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
이 캐럴을 배웠을 때 나는 산타 할아버지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파서 울 수도 있고 억울해서 울 수도 있고 슬퍼서 울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는 건 나쁜 일이 아닌데 아이가 운다고 선물을 안 준다니, 그런 게 산타 할아버지라면 나는 산타 할아버지가 좋은 것 같지 않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내 친구는, 지금 그 말도 산타 할아버지가 듣고 있다고, 다 알고, 다 보고 계신다고, 자기는 울지 않는다고, 산타 할아버지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어쩐지 치사한 기분이 들었다. 난 그 애가 우는 걸 열 번도 넘게 봤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울면 안 된다는 건 믿지 않았지만, 친구가 울었다고 이르는 건 쩨쩨하고 비겁한 것 같았다.
만일 어떤 아이가 나를 때렸다면, 너무 아프고 억울해서 내가 엉엉 울었다면, 그래서 내가 울었다는 이유로 선물을 받지 못했다면, 이건 너무 이상한 거 아닌가?
그런 게 산타라면 나는 산타를 좋아할 수 없잖아.
그런 생각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았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친구들은 착한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했고, 놀다가 넘어져서 무릎과 손바닥이 까져 피가 철철 나도 울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물론 그런 마음은 나도 이해했고 나 역시 더 착한 일을 하려고 부지런히 동네를 돌아다녔다.
내가 찝찝했던 건 어른들의 태도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른들은 산타 할아버지를 넘치도록 이용했다. 심부름을 시킬 때도 산타, 티비 채널을 바꿀 때도 산타, 내가 만든 종이인형을 엄마가 버렸을 때도 산타, 하지도 않은 일로 혼이 나서 억울해서 울 때도 산타… 그러다가 산타를 말할 때 어른들의 표정에 들어있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알아챘다. 재미있다는 듯 눈빛을 주고받으며 맞장구를 치는 어른들.
역시 산타 할아버지는 운다고 선물을 안 주실 분이 아니었어, 내 생각이 맞았어, 어른들이 자기들 편하려고 지어낸 노래였어, 생각했다.
나는 울고 싶을 때는 울었지만, 남들 앞에서 우는 게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에 몰래 이불속에서, 혹은 고야나무 아래, 우리 강아지집 앞에서 울었다, 리코더를 불면서 울기도 했다.
그런 것보다도 우리 마을이 한국이라는 나라이고, 그중에서도 강원도, 그중에서도 너무 깊은 산골짜기 마을이었기 때문에 종종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마을에 오시는 걸 깜빡 잊는다는 게 걱정이었다.
아무 기대도 없던 어느 크리스마스 아침에 머리맡에 있던 연분홍색 털장화를 기억한다. 장화 옆에는 오로라 공주님 그림이 그려있었고 깔창에는 미끄럼방지 체인이 있었다. 그 분홍 털장화를 신고 꽁꽁 언 개울로 달려갔다. 신발 밑창에 달린 체인을 뒤집어 열고 미끄러운 얼음을 당당하게 걸었다. (내 동생은 파란색 손오공이 그려진 장화를 받았다.)
역시 울어도 선물을 주시잖아, 나는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좋아, 그런데 산타는 왜 다 할아버지일까? 산타 할머니는 없는 건가?
다시 의문을 가지던 그 크리스마스, 새 장화의 냄새, 오로라 공주님 그림이 다른 그림으로 바뀌던 순간에 그 장화가 더 좋아지던 일, 얼음에서 괜히 체인을 열었다 닫았다 하던 일, 단단하고 차가운 체인의 감촉, 난 하나도 안 미끄럽다고, 발도 안 시리다고 큰 소리로 자랑하던 마음, 눈과 모래가 박혀 체인이 뻑뻑해져 닫을 때 시리던 손가락, 그래도 자랑스러운 내 털장화... 이런 것들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런데 내가, 산타 할아버지가 장화를 주셨어!! 하고 흥분해서 말하던 그 크리스마스 아침에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떤 표정을 지었던가?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