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정말 고민에 빠지게 만든 건
대학교 4학년 교사 임용시험에서 낙방한 뒤 상실감이 몰려왔다. 이럴 수는 없다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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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기에 내 몸은 너무 건장했다. 애당초 큰 기대를 하지 않아 실망도 없었다. 교생실습 한 달, 전공실습 한 달, 신입생 때 열심히 펑크냈던 학점 메꾼다고 또 서너달. 대학 4학년이 이리 바쁠줄 알았더라면 1학년 때 학문을 좀 더 열심히 닦았으려나? 아니, 다시 생각해봐도 학점보단 동아리활동에 열을 올렸을 것 같다. 여하튼 안그래도 박한 교사 TO에 합격문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해 같이 시험을 봤던 선배, 동기들 모두 고배를 마셨다.
"아 고민이다.. 넌 임용 또 볼 거야?"
"응! 난 붙을 때까지 볼 건데?"
"뭐??"
내 답은 확고했고 주변에선 다소 당황스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우리 전공 교사 TO는 지금의 1/10밖에 되지 않았다. 가장 큰 도시 서울에서만 티오 0명, 부산이나 인천같은 광역시에서도 한 해 2명이 고작. 1년에 딱 한 번 있는 시험인데 도대체 뭘 믿고 붙을 때까지 보겠다는 건지. 심지어 전공 교수님조차 면담 시 교직 외에 다른 길을 권하실 정도였다. 차이점은 딱 하나. 남들에겐 임용이 '여러' 선택지 중 하나였다면 나에게 교사란 이미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는 점. 꼭 이루고 싶은 목표였다. 대신 다른 방향으로 고민이 깊었다.
애초 교사라는 직업에 가슴 설레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교직 이수를 하면서 미래의 내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늘 아이들이 먼저 그려졌다. 그들과 소통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보다 많은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다. 학교라는 공간이 입시로 숨막히는 곳이기 이전에, 행복을 배우는 공동체이길 바랐다. 즉, 아이들과 보다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하고 싶었다.
그런데 영양교사라니.. 대학 입학 때만 해도 이렇게 꼬일 줄은 미처 몰랐던 거다. 본래 식품영양 전공에 교직이수를 하면 중고등학교의 가정교과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창 무상급식이 화두에 오를 즈음 '영양교사'라는 새로운 직군이 생겨났다. 맞다. 내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바늘구멍같은 임용시험을 쳐서 합격한다 한들, 주 업무는 수업이 아닌 급식이 될 터. 교직에 대한 확신은 뚜렷한데 영양교사를 대하는 내 마음은 어려웠다.
비교과 교사(보건, 영양, 상담, 사서)가 싫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일이 스스로에게는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머리가 무거웠다. 답 없는 질문만 계속해서 던졌다. 부모님과 대화도 해보고 재수학원까지 등록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아닌, 대학교 4학년에 결정하는 재수란 현실적인 요소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고민의 날들은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오히려 영양교사가 신생교사이기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생긴지 겨우 1~2년된 자리였다. 이 직군이 제대로 된 「교사」로 정착하기 위해선 가야할 길이 참 많아 보였다. 영양사에서 영양교사. 추가된 '교(敎)'자 하나에 내 나름의 교육관을 담고 싶었다. 부족하게나마 힘을 보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의 묘한 집합점이 생긴 셈이었다.
도전해볼 이유가, 충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