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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한승 Oct 13. 2024

[소설쓰기 #3] 북한산 괴물과 돌림노래

#3


우진과 점심을 먹는 날엔 항상 똑같은 카페에 갔다. 광화문역에서 이 분 정도 걷다 보면 나오는 단독 주택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자그마한 하얀색 자갈들이 깔려 있는 앞마당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래된 나무 계단이 나왔다. 곧장 계단을 올라가면 작은 계산대와 조리대 그리고 수다를 떨고 있는 무던하고 성실한 남자 직원 둘이 있었다. 가끔은 장발을 한 직원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동안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우진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나는 차가운 바닐라 라떼를 자주 시켰다. 주문을 마치고 돌아서면 눈앞 가득히 초록색 나뭇잎 물결이 보였다. 카페 한쪽 벽 창가에 커다랗게 나 있는 통창을 통해 길거리 가로수의 빽빽한 나뭇잎들이 정면으로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항상 창가 앞 바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날은 전날 밤부터 내린 장맛비로 오후 두 시인데도 사위가 어둑했다. 카페 내부가 저녁때처럼 깜깜했고 공기도 평소보다 서늘했기에 나는 아직도 그날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짙은 초록색 장벽처럼 창밖에 서있는 나뭇잎들도 축축하고 무거워 보였다. 어쩌면 모든 것이 가라앉아 있던 그 안의 습기 어린 기운이, 내가 우진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게 한 이유일 수도 있다. 평소와 다르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은 나는 허벅지 밑에 양손을 꼭 끼우고는 창문을 미끄러지는 빗물 폭포를 가만히 구경했다. 어느새 주문을 마치고 온 우진이 내 옆에 놓인 의자를 끌어당겨 자리를 만들었다. 나뭇바닥에 의자를 끌면서 나는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그날따라 크게 울렸다. 나는 그게 신호인 것처럼 입을 떼고 우진을 불렀다.

"우진. 비 오는 거 보니까 산에 가고 싶다. 맨날 가는 동굴에 가고 싶어."

"동굴? 이런 날 산에 잘못 가면 죽어요, 선배."

"저번에 나 쉬는 날에 뭐 하냐고 물어봤잖아. 맨날 집에 있으면 안 심심하냐고. 나 사실 집에 없어. 일요일에 눈 뜨고 일어나면 먼저 블라인드를 걷고선 집에 있는 조명을 죄다 켜. 그래봤자 세 개뿐이지만. 그러고 나서는 물 한 잔 마시고 샤워를 하는 거야. 이때는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않는 게 중요해. 샤워할 때 드는 생각은 보통 나쁜 거니까."

"저도 그런데. 그래서 전 노래 틀어놔요."

우진이 평소에 무슨 노래를 들을지 궁금했다. 어쩌면 나도 내일부터 노래를 들으면서 샤워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씻고 나서 제일 편한 옷 꺼내 입고 나면, 그러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지도 어플을 켜고 서울 곳곳을 뒤져. 그런데 다 지겨운 곳들 뿐이라, 결국엔 항상 가장 지겨운 곳을 가. 거기가 집 앞에서 버스 잡아타면 이십 분이면 가거든."

북한산을 올라가는 길은 국립공원 입구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삼 년 전 선오를 따라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처음 알았다. 장이동은 내가 살던 곳에서 마을버스로 여섯 정류장 거리에 있었다. 선오는 어릴 적 장이동에 살았다고 했다. 선오에게 이끌려 그곳에 갔을 때, 나는 가파른 언덕에 다닥다닥 어깨를 붙이고 늘어선 단층짜리 집들을 보았다. 집 옆에는 낡은 승용차 몇 대가 당장이라도 언덕 아래로 굴러내려 갈 것처럼 위태롭게 주차되어 있었다. 택시 기사에게 올라가 달라고 하면 고개를 가로저을 만큼 좁고 가파른 도로였다. 분명 그 언덕은 한때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산 중턱이었을 텐데, 사람들이 나무만 깎아내고 집을 지은 것 같았다. 열 명 정도만 겨우 탈 수 있는 초록색 마을버스는 장이동 마을 중턱에 사람들을 내려주고는 돌아갔다. 나는 앞서 걷는 선오의 세 발자국 뒤에서 조용히 언덕을 따라 올라가다가, 선오가 어릴 적 그곳에서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을지 머릿속으로 천천히 그려봤다. 어쩌면 내가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그의 어떤 부분이 이 동네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오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남자친구였다.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은 친한 지인들 혹은 가족들을 서로가 고깝게 여긴다는 것도 닮았다. 선오는 친구가 한 손에 꼽을 만큼 적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의 친구들은 뭐랄까... 그가 인생을 살아오며 운 좋게 밟지 않은 최악의 선택지들을 성실히 밟아 나간 결과물 같았다. 그렇다고 선오까지 밉진 않았다. 나 또한 내 부모가 밟아 왔던 불화와 폭력의 결과물을 따라 밟지 않으려고 하루하루 노력했기 때문에. 어쨌든 용케 밟지 않은 것이니까. 선오도.

선오 또한 내 부모를 좋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 이유는 매번 달랐다. 나는 그 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는 선오가 나와 그들을 자꾸 화해시키려고 애쓴다는 데에 있었다. 선오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숨기면서까지 내 부모와 함께 만나는 자리를 자주 만드려고 했다. 선오는 그런 자리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 또한 그러했기 때문에 이러한 모임은 번번이 역효과가 났다. 선오와 나의 부모는 만날 때마다 서로를 더욱 싫어하게 됐다. 나는 선오를 보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나를 통해 채우려 한다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꿈꾸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못났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선오의 아빠가 사실은 베트남에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기 전이었다. 장이동 단칸방에서 그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던 그의 혈육은 선오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본인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선오가 베트남에서 실종된 이후에야 그에게 느꼈던 공백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럼 그렇게 동굴에 들어가서 두세 시간 동안 시간만 보내다 오는 거예요?"

"그냥 동굴 입구에 가만히 앉아 있지. 의자 삼기 좋은 바위가 입구께에 있거든. 사실 동굴이랄 것도 없이 그 안쪽은 두세 평 밖에 안돼. 벽에 움푹 파인 구멍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다. 하여튼 거기 앉아 있으면, 동굴 입구를 액자 삼아 계곡 건너편 풍경이 보여. 계곡물은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졸졸졸 흐르는 소리를 내고. 새소리도 들리고. 그 근처엔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아서, 그냥 그러고 앉아 있는 거야."

우진에게 동굴 얘기를 할 때 빼놓은 이야기가 있다. 항상 돗자리를 들고 갔다는 것. 선오와 그 안에 은박지 같은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하염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 만약 집을 구할 수 있다면, 우리가 마땅히 가질 수 있는 땅의 면적은 이 정도뿐인 것 같았는데 정말 충분해 보였다는 것. 선오가 사라진 이후에는 나는 돗자리를 들고 가지 않았다. 언젠가 둘이 있던 곳은 절대 혼자서 가득 채울 수는 없다는 걸, 해보지 않아도 막연히 알 수 있었다. 나는 혼자 입구에 앉아 그 공간을 등지고 앉았다.

내가 동굴 이야기를 해준 이후에 우진은 날 더 가깝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남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는 속마음을 털어놨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즈음부터 나는 우진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한 갖가지 멍청한 짓들을 혼자서 이리저리 벌이고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를 몰래 따라 본다든지,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위스키 바에 성지순례하듯 들러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우진의 존재는 선오가 가져온 공백을 채우는 데에 확실한 도움이 됐다. 우진이 단둘이 영화를 보자고 했을 땐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가 그의 여자친구와 지켜야 할 적절한 도덕적 선은 나까지 신경 쓸 문제는 아닐 것 같았다. 난 우진과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우진과 다시 만난 지 삼 개월이 흘렀을 무렵, 그러니까 우진이 나와 함께 동굴을 가자고 했을 무렵에 나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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