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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드림 Nov 07. 2023

돌이켜보니 백수 1년 차

무르익은 막연함 탈곡하기

 22년 11월부터 본격적인 백수가 되었으므로... 23년 11월은 백수가 된 지 1년 차가 되는 달이다. 


 전혀 계획되지 않은 퇴사를 하였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막연함'이었다. 몸이 다친 상황에서 퇴사를 하게 되자 앞으로의 생계나 미래가 눈앞에 그려지지 않았다. 당장 그려지는 것은 전원 공급이 차단된 암흑이었다.


 사고가 난 직후에는 어안이 벙벙했으며 동시에 '그때 왜 그렇게 부주의했지? 왜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났지? 어째서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이지?'라는 자기 비난의 목소리가 점점 그러데이션처럼 커졌다. 할 수 있는 게 내 탓 밖에 없었으므로. 하루를 지내고 남은 에너지가 있다면 자기 비난을 하는 데에 다 끌어 썼다.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으나 그것이 나의 최선이라고 믿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상한) 최선을 다하는 나라고 위안을 삼고 싶었나 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점검해 본다. 직장 근처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집은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가장 컸다. 그러다 '앞으로는 뭘 해 먹고살아야 하지?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기타 등등의 생각이 너무 비대해져서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무엇 하나 내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시에는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의 회복이 필요했으므로 '지금 이래도 되나?' 싶은 휴식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겐 가장 급선무였다.




 조금씩 몸이 회복되자 이제는 해가 떠있을 때 집에 있는 게 어색했고, 오늘이 월요일인지 일요일인지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씩 힘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감각이 둔해지자 나도 어디론가 아무도 모르게 떠내려가 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커졌다. 그러다가 그냥, 이 생활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한껏 가시 돋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니 얼굴의 비대칭부터 기미, 퉁퉁 부은 붓기 등 무엇 하나 예쁜 구석이 없었다. 처음으로 흰머리가 보였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정말 음울한 감정들이 끝없이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그 자체였던 이 생활에 내가 놓지 않았던 희망은 '독서'였는데, 그때 내 손에 들려있던 책은 멜 로빈스의 <굿모닝 해빗>이었다. 원래 책에 나오는 액션들은 딱히 실천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왜인지 멋쩍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억지스럽더라도 거울 보고 나를 보며 웃어 보이고, '나는 괜찮다, 안전하다'라는 말을 꽤 오래 되뇌었다. 마음이 늘 형체 없는 불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드라마틱한 변화 없이 외려 '이게 뭐람?' 싶었지만 시간이 넘쳐났기 때문에 뭐라도 해보자 싶었다.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해보자는 핑계도 댈 수 없었다. 거울 속 나를 대충 쓱 훑어보고 '오늘은 제법, 음...' 하며 단어를 고르다가 멋쩍게 '괜찮은데?ㅋ'라고 자조적인 태도로 도망치며 끝맺는 날의 빈도가 잦았다. 아무도 안 보는데도 평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그나마 무난한 단어를 골랐다. 하지만 그 경험도 축적이 되었는지, 매일의 내가 다르게 보였다. 


 '오 오늘 좀 부기가 빠져서 쌍꺼풀이 예쁜데?'라거나 '오늘은 좀 귀엽군' 하면서 조금씩 마음에 드는 부분을 부각해 구체적으로 칭찬하였다. 시간이 흘러 나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해 사팔뜨기가 되던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억지스럽게 삐걱거리던 입은 자연스럽게 치아를 보이며 웃음을 짓게 되었다. 4개월이 걸렸다. 거울 속 나 자신을 제대로 보는 데에 걸린 시간 말이다.


 그와 더불어 새로 시작한 활동이 바로 일기였다. 한창 확언과 시각화, 감사일기가 내 주된 관심사였는데, 우연처럼 그 구성이 한데 모여있는 다이어리를 만나 하나씩 써 내려갔다. 그때는 창 너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방에 살고 있던 터라 '독방에 갇혀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라는 슬픈 감정이 절로 찾아왔다. 마치 유배를 온 것만 같은 시간을 절대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 처음에는 생존일지 쓰듯이 하루하루 일기를 썼다. 


 계속 이렇게 처박혀 있다가는 사람이 미쳐갈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비로소 재활 겸 산책을 했다. 햇빛에 나를 구웠다. 세로토닌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조심스레 걷던 걸음에 힘이 실리고, 내 마음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이대로도 괜찮구나. 이대로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늘 정해진 궤도를 돌다가 갑작스럽게 똑 떨어져 나온 내게, 오후 2시의 햇살은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라고 말하는 듯 한없이 명랑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햇살은 공평했다. 어느 하나 소외시키지 않고 주변을 아울렀다.


 그제야 껍데기의 나와 정신적인 나의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여기 있었지만, 동시에 '지금 여기'에 없었다. 땅굴 파고 어떻게든 과거로 통하는 블랙홀을 만들려고 하거나, 너무 먼 미래로 퀀텀점프할 준비를 하는 '나'를 잡아다 눈앞에 닥친 '현재'라는 자리에 데리고 오기 급급했다. 정신과 영혼이 너무 소란스러웠다. 그런 이미지를 '유미의 세포들'처럼 2등신 캐릭터들의 귀여운 움직임으로 떠올리자 키득키득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림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땐 모든 게 새롭게 보였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어떤 눈이 뜨여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햇빛과 일기가 나와 내 앞의 과녁을 분명하게 마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중도퇴실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다행히 예전 직장 생활할 때 모아둔 여유자금이 있다는 게 비로소 떠올랐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맞았다. 


 그래도 일을 해왔던 관성 때문에 직장인 루틴에 맞추어 얼레벌레 살아갔다. 변화가 있다면 6시가 되면 딱 일을 놓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했다. n년 넘게 야근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에 '나... 이래도 돼?'라는 물음이 솟구치면 '어. 너 돼! 그러니까 좀 쉬어.'라고 계속 힘주어 대답해주어야 했다. 제대로 쉬는 법을 몰라 불안에 쫓겨 매일 4~5시간씩 밖에 못 잤기 때문에, 푹 자는 게 숙제였다. 충분히 잠을 자는 게 어색하고 어려웠다. 가끔은 잠을 왜 자야 하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아까울 때가 있었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은 하루에 못해도 6~7시간씩 자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7시간 안 자면 제대로 하루가 가동되지 않는다. (ㅋㅋ...)


 혼자 있어도 절대 가만히 있는 타입은 아니라서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다. 미라클 모닝도 하고, 바인더도 처음 써보면서 내가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고 있는지 톺아보게 되었다. 조금씩 내 생활에 주도성과 통제권을 회복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정말 낯선 개념을 만나게 되었는데, 무언가를 하나씩 실천하는 '성취감'과 내가 나를 허락하고 긍정하는 '자기 인정'이었다.


 매일의 소소한 성취감은 내가 겪었던 그 어떤 감정보다 나를 더욱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아무나 붙잡고 '나는 혼자서도 잘해요!'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인정하는 힘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분리하여 조금 더 관대하게 나를 대우해 줄 수 있었다.


 거의 인간관계를 단절하다시피 살았지만 그래도 경조사가 있다면 가급적 참여하였다. 간혹 일찍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벌써 6~7년 차 노련미가 더해진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의 직장생활이 너무 먼 옛날처럼 아득해지거나, 어딜 가서 내세울 명함 하나 없는 나의 삶이 헛되이 느껴질 때면 나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아졌다. 정신과 영혼이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나는 땅굴을 파느라 감각을 둔화시키고 있었다.


 한 날은 그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듯이 다가올 때가 있었는데, 첫 다이어리를 가득 채웠을 때의 짜릿함과 뿌듯함이 전기 통하듯 떠올라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살펴보고 싶어졌다. 여태까지 무언가를 쓰기만 급급했고 이렇게 되돌아보는 여유는 따로 없었던 것만 같아서 다시 쓴 다이어리를 보는 것은 아주 낯설고 생경했다. 그러나 곧바로 여태까지 작성해 둔 기록이 나의 뒤를 받쳐주는 감각을 느꼈다. 환희와 기쁨에 찼던 싱그러운 순간들을 다시 만났다. 나도 모르게 울컥 터져 나온 눈물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싶을 때 쉼터가 되어주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쓸 수밖에 없겠다는 필연이 스쳐 지났다. 지속가능한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이 정체성이 모호한 시기를 '나다움 회복의 시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만의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한다. 개중에는 아직은 배울 깜냥이 되지 못해 지속하지 못한 배움도 있고, 여태까지 주욱 이어온 취미가 생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경우도 있다. 글쓰기가 특히 그런 경우다.


 틈틈이 읽고 싶던 책의 리스트를 정리해 읽는 생활을 이어갔다. 읽은 책 내용정리를 할 겸 블로그를 시작하고, 책값 아끼려고 시작했던 체험단을 비롯하여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생활비를 아낀 적도 있다. 기록이 쌓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감사하지만 독자를 염두하는 글쓰기는 왠지 쑥스럽고 멋쩍어서 썼다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어쩌다 한 번씩 가뭄에 콩 나듯 협찬 문의가 온 적도 있다. 돈이 부족해지면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모은다. 모닝페이지를 4권째 쓴다. 얼마 전에는 지인 분의 블로그 컨설팅도 도와드렸다. 축적된 기록은 나에게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선물로 주었다.


 새벽에 운동장을 돈다. 떠오르거나 필요에 의한 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 집안일을 한다. 사나운 식사로 몸을 해치는 한 편 건강한 식사를 별미로 먹는다. 건강한 식사로의 비중을 바꾸기 위해 부던히 애쓴다. 해 질 녘에 운동장을 또 돈다. 종종 춤을 춘다. 가끔 생각 없이 휴대폰 보다가 시간을 통째로 잡아먹기라도 한다면 다시 정신 번쩍 차리고 몰입하거나 또는 후회로 베갯잇을 적시며 '내일은 기필코...!' 하다가 코오 잠든다. 그렇게 나는 과녁에 나를 쏘아 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많이 빗나가고 가끔 과녁 안에 화살이 꽂힌다.


 과녁 안에 드는 화살을 모아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하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감사함을 담아 보답하고, 나를 풀어헤칠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와 밑줄을 힘주어 긋고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무르익은 1년 치 막연함을 탈곡해보니, 기록으로 걸러진 나다움 회복의 순간이 알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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