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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드림 Jun 19. 2023

블랙아웃과 로그아웃

잘못 딛은 그 한 발자국이 불러온 결과


개발자를 꿈꾸기  나는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했었다.     


코로나19 급습은 우리에겐 속수무책이었다. 가정보육이 길어지게 되고, 등원하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게 되자 더욱 밀도있는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보육현장의 어려움으로  꼽히던 교사  아동 비율의 축소가 단편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인재로 인해 이루어진 비극이었기에 마음 근저에  우울이 매달린  모두가 힘겹게 보낸 시기였다.     


한 날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00이는 요즈음 집에서 뭐하고 놀아?”

“로블록스요.”     

 아이는 5살이었고, 손윗형제들이 많은 아이였다. 형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함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겠구나- 예상했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5살이 벌써 메타버스 게임을 한다고?’     


지금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일상 속 다양한 경험을 통한 사회관계를 구축하고, 자신만의 색을 칠하며 그렇게 세상을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애석하게도 그 경험에 제약이 받게 되어버려 외부 환경 접촉이 줄어들고 미디어 매체로 놀이수단이 좁혀질 수 밖에 없는 실정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런데 메타버스 게임이라니! 나는 메타버스에 대한 개념도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았고,  게임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했으나그때 내가 엄청나게 도태되고 낡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없었다.     


그날을 기점으로반복되는 일상에 어떠한 파문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여태까지 내가 살아온 생활을 돌이켜보게 했고, 내가 모르는 어떠한 세계의 동경 같은 것이기도 했으며, 언젠가 이루어야 할 독립을 앞당겨야겠다고 다짐이 한데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내면의 소리는 결국 결론을 지었다. 


'지금 나가야 해. 안 그러면 영영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이 전부가 되고 말 걸.'


이미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음을 벌써 피부로 느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확고해져갔다.


다음 날, 아침 차량 지도 업무를 함께 하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늘 반달눈 웃음으로 미소를 잃지 않으시는 반달눈 선생님.     


“선생님, 00이는 집에서 로블록스 게임을 한대요.”

“아~ 우리 조카도 하는 것 같더라. 근데 그게 뭐야?”

“메타버스 게임이에요.”

“진짜? 메타버스가 뭔데?”

“저도 잘 몰라요. 그래서 뭔가 이대로 있으면 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요?”

선생님, 20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한데, 선생님은 너무 투머치한  같아.  줄여봐.”     


나는 타고나길 호기심이 많았고, 내가 경험하고 나만의 도식을 그려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하고잡이 기질을 타고 났지만, 끈기있게 결실을 맺는 활동은 극히 드물었다. 평소에 대화를 많이 나누며 나의 이런 성향을  알고 계시는 반달눈 선생님께서는 아무래도 나와 함께 하는 아이들도 있으니 지금은 일을 벌이기 보다는 좁힘으로써 더욱 내실을 갖추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씀해주신 것이다. 10여년이 넘도록 현장에 계신 선생님의 눈에는 나도 이제  자라는 새싹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사로서의 나'를 위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으나, 아이들과 수료를 마친 이듬해 2월, 나는 정든 보금자리를 떠났다.      




이야기는 앞서 밝힌 메타버스 개발  기획자로써의  걸음마를 떼려는 순간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군양시에서의 생활은 여전히 회색빛이었지만, '언젠가는 무지개를 볼 수 있으리.' 하는 낙관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다들 이렇게 사는  아니겠냐며나에게도 당연히 겪어야 하는 시기가  것이라며 위로하고는 했다. 혼자 살면 돈도 적잖게 깨지기 마련이라, 일부러 직장 사람들 외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늘리지 않았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래서 더더욱 위로를 해줄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날은 펜션에 놀러갔다가, 욕실에 발을 딛으려는 순간 뒤로 넘어져 머리와 꼬리뼈에 충격을 받고 아주 잠시동안 의식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블랙아웃이었다.


검사결과는  이상이 없었으나 나는 이튿날부터 지속적인 어지럼증을 느꼈고, 어릴  다쳤던 꼬리뼈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근무를 이어가지 못해 퇴사를 하게 되었다. 정말 계획되지 않은 자발적 퇴사였다.


꼬리뼈는 특별한 조치가 어려운 부위  하나이다. 어렸을 , 하늘 높은  모르고 힘차게 굴린 그네의 정점에서 손을 놓치는 바람에 수직하강한 적이 있다. 모래밭에 떨어져서 망정이지만  뒤로 꼬리뼈가 안쪽으로 말리게 되면서 10년이 지나도 바르게 누워서 자는 것이 힘들다. 당시의 아찔함이 아득하게 밀려오면서 잠잘 때에도 마음 편히   없으니,  신경증은 얼마나 극에 치달았을까. 그때의 나는 마치 아주  갈려진 바늘의 촉과 같았다. 너무 날카로워 가까이 닿기도 전에 피가 절로 맺혀버릴 것만 같았다. 할 수 있는 게 자책 밖에 없다고 여기며 그런 바늘로 자꾸 스스로를 찌르고 있었다. 


여태까지 무언가를 쉼없이 해왔는데. 해가 뜨면 출근을 했고 해가 지면 퇴근을 했는데.

잠시 1 안식년을 가졌을 때에도 엄마 가게를 도와드리며 지냈기 때문에, 오전 9시가 되어도 집에 있는 이런 공백은 내게 너무 어색한 경험들이다.


나는 이제 뭘 해야하지?     

선생님, 20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한데, 선생님은 너무 투머치한  같아.  줄여봐.”     


꽉 막힌 공간에서 완벽히 고립되었다고 느꼈을  즈음, 선생님의   마디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 이건 내가 너무 섣부르게 내린 선택들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 결과구나. 줄여야 할 때가 왔구나.’    


한치 앞도 모르고 내딛은   발자국이 이렇게 이어지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지만 앞으로도 삶은 이러한 당황스러움의 연속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까. 뭐라도 하려면 우선은 건강해야했다. 제일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지금의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라고 준 신호였을까. 내가 당장 해야하고 할 수 있는 것은 '회복'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로그아웃하고, 내게 처한 현실을 직시하기로 하였다

경력도, 사회적 지위도, 잿빛 지옥도 없는 그저 ‘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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