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뒷다리는

by 고야씨

개구리를 좋아한다.

귀엽고 정감이 간다.

개구리 캐릭터도 좋아한다.

개구리 왕눈이, 커밋, 페페부터

그림책에 나오는,

개구리와 두꺼비, 입이 큰 개구리, 이상한 화요일의 개구리까지 모두.


개구리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어릴 때 개구리 뒷다리를 맛있게 먹곤 했다.

삼촌을 따라 개구리 잡으러 개울에 간 적도 있다.

삼촌이 신호를 주면, 징검다리 위에서 두 발에 무게를 이리저리 옮겨 돌을 흔들었다.

물이 찰박찰박 흔들렸다.


삼촌은 밤낚시, 개구리 잡기, 버섯 따기 모두 특별히 잘했다.

어쩌다 한 번씩 동네 아이 한두 명을 밤낚시에 데려가곤 했는데

다녀온 애들마다 신이 나서 자랑을 했다.

남은 애들은 언제 자기 차례가 올까 내심 기대하며 부러워했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삼촌은 우리 삼촌이면서도 나나 내 동생을 더 많이 데려가진 않았다.

물론 먹고 싶은 걸 사러 갈 때 삼촌의 오토바이에 타는 부러움은 일상처럼 누렸지만

그건 그거고 밤낚시는 밤낚시였는데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삼촌의 밤낚시에 내 차례가 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깊고 조용한 개울가에 도착했다.

물가에 자란 잔 버드나뭇가지로 갔다.

잎에 하얀 거품이 동그랗게 달려있었다.

그 거품 안에 미끼로 쓸 벌레가 들어있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이런 걸 다 잡을 수 있어야 밤낚시를 할 수 있다고,

지렁이가 든 아몬드캔 뚜껑을 열며 삼촌이 말했다.

거품을 만지면 그 속에 든 내가 모를 무언가가, 손가락을 물거나 쏠 것 같은 상상에

나는 지렁이만 하나씩 잡아서 삼촌에게 주었다.

무엇보다 밤낚시는 조용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기에 징그러움을 꾹 참고 지렁이를 잡았다.

지렁이를 잡을 수 있다는 게 스스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다음 날부터 검고 축축한 흙을 보면 땅을 파서 지렁이를 찾아 통에 담았다 다시 살려주곤 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내 밤낚시 차례를 기다렸지만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삼촌은 낚시도, 개구리 잡기도, 버섯이나 나물 찾기도 정말 잘했다.

동네 어른들은 개구리가 먹고 싶을 때 삼촌을 찾아오곤 했다.

삼촌이 개구리를 잡아서 보관하던 법, 할아버지가 개구리를 굽는 법을 나는 제법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삼촌은 집 옆, 밭 가장자리에 구덩이를 깊게 파서 개구리를 넣었다.

그 위에 비닐과 천을 덮어두면 개구리들이 구덩이 안에서 잘 살아있었다.

이웃들이 개구리가 먹고 싶다고 삼촌에게 오면 삼촌은 필요한 만큼 거저 주었다.

(도시에 사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부탁했다며 사가는 사람도 있었다.)


개구리는 보통 할아버지가 구웠다.

나는 맏이라 심부름을 많이 했는데, 구운 개구리를 집으로 가지고 오는 일도 심부름 중 하나였다.



할아버지가 개구리를 잡아 부엌 바닥에 패대기친다.

그래야 개구리가 이리저리 날뛰지 못한다.

개구리를 양은대야에 담는다.

가마솥에서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퍼서 기절한 개구리 위로 붓는다.

개구리가 혀를 물고 뻗는다.

죽은 개구리를 찬물에 헹구고 석쇠에 가지런히 눕힌다.

굵은소금을 뿌려 아궁이에 넣고 굽는다.

맛있게 구워진 개구리를 할아버지가 신문지에 싸서 주시면

나는 길 건너 대각선에 있는 우리 집으로 뛰어간다.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난다.

바로 대각선이 우리 집인데도 할아버지는 내가 들어갈 때까지 내 뒤를 봐주신다.


엄마가 신문지를 펼쳐 개구리를 나눈다.

나랑 내 동생은 개구리 뒷다리만 먹으니까 뒷다리만 떼서 우리 쪽으로.




개구리 별미는 1994년쯤부터 끝이 났다.

야생동물 보호법이 생기고 개구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뉴스가 나왔었다.

도시 사람들에겐 별 거 아니었을 그 뉴스가 우리 마을에선 핫이슈였다.

지금부터 먹으면 안 되냐, 언제부터 시작이냐, 마을 회의도 열렸다.

'개구리가 사라질 수 있다니 이제부턴 잡지 맙시다' 하는 결론과 함께,

다만, 우리 삼촌네 구덩이에 남아있는 개구리까지는 먹기로 하자고.


며칠 우리 삼촌은, 줄 수 있는 개구리가 있는지 물어보는 전화로 바빴다.

우리 삼촌은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도, 친분으로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었다.

이웃 가족수를 생각해서 이리저리 셈을 해서 나누어주었다.

삼촌 성격을 아는 우리 엄마는 차마 누나라고 더 달라고도 못 했다.

(외삼촌과 외할아버지를 삼촌과 할아버지로 불렀다.)


이제 개구리 뒷다리 별미는 영영 없는 거라 생각하니 그 고소하게 구워진 맛이 더 생각났다.

며칠이 지난밤, 삼촌이 신문지를 품에 안고 우리 집에 왔다.

우리 줄 건 따로 더 남겨 놨었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특히나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밤낚시를 더 많이 간 건 아니었지만, 밤낚시를 간 아이들 중에 여자아이는 내가 유일했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면 사랑이었을 투박하고 허름한 것들...


스물몇 살 때 서울의 세련된 식당에서, 훈연해 구운 닭고기를 먹고 개구리 뒷다리와 비슷한 맛을 느낀 적이 있다.

물론 아궁이 불에 구운 개구리 뒷다리 맛을 따라오지는 못했지만.


아, 지금 누가 개구리를 먹으라고 주면 나는 못 먹을 것 같다.

개구리를 다른 의미로 좋아하고 있다.

개구리가 귀엽게 보이고 정감이 가는 데 내 추억이 영향을 준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개구리는 어딘가 웃긴 느낌이 들고 그런 만큼 더 귀엽다.

눈동자 모양이 특히 그렇고 쭉 펴면 사람 같이 보이는 그 긴 다리가 그렇다.

뒷다리는 어릴 때도 귀엽게 느끼곤 했는데

바싹 구워진 뒷다리를 쏙 빼먹으면 남는, 작고 귀엽고 웃긴 뼈가 그랬다.

제일 맛있는 그 작은 뒷다리가 늘 나랑 내 동생 거,

그러니까 사랑이라면 사랑이었을 투박하고 허름한 것들...


내 아이는 어릴 때 근처 숲에서 개구리를 잡고 놀았다.

조심조심 개구리를 잡아 통에 넣고, 사진을 찍고 다시 살려주었다.

폴짝폴짝 개구리 흉내를 내며 놀다가 개구리 그림도 그렸다.

나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이와 함께 숲에 머물렀는데

이럴 땐 내가 아이만의 삼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원하면 언제든 밤낚시를 가주는 다른 버전의 삼촌이랄까.


개구리에게 받은 게 참 많다.

개구리 피규어 뽑기를 보면 동전을 넣고 돌리게 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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