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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드림 May 20. 2023

창밖에는 회색 벽만 있고, 여긴 너무 어두워

나의 첫 독립기

*지역명은 가명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먹구름이 햇빛을 가려주는 서늘한 날.


 기숙사 룸메이트와 이불 빨래를 마치고 빨래방 출입문을 열었는데, 맞은편에 있는 빨간 벽돌집에 유난히 눈길이 갔다. 호기심에 이끌려 간 곳은 새로 개업한 타로집이었고, 취업을 앞두고 있는 시기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홀려 들어갔다.


 나는 직장을 다니던 관성 때문에 빨리 돈을 벌고 싶었고, 조기취업을 염두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어머, 이건 안 봐도 훤하다. 소울님이 봐도 엄청 좋아 보이죠?"


내가 뽑은 카드에 대부분이 팬타클(금화 동전)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나보다도 신장개업을 한 사장님이 더 좋아하셨다.


 훗날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친구는 '네 앞날을 왜 한낱 카드뭉치에 맡기냐.'며 핀잔을 주었지만-생각해 보니 납득이 갔다-, 당시에는 불확실한 나날 속에서 뭐라도 확실한 한 마디가 간절했다.


며칠 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조기취업을 목표로 했기에 자기소개서 및 이력서를 작성하고, 포트폴리오 제작에 돌입했다.

일주일 뒤, 모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1차 면접, 2차 면접을 본 뒤 취업을 하게 되었다.


직업 전향을 위해 아예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는 분야에서 시작한 공부였고, 어차피 미숙할 것이라면 현장에서 부딪히며 빨리 감각을 키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였다.


취업이 확정되고 나서, 대표는 곧장 나에게 말을 놓았다.


"나이가 많은 신입이니까 사수들 눈치 주지 말고 알아서 잘해... 네가 나이가 많으니까 애들 좀 잘 챙겨..."


 사수들이 나보다 나이가 어려서, 회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귀에 인이 박힐 정도로 이 이야기를 하는 대표였지만, 나는 경력도 없는 나에게 이런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더 부각해서 좋은 면만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가 많아도 일을 모르는 신입을 더 살뜰하게 챙겨주겠다는 언급이 없어 아쉽다.


 회사 첫 출근을 10일 정도 앞둔 시점에서, 나는 아예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가야 했기에 집을 구해야 했다.

당시, 군양시의 유명 사업체에서 많은 인력을 모집하고 있는 시기와 맞물렸기에 매물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자취 경험이 풍부한 남자친구가 동행해 주어 매물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정말 간 발의 차로 찜해둔 집이 속속들이 나가자 울며 겨자 먹기로 아직 준공도 안 된 신축빌라에 덜컥 계약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드디어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부푼 설렘과 야무지고 건강한 생활을 꾸려나가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삿짐을 옮겼지만 침대도, 냉장고도 들어서지 않은 공간은 무척 삭막했다. 닦아도 닦아도 공사 후의 잔해가 나오는 것까진 어떻게 참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룸메도 없고, 다시 장거리 연애를 하는 듯한 서러움 같은 것은 닦아도 닦아도 좀처럼 없어지지가 않아서 첫날은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없다가 있는 경험은 낯설다가도 서서히 안정감을 주었지만, 있다가 없어지는 경험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름 독립적인 성격이라고 했지만, 독립적인 것과 외로움은 별개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눈을 감았다가 애꿎은 소화전과 비상구의 불빛이 너무 환한 것을 원망하며 다시 뒤척이길 반복했다.

이사 첫날


 혼자서 밤을 지새운 것 이후로 더욱 고립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아침의 풍경을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창 밖은 바로 옆에 붙어있는 타이어 가게의 벽이어서, 풍경을 보려면 창 밖으로 상체를 2/3 이상은 빼내거나 중앙복도를 이용해야 했다.


방안에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깨닫게 될 무렵, 침대와 냉장고가 들어왔다. 일도 어느정도 손에 익기 시작했다.


 일은 서툴렀지만 사수들이 아주 야무져서 되려 내가 많이 배웠다. 함께 식사 후 산책도 다니며 생각보다 여유롭게 회사에 점점 적응해갈 무렵, 어느 날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같은 직장 동료에게 살해당한 여성에 대한 뉴스를 보았느냐고 대표의 부인(가족회사였다는 것도 회사 와서 알게 되었다)이 먼저 꺼냈다.


굳이 식사시간에 숨이 턱 막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속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뒤이어 이야기했다.


"군양시에 범죄자들이 많아. 강간범 조심해~"


타지에서 자취하는 여자에게 씨익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생각하기도 전에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다행히 그날은 조기퇴근을 하는 날이었다.


 집에 와서 신발을 벗지 않은 채로 자취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현관의 자동 센서 불빛이 꺼지자 그나마 익숙해져 가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암막 커튼을 치지 않아도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공간.



창밖에는 회색 벽만 있고, 여긴 너무 어둡다.

그것이 나의 첫번째 독립의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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