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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비 Jul 17. 2021

교사, 운명이라 생각했다

는 나의 착각이었나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생활기록부에는 늘 장래희망을 적는 란이 있었다. 본인이 적는 칸 하나, 부모님이 적는 칸 하나. 그 둘이 일치하는 아이는 얼마나 됐을까. 아니, 애당초 그 칸을 자신 있게 채울 수 있는 아이가 과연 몇이나 됐을까. 성적과 수능이라는 현실 속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본인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기 어려워했다. 반면 꽤 명확하게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인지하고 있었던 나는, 그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있는 그대로 적어서 낼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결과적으로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자그마치 6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적어 낸 장래희망은 '교사'였다. 교직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꾸며 낸 말도 아니었다. 그건 마치 막연한 '동경'과도 같았다. 세상을 경험할 매체가 풍부하지 않았던 그 시절 어린 소녀가 만날 수 있었던 어른은 부모님, 선생님이 고작이었다. 유치원을 다닐 땐 유치원 선생님,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땐 초등학교 선생님,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을 땐 피아노 선생님. 시간에 따라 형태는 조금씩 변했지만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가랑비처럼 스며들었다.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게.





막연했던 꿈이 직업에 대한 확신으로 바뀐 건 대학생 시절이었다. 생활기록부마냥 일관되게 선생님이란 꿈을 안고 사범대에 진학한 건 아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스무 살에게 사범대 진학은 미래를 너무 한정된 길로 내모는 것 같았다. 스스로 조금 더 다양한 기회를 주고 싶었고 고민 끝에 식품영양 전공을 택했다. 하지만 교직에 대한 마음은 묘하게 남았다.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성격이라 주저 없이 교직이수를 신청했다. 의무감에 교직이수를 하던 여타 전공생들과 달리 교육학 공부는 꽤 즐거웠다. 교육사는 흥미로웠고 교육철학 시간에는 혼자 감동해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교육사회학 수업을 듣고 강의장을 나서는 길,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채 가시지 않는 여운에 몸을 부르르 떨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은근한 소질이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재가공하는 능력도 있었다. 내가 아는 것을 기꺼이 나눔으로써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는 보람까지 느꼈다. 이 모든 지표가 교사를 향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수순처럼 중등임용시험에 응시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둔 시점,

교사 임용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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