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드림 Jul 13. 2023

쓰면 이루어진다고? 어... 이게 되네

확언으로 중도퇴실 세입자 구한 썰

더는 직장을 다니지 않았기에 군양시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사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자면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방을 빼기로 결심하고, 제일 난감했던 것은 바로 중도퇴실 세입자를 구하는 것이었다.     


자취를 먼저 해본 친구들에게 여러 조언을 구했을 때에도 '너무나 당연해서' 말하는 것을 까먹었다고 했던 도시가스를 신청하지 않아서 찬물샤워를 하고, 서늘한 늦가을의 추위에 이 악물며 자게 되면서 그렇게 자취인이 해야 할 생활행정을 몸소 익혔다. 여러모로 나의 첫 자취는 인상이 강렬했다.     

도시가스 신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짧은 독립이지만 방을 빼는 것도 이렇게 빠르게 체험할 줄은 몰랐다.

부모님 밑에서 생활에 밀착하기 위해 풀칠하는 방법을 모른 채 계속 살아온 나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 나이도 어린 나이가 아니고 정말 무지랭이 같이 뭐 하나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행해버리는 이런 충동과 다듬어지지 않는 것들을 연마하기 위해서 독립을 한 것이라 생각하고 차근차근 하나씩 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사 올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시기 자체도 이사철이 아니었고, 근처 사업단지에서 근무자 모집이 거의 다 끝났기 때문에 방을 구하러 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 분위기였다. '어떡하지' 하는 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다음 달 월세비용 50만 원을 내면서 나는 정말 산소가 없는 진공상태에 갇힌 기분이었다. 돈이 없을 때 느끼는 그 무언의 압박과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막힘을 경험하고 나니, 드디어 현실적으로 내가 뭘 해야할 지가 선명히 보였다. 여전히 어지럼증은 심했고, 자주 울렁거렸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음 달에는 무조건 방 뺀다.'     


한 날은 잠이 안 와도 너무 안 와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결심하게 되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나는 이렇게 결심하고 나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하나씩 따져보기 시작했다. 

    

1. 공인중개사에 연락 돌리기

2. 피터팬, 당근부동산 등에 직접 촬영한 게시물 올리기     


1,2번은 결심을 다진 날 하루 이틀 사이에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내 사정을 딱히 봐주신 집주인 분께서도 여러 부동산에 연락을 돌려주셨고, 실제로 집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왔다. 신축 빌라였고 들인 품이 몇 없었기 때문에 깔끔하고 문제가 없는 방이었다.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부동산에서 실망스러운 전화를 몇 번 받기도 했다. 외부의 사정에 의해, 다른 방을 계약하기로 해서... 달리기를 해서 결승선까지 거의 다 왔는데 결승선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자꾸만 멀어지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당근부동산에서 내 게시물은 특히나 조회수가 높았다. 1,500번 이상의 조회수를 돌파하였으나 남은 것은 호의적인 외국인의 '베란다가 없어서 너희 집 안 가. 메롱' 이라는 조롱 뿐이었다. (화가 치밀어서 한국말로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젠틀한 나는 참기로 한다.)     


정말 '세상살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구나' 라는 푸념이 자연스럽게 나올 무렵, 나는 '조셉 머피의 부의 초월자' 라는 책을 읽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확언의 힘을 아주 굳세게 믿을 수 밖에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확언, 시각화, 감사일기 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자기계발 유튜버를 통해, 그리고 성공서적을 통해 익히 알고 있던 개념이었으나 이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행동수칙을 추가하게 되었다.    

 

3. 중도퇴실 성공을 위한 확언하기     


처음의 내 확언은 '이 집은 11월 30일까지 무조건 나간다.' 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점점 나의 확언은 구체화되었다.     


11월 30일까지 내가 지내던 집을 이어받을 경제적 능력이 있는 다음 세입자가 나타난다. 내 집은 좋은 분께 넘어가고, 나는 통장에 찍힌 보증금의 금액을 감사한 마음으로 확인한다.    

이렇게 적은 메모를 벽에 붙여두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수시로 보았다.

     

그 무렵 즈음, 우연하게도 나는 내가 '이런 구성으로 제작된 다이어리 있으면 좋겠다.' 하는 다이어리를 만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놓고 묵혀둔 다이어리를 책상 정리하다가 가까이 두면서 자주 쓰자고 다짐하게 된 것인데, 이 다이어리에는 확언, 시각화, 감사일기, 투두리스트 등을 한 페이지에 쓸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틀을 갖추고 있었고, 나는 비슷한 내용의 시각화 문구를 매일같이 적었다.     

중도세입자를 구하는 동안 내가 적은 확언들
'곳곳에 나의 집을 내놓는다. 거래가 성사된다. 11월 30일 안으로 무조건 나간다.'    
 '11월 30일 이전에 무조건 방이 나간다. 필요한 사람에게 연락이 온다.' 
'집은 좋은 사람에게 넘어갔다. 보증금은 나에게 들어왔다. 보증금의 액수가 내 통장에 찍힌다. 감사함과 평온함을 느낀다.'     
'공인중개사에서 연락이 온다.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한다. 필요한 사람에게 집이 이어진다. 감사한 마음으로 보증금을 받았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사람이 나타난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거래를 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서는 불안이 나를 삼켜버릴 듯 크게 자리잡은 날이 있었는데, 그럴 때에는 멜 로빈스의 ‘굿모닝 해빗’에 나온 말들로 나를 진정시켰다.     


‘나는 괜찮다. 나는 안전하다. 나는 충분하다.’     


책에서 나온 말들은 ‘정말 저게 되나...’ 긴가민가 했던 내용들이었지만, 실제로 나에게 상당히 큰 안정감을 주었다. 지금 당장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 고구마 줄기처럼 뽑혀질 문제들에 압도당할까봐 두려웠었다. 그러나 정신 차리고 객관적으로 현 상황을 직시하자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렀고, 성과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기다리는 연락은 언제고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꼬리뼈 재활 겸 햇빛을 쬐기 위해 나는 느릿느릿 산책을 다녀왔다. 방 안에만 있으면 더 아파지는 기분에 산책을 하고, 햇빛에 충분히 구워지고 걸을 수 있을만큼 걷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러진 몸과 마음은 기분 좋은 노곤함에 둘러쌓였다.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고, 집주인의 전화에 나는 자세를 고쳐 앉게 되었다.     


"아 예,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12월에 여기로 근무지 발령 받으시는 분이 방을 계약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다. 그날은 11월 26일이었다. 나는 몸에서 일어나는 전율과 짜릿한 감각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었다. 정말 기적처럼 11월 30일 전에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천과 그것의 결과를 피부로 느낀 날이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확언을 읽고 쓰고 매일 되뇌이면서 잿더미를 비집고 다시 타오르는 불티를 모으듯 세입자를 끌어당겼다.     


그 날을 계기로 나는 내 안에 '화르륵' 스쳐 지나가는 또 다른 불씨를 발견하게 되었고, 활활 타오를 산봉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블랙아웃과 로그아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