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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드림 Apr 01. 2024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구원

모닝페이지 속의 나 EP.1


모닝페이지를 쓴지 딱 1주년이 되었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첫 모닝페이지를 쓴 지 1년 후에 나는 서른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고, 다른 건 몰라도 오늘만큼은 꼭 기념하고 싶었다. 취미에 연차가 붙는 것이 근속연수가 오르는 것보다 더 짜릿하달까.    


모닝페이지는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 ‘글쓰기 훈련을 위해서 써야지!’ 하며 시작하기보다는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고 느끼던 시기에 이것마저 안 쓰면 정말 내가 구제불능이 된 것만 같아서 구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그렇다고 정수를 떠놓고 기도하듯 간절한 내용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시작은 단순히 노트를 받은 게 생겼고, 엄마가 생일 기념으로 만년필을 사주셨고, 때마침 블로그 이웃님의 포스팅을 보고 ‘모닝페이지’에 관심이 생겼다. 모닝페이지의 모체인 도서 ‘아티스트 웨이’ 도 구매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12주 완주를 하지는 못했다. 오로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30분 동안 무의식의 흐름을 흘려보내는 데에만 집중했다.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 줄리아 카메론은 8주 동안 자신의 기록을 되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런 그녀의 뜻을 받들어 안 보는 게 습관화되다 보니 기록해놓고 기억 저편으로 잊힌 노트가 벌써 4권이 되었다. 현재 5번째 노트를 쓰고 있고, 보름 후면 여섯 번째 노트를 맞이한다. 켜켜이 쌓인 노트들이 눈에 밟힌 것은 이제 좀 자신들을 봐달라는 부름이었고, 나는 오랜만에 응답하여 노트에 남겨진 과거를 더듬어본다.     







나의 기록을 들추어본다는 건 이른 시간에 아무도 없는 상영관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관중석은 텅 비어있지만, 필름은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돌아가고 있다. 장르는 그때그때 다르다. 무언가 험한 것(?)이 나올 것만 같은 묘한 스릴러일 때도 있고, 어떤 악당이 나올지 대충 짐작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고 최후에는 통쾌함을 느끼는 액션 영화가 되기도 한다. 때로 모닝페이지는 종교가 없는 나의 주기도문이자 아무도 듣지 않는 고해성사의 장이 되기도 하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무엇 하나 꾸준히 하지 못하는 내가 이걸 어떻게 1년 동안 지속할 수 있었을까?      


이런 물음이 글쓰기로 향하는 오솔길을 만들었다. 나는 자주 생각에 잠겼고, 얼마 못 가 거두었다. 느리지만 서서히 걷고 쉬기를 반복하며 쓰다 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어딘가에 발이 묶여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훌훌 털어보내고 싶었다는 것을. 지금 내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쳤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잘 돌보는 행위가 내가 나에게 주는 구원이라는 것을 말이다.



돌이켜 보니 내가 쓰는 모닝페이지는
고유함을 회복하길 바라는 내면의 응원이었다.

  



오늘은 맨 처음 작성한 모닝페이지를 읽었다. 갓 구워 따끈따끈한 마들렌을 오븐에서 꺼내는 기분으로 노트 커버를 펼쳤으나 김이 팍 샜다. 첫날에 작성한 것은 달랑 한 페이지 분량의 일기에 불과했다. 지금이야 매일 3페이지 쓰는 게 당연한 일과가 되었지만, 이때는 아니었다. 마치 기억이 안 나는 어릴 적 사진을 보는 것처럼 생경하고 내가 성장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제법 기특하기도 했다.     



그날은 부모님의 30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모처럼 떠난 제주도 여행이었고, 천지연 폭포를 따라 흐르는 강물에 흐드러지게 벚꽃비가 내린 날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가족여행 브이로그를 찍겠다고 열심이었다. 평소 자주 언성을 높이던 부모님도 여행하는 동안은 다투지 않으셨는데, 이상하게 나와 동생이 심하게 다투었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중에도, 각자가 가야할 곳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한 마디를 나누지 않았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글을 쓰는 김에 오랜만에 그날들의 사진을 다시 살펴본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떠난 벚꽃잎은 강물의 이불이 된다. 싫다, 안 한다, 손사레를 쳐도 결국엔 귤 모양 머리핀을 꽂은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내가 보인다. 


다시 들춰본 첫 번째 모닝페이지는 그 당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더욱 선명하고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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