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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드림 Jul 21. 2023

매미는 맴맴하고 울지 않는다

여름 산책의 단상

1. 매일 오전에 걷는 길이 있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 아래로 탈바꿈을 마친 허물을 하나 둘 발견하고 나니, 그제야 여름을 알리는 반가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매미다. 한 해를 거듭해갈수록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은 건 인간뿐만이 아니다. 고막을 찢을 기세로 '나 매미쓰. 7년 만에 이 세상 빛을 보다.'는 존재감을 쩌렁쩌렁하게 울음으로 표현해야 할 녀석들이 제대로 힘을 못쓰는 게 느껴진다. 짧게는 2주, 길어야 한 달 반 정도가 평균적으로 이들에게 주어지는 수명인데, 장마를 이겨낸 녀석들은 정말 대견하고 또 안쓰러운 존재들이다. 그들이 났을 때 환경의 처지에 유명을 달리하는 것도 자연의 섭리이지만, 그 자연의 섭리를 인간들이 마구 훼방을 놓고 있다는 죄책감이 태양을 투과하는 돋보기처럼 나를 쬔다. 내 마음은 검정종이와 같아 돋보기가 햇빛을 모은 자리는 타들어가고 구멍이 남는다.


2. 요즈음은 15분 정도만 걸어도 땀이 주르륵 나는데, 그래도 자외선 차단은 필수라 양산과 선글라스를 늘 끼고 다닌다. 자의식 과잉인지는 몰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한 번씩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통통한 얼굴과 피부는 앳되어 보이지만 양산과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저 풍채 좋은 여성은 몇 살인고 하는 눈빛이다.

어르신들이 여름만 되면 그렇게 양산을 쓰고 다니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처음에는 '에이, 아무리 날이 덥다고 해도 밖에 나오면 햇빛은 받아야지.' 하고 생각하였지만 요즘 자외선은 따갑다 못해 피부층에 구멍을 뚫고 상처를 낼 것처럼 아프다. 자외선 통구이가 될 것 같다.


3. 오늘은 근처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 3단 접이식 우산으로 자외선을 차단하며 걷는 청년의 모습을 보았다. 누가 그러더라. 지드래곤이 빨리 양산을 쓰고 다녀야 한다고. 유행의 선두주자인 지드래곤이 양산 활용을 패션템처럼 유행시켜 주어야 남자들도 편하게 양산을 쓰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또 쭉쭉 걷다 만난 한 학생은 그늘 아래에서도 걸음걸이가 무척이나 불안해 보이고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이 아슬아슬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다행히 실내로 잘 들어간 듯했다.) 나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열사병의 증세를 알아두고 CPR의 순서와 제세동기의 위치를 잘 살피자고 다짐하였고, 내 가방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생명수가 될지도 모를 여분의 생수를 구비해 두어야겠다는 앞서나간 대책을 마련하였다.


3. 이번 여름은 정말 모 아니면 도다. '폭우' 아니면 '폭염'. 이번에는 우리나라 대륙에 수증기가 가득 밀집해서 집중호우가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 안타까운 순간들이 우리 이웃의 행복을 휩쓸었고...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하지만 너무 굳다 못해 척박하게 갈라지고, 우리의 마음도 더욱 메말라가게 되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인간은 기후의 영향에서 완벽히 독립될 수 없으므로-


4. 중간을 지키기 어려운 삶의 태도처럼 날씨도 점점 양극화되어가는 것 같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우리가 불러들인 결과인 셈이다. 수년 전부터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면 폭염과 폭우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올 것이라는 예고와 경고가 있었고, 사실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의 나의 삶에 큰 어려움과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냥 매일을 살아갔던 것뿐이었다.


5. 오늘도 한차례 스콜급 소나기가 왔다 갔다. 이런 날씨는 우리에게 혼란을 주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나를 지키기 위해 예민해지게 된다. 그래서 쉬이 남 탓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휘파람이 누군가에게는 태풍이 된다. 그러나 혼란을 딛고, 이제는 이런 상황들이 주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우리 내면에 있는 태풍의 눈을 떠야 할 차례가 왔다.


6. 안 그래도 보부상인 나의 가방에는 늘 우양산이 자리하고, 당분간에는 여분의 물을 구비하게 될 것 같다. 누가 칼을 들고 협박하지 않아도 나는 우리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끈을 놓고 싶지 않다. 설령 그게 실오라기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상생의 새끼를 꼬고, 연대와 유대의 매듭을 지을 때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동아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매미는 맴맴하고 울지 않는다. 사는 동안 자신의 운명을 따라 존재했다는 흔적을 이렇게라도 남기고 싶어 처절하게 목놓아 부르짖는 비명이다. 우리는 매미의 울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오늘의 단상은 매미의 울음에서 비롯된 내 마음의 소리이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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