉽게 마음이 요동치고 상처받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기준 때문이다. 내가 잘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욕하고 사랑받지 못해 사회적인 고립을 받을 것이라는 편향적인 생각부터 시작해서 항상 칭찬과 사랑만 받고 싶은 강박.
원시시대에 우리 인류는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며 먹고살았다. 맹수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무리에서 버림받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 곧 평판이 생존과 직결되는 셈이다. 그런 DNA가 우리의 뇌 속에 여전히 살아있어 1인가구 및 1인창업의 시대에서도 사람 간의 갈등으로 무척 괴로워하는 것이다. 상황이 바뀌어도 우리의 몸과 유전자는 과거 원시시대의 특성들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이처럼 본능적으로 평판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의 특성에 더해 나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니 작은 실수로 험한 이야기를 들어도 제대로 받아치지 못하고 마음 졸이는 등 힘들어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며 큰 성취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살아가기만 해도 그것이 성공이라 외친다. 단 조건은 본인이 그 상황에 만족해한다면.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시험을 통해 친구들끼리 줄 세우기를 하며 머릿속에 경쟁구도를 심어놨다. 따라서 좋은 대학, 좋은 회사 등의 성취를 통해야지만 행복해지고 성공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반대로 그것들을 이루지 못할 시에는 게으르고 머리 나쁘고 한심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우리는 사회적인 성취를 위해 자신을 열심히 채찍질하고 9 TO 6로 직장생활을 해 밥벌이를 하고 있다. 벌레 같은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
그 결과, 우리들은 행복한가? 지금 당장의 행복을 갉아먹어 사회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들을 우리 모두 만족하고 있는가? 우리의 이런 습성과 일개미 같은 모습으로 최대의 수혜를 누리는 집단은 과연 어디일까?
근명성실, 정년퇴직, 이런 것들을 욕보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루하루 출근하는 것이 너무 괴롭고 열심히 버티기만 하는 삶이 과연 그 정도의 고통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은 것뿐이다. 자신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