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인연, 뜻밖의 질문

하자 많은 집에서 얻은 뜻밖의 깨달음

by 햇살아래

이사 온 집은 하자가 많다. 물이 나오지 않거나 보일러가 고장 나 교체해야 했고 신축이 아니라 구축이라 깔끔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곳을 고른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추억 때문이다. 객지생활을 시작하고 기숙사를 나와 처음으로 독립한 동네여서 그런지, 골목 곳곳을 알고 있다는 점과 살았던 옛 동네라 편안함이 들었다.


둘째는 주차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늦은 퇴근이 일상이었고 주차문제는 늘 골칫거리였다. 적당한 주차 자리를 찾지 못해서 빙빙 돌다가 걸어서 10분이 나 떨어진 거리에 주차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늦게 와도 주차 자리가 많다는 점은 강한 이점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편의성이 다른 조건보다 중요해 결국 계약을 했지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구축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나 후회하기도 했다.


며칠 전, 집 주인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다. 바로 밑층에 물이 샌다며 내 방 바닥을 뜯어서 점검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가뜩이나 하자가 많은 집인데 이번엔 방바닥을 뜯어야 한다니... 밑 층은 사실 내가 고를 뻔했던 방이라 마지막에 지금의 방을 선택한 게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나마 1년 계약을 한 것이 참 다행이었다. 1년만 지나 봐라, 반드시 떠나고 말리라!


그런데 명절 연휴의 시작인 토요일 아침, 집 주인 아저씨가 아침 일찍부터 미안하다며 샤인 머스캣을 사 들고 왔다. 그리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는 내가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는 갑자기 밥을 먹자며 나를 이끌었다. 계약한 집은 내가 계약할 당시부터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었는데 아저씨는 건축 기술자, 본인 말로는 노가다 꾼이었다. 때문에 혼자서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었다. 덕분에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한 수리가 끝나지 않았다. 그 탓에 그는 남는 방에서 숙식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나를 이끌었고, 이야기 나누다 얼떨결에 고기를 구우며 그와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는 내가 자신의 아들과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과묵한 성격도 비슷하고, 결혼 적령기가 넘어간 점도 비슷하다고 했다. 자신의 아들은 마흔다섯인데 결혼하라며 구구절절하게 손편지까지 써서 아들에게 보냈다며 편지까지 보여줬다. 그는 아들이 결혼하지 않은 것이 무척 답답하다며 내게도 결혼 이야기를 꺼냈는데 집안 어른도 아닌 타인에게 결혼에 대한 설교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또한 결혼은 최고의 효도란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러더니 말만 하면 자신이 중매까지 서주겠단다.


그 말을 들으니 문득, 작년 창원 출장을 가서 10년 만에 만난 아는 형이 생각났다. 그도 처음부터 끝까지 '결혼하라'는 말만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으니 말이다. 누군들 하고 싶지 않으랴. 나도 가정을 이루고 싶은 소망은 있으나 그게 말처럼 쉬우랴.


그런데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노년이란 무엇일까. 아직은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나이지만, 완전한 은퇴를 이루고 나면 삶의 낙은 무엇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일이 있기에 바쁜 일상 속에 살아가지만, 은퇴를 하고 나면 찾아올 허탈함은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쉬어본 일이 거의 없다. 금요일에 퇴사하고, 다가오는 월요일에 곧장 출근한 적도 있을 만큼, 직장생활의 공백기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잘 알고 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의 무력함과 무기력함 말이다. 나는 신현림 시인의 <나의 싸움>이란 시를 좋아하는데, 삶이 힘겨워질 때면 언제나 이 시를 떠올린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시인의 시처럼 삶이 힘겨워질 때면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란 말을 되뇌곤 한다. 그리곤 일이 없으면 망가질 것을 알기에 버티자고 또 다짐하곤 하니 말이다. 다만, 요즘은 주객이 전도되어 일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돼버리는 걸 경계하려 노력하고 있다. 틀에 박힌 삶에서 변화를 추구하고자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은퇴를 하고 나면 나는 권태와 무료함을 견딜 수 있을까?


그는 술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소주는 빨간 소주가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 파란 소주를 마시면 소주만 많이 먹고 돈만 더 나가니 손해라며 말이다. 그리곤 자신이 가진 다른 건물 세입자들과 형동생하며 자주 술을 마신다고 말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다 문득, 노년의 삶이 떠올랐다.


지금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지만, 만일 내가 노년이 된다면 무척 외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랜 객지생활을 한 탓에 외로움에는 면역이 되었다고 자부하지만, 어쩐지 노년의 삶이 지금과 다를 바 없다면 그 삶은 무척 쓸쓸하고 외롭지 않을까.


그러던 차에 친척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는 나와는 동갑으로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다. 매 명절마다 왕래를 하곤 했는데 녀석도 재작년 결혼을 했고, 이후론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때문에 이번에는 얼굴을 보자며 연락이 왔는데 노년을 떠올리자 역시 자주 만날 수 있는 이들이 있는 고향, 그곳이 좋지 아니한가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지금은 직장을 따라 도시로 왔고, 도심 속에서 살아가지만, 노년의 나를 떠올리자 도심 속 나의 삶이 어쩐지 너무나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진 것이다. 도시 속에서 혼자만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이곳에서도 쌓아온 인맥과 지인들이 있다. 하지만 고향친구와는 결이 다르다. 고향이 주는 아늑함과 친밀함마저 느끼기는 힘들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아무리 외로움에 면역이 되었다 해도 나 또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문득, 나와 관계 맺은 이들이 무척 소중하게 고맙게 느껴졌다. 또한 외로움에 강하단 건 자랑 할 바가 전혀 되지 못한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 부자가 되고 싶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아버지도 은퇴 후 자주 마실에 나가 동네 아저씨들과 어울린다. 그래, 그런 소박함이 노년의 행복 아닐까. 아름다운 노년이 아닐까. 나도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


오래간만에 사람의 정을 느꼈다. 정이 별 건가. 서로 안면을 트고 이야기 나누고, 인사하는 소박함. 안부를 묻고 작은 것 하나 챙겨주는 사소함. 그런 걸 참 오래 잊고 살았다 싶다. 아저씨가 베푼 작은 호의는 뜻밖의 생각과 정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집의 하자도 잊게 할 만큼 말이다.


정은 참 무섭다. 하자 많은 집에 1년만 살면 당장 떠나야지 싶다가도 아저씨와 정을 맺고 나면, 아마도 떠나기가 쉽지 않으리라. 그리 생각하면 사람 사는 데 있어 정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싶다. 내 편이 생긴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를 걱정해 주는 이가 늘어난다는 사실도 좋은 일이다.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오래간만에 정을 느낀다. 좋은 인연은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다. 그런 게 사람 사는 맛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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