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비가 내렸다. 연일 이어지던 산불 소식에 마음이 무거워질즈음 선물같이 찾아온 손님. 봄비다. 마른땅을 적셔주는 반가운 님이건만 빗속 퇴근길은 고되기만 하다. 하루종일 업무에 치인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짐가방을 챙기다 보면 추적추적 젖고 마는 몸. 이럴 땐 처방이 필요하다.
파블로프의 개도 아닌데 비가 오는 날이면 부침개부터 생각이 난다. '비 = 파전에 막걸리' 이건 만인이 인정하는 공식 아니던가? 지쳐있는 몸으로 파전까지는 거창하고- 그래, 봄비에 어울리는 봄동전이 좋겠다.
재료는 간단하다. 튀김가루 1컵, 물 1컵, 그리고 원하는 만큼의 봄동잎. '튀김가루'가 요알못의 치트키라면 치트키다. 어릴 적부터 부침개는 겉면이 좋았다. 내용물은 부족해도 입 안을 가득 채워주던 그 바삭함. 테두리를 따라 한 바퀴 삥 돌고 나면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게 늘 감질났다. 성인이 되고 취향을 담아 요리하다 보니 생겨난 나만의 공식, 전은 튀김가루로.
가루와 물을 1대 1 비율로 섞고 나면 굉장히 묽은 반죽이 나온다. 이게 맞나? 싶은 느낌이 든다면 그렇다. 그게 맞다. 봄동전은 봄동의 푸릇한 맛을 살려주는 게 포인트니까. 반죽이 담긴 볼에 잘 씻은 이파리를 앞 뒤로 굴려준다. 시뻘겋게 달궈진 무쇠팬에 하나씩 올려주면- 지글지글 자글자글. 그래, 이거지! 창 밖에서 들리던 빗소리가 어느새 주방 프라이팬으로 옮겨 왔다. 이대로 먹어도 좋지만 품을 조금 더 들여본다. 간장에 식초, 고춧가루와 물 조금. 기름 맛을 잡아줄 초간장, 초간단 완성이다!
같은 반죽물에 세발나물까지 부쳤다. 봄동전과 세발나물전, 이만하면 훌륭한 봄철 안주상.
파삭- 일식튀김마냥 입 안에서 부서지는 반죽옷 사이로 봄동의 푸릇함이 느껴진다. 어른미 넘치는 나른한 겨울배추전과는 다른 매력이다. 풋풋하면서도 생기가 도는 초봄의 맛이랄까. 알코올 찌질이라 막걸리 대신 우엉차를 곁들인다. 짝꿍과 전을 안주 삼아 하루 있었던 일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소박하지만 계절이 담긴 맛있는 음식, 그리고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 이 시간이 최고의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