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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비 Jul 30. 2021

임용고시, 다들 이 정도는 하잖아요?

지금 하라 하면 못해요


삡- 삡- 삡-



새벽 3시 반. 기상알람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벌컥벌컥 물 한 잔을 들이켠 뒤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는다. 스트레칭을 마치곤 이내 근력운동, 일명 홈트를 한다. 한 세트 두 세트 세 세트.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쫄깃함에 정신이 깬다. 송골송골 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 살아있는 느낌이다. 쿨다운까지 마무리하면 달그락 달그락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다. 전날 구상해뒀던 메뉴로 아침과 점심, 저녁 총 3개의 도시락을 싼다. 때때로 아침은 도시락을 준비하며 주방에 서서 때우기도 한다. 양껏 먹지는 않는다. 그랬다간 다음 목적지에서 올라올 테니까.


간단한 물샤워 후 향하는 곳은 시립수영장이다. 새벽수영은 엄마와 함께 한다. 수영가방을 들쳐 메고 차로 십여분이면 도착. 다시 한번 물을 끼얹으며 몸을 풀어준다. 오늘은 어떤 연습을 할까. 강사님의 지시에 따라 레인을 돌기 시작한다. 아 시원해- 물이 주는 특유의 해방감이 자유를 느끼게 한다. 찰방찰방 돌다 보면 1시간은 금방이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뒤 이제 진짜 목적지로 향한다. 



내가 사랑하는, 추억이 서려있는 시립도서관.



집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시립도서관. 언덕배기에 있어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도착하고 나면 초록이들이 힘껏 맞아준다. 행복하다. 도심에서 떨어진 덕에 적당히 한적하고 적당히 세상과 단절된 느낌. 공부를 하기엔 딱이다. 8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라 자리도 널널하다. 럭키. 오늘도 명당을 잡았다.


이후부터는 전공책에 진득하게 빠져들면 된다.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아니, 신경 쓰지 않아야 좋다. 아 어차피 핸드폰도 없지. 스마트폰이 아닌 편마비 증상을 보이는 핸드폰이지만 그마저도 집에 두고 다닌다. 이젠 진짜 집중할 시간. 그날그날 공부한 총시간을 재기 위해 타이머를 켠다. 시간은 천천히, 하지만 빠르게 지나간다.



이런 풍경을 보며 도시락을 먹었다. 마음까지 초록으로 물드는 기분.



적막을 깨우는 건 타이머가 아닌 배꼽시계다. 기다렸다는 듯 아침에 열심히 싼 도시락 중 하나를 들고 건물을 나선다. 지하에 식당이 있긴 하지만 아주 춥거나 더울 때를 제외하곤 야외에서 먹는 걸 즐긴다. 야트막한 뒷산이 도서관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초록이들 사이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과 나무를 벗 삼아 먹는 도시락 맛은 가히 최고다. 아 절대 내 요리 솜씨가 좋은 게 아니다. 풍경이 다했다.



소화시킬 겸 도서관을 한 바퀴 돌고 들어간다. 오후엔 졸음을 방지하기 위해 인강 위주로 공부한다. 물론 배속은 1.5배 이상으로 꼭 높여서. 존경스러운 선생님들의 입담에 빠져들다 보면 혼자 공부할 때보다 동기부여가 잘 된다. 중간중간 들려주시는 인생 조언들도 놓치고 싶지 않아 노트에 적어둔다. 인강은 복습이 훨씬 중요하니 여러 번 반복해서 곱씹는다. 저녁도 잊지 않고 챙긴다. 




매일같이 직접 싸갔던 도시락들



어느덧 도서관에도 어둠은 찾아오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도 됐다. 피곤하거나 졸릴 땐 책을 들고 열람실을 나온다. 1층부터 5층까지 도서관 계단을 오르내리며 혼자 중얼중얼 내용을 되새김질한다. 지식도 쌓이지만 종아리 알도 튼실하게 쌓여간다. 아 이놈의 알은 25년째 부화되지도 않고 붙어있네. 이쯤 되면 삶의 동반자다.



밤 10시경. 도서관에 온 지도 12시간이 훌쩍 넘었다. 열람실 마감은 11시. 10시에서 11시 사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적당한 시간에 짐 정리를 한다. 퇴실 처리를 하고 밖을 나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는다. 나는 지금, 여기, 살아있다.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생활이라 갑갑함보다 뿌듯함이 앞선다. 냉장고에 남은 재료가 뭐였지? 내일은 또 어떤 메뉴를 싸갈까? 둘째가라면 서러운 식신답게 도시락 생각이 한가득이라,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공립학교 영양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의 하루 스케줄이다. 세부 일정은 조금씩 차이가 났지만 '새벽 운동, 도시락 3개, 12시간 이상의 도서관 공부'라는 큰 틀은 변함이 없었다. 자의에 의한 도서관 라이프는 꽤 즐거웠다. 어느덧 쌀쌀해진 날씨 사이로 1차 임용시험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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