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과정이다

행복한 삶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by 햇살아래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행복의 의미를 창안해 낸다. 작은 것이 행복이다 혹은 큰 것이 행복이다. 고독이 행복이다 아니다, 행복은 있다 없다. 왜 늘 행복에 대해 자의식이나 예민함을 동원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행복이 자기의 부모나 내무반장이나 애인도 아닌데 왜 그렇게 떠받들고 쩔쩔매는지 알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러는 동안 행복에 관계없이 행복에 관한 의미 규정만 많아진다. 그것이 ‘가치’라는 규칙을 만드는 사이클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행복이란 무엇일까?

언젠가 한 독서 모임에서 ‘당신은 어떤 때 가장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행복한 삶이 최대의 관심사라며 모임에 참여한 이들 하나하나에게 행복에 대해 물었다. 질문을 받고 조금 당황스러워졌는데 행복이란 관념이 갑자기 무척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행복의 의미라면 모르겠지만 어떤 때 가장 행복하냐니?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즐거움을 느끼고, 노래를 따라 부를 때, 한적한 곳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때 벅차오르지만, 이것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내 차례가 돌아올수록 뭐라고 말해야 할지 당혹감을 느꼈다. 결국 나는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거나, 달릴 때,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의 대답도 비슷했다. 다만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때’라는 대답이 많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행복에 대한 의문이 많다. 그 사이 사회는 더욱 행복을 좇는 분위기로 변했다.


2021년 퓨리서치센터는 한국을 포함한 17개국을 대상으로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한국인이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꼽은 것은 '물질적 안녕'이었다. 17개국 중 13개국이 '가족'을 1순위로 선택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 결과가 발표되자, 한국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자조 섞인 비판이 나왔다.


그렇지만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행복의 1순위는 물질적 안녕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삶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때 ‘욜로’, ‘소확행’이란 말이 유행했지만, 요즘은 예전만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욜로와 소확행은 일종의 현실 도피처럼 여겨지는 성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현재를 위해 소비하는 것은 마치 방탕한 배짱이의 삶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19세기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현대사회가 불행한 이유를 근면 성실과 노동의 가치가 지나치게 강조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게으름은 부정적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과도한 노동 속에서는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조차 없어진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행복’을 좇다 보면, 결국 행복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으로 남을 뿐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성공한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을 동경하면서도, 그들과 같아지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을 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단순히 성공한 사람들 같은 여유로운 삶을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면 행복은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몇 달 전, 가자지구 폭격으로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가 뉴스를 탔다. 그는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 전쟁의 위협이 없는 안전한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러 간 사이 폭격이 벌어졌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가족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 뉴스를 보며 정말로 ‘신은 존재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사건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길거리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역시 행복한 삶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커다란 사고를 목격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장거리 운전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안도감을 느낀다. 요즘 어머니는 통화를 할 때마다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신다.


“우리 나이는 몸이 재산이다. 안 아픈 게 복이다. 아프면 모든 게 끝난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아프면 아무리 많은 돈이 있더라도 무슨 소용일까?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엄청난 부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병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은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건강이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정작 자신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행복한 삶을 바라면서도, 행복과 정반대 되는 생활을 반복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것이다. 누군가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아침 5분이 주는 행복이라 말할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이불이 주는 안락함과 포근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알람이 울린 뒤 5분만 더 자자며 다음 알람을 기다릴 때, 그 5분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5분은 참으로 신비롭다. 어떤 때는 5분이 10분처럼 길게 느껴진다. 또 어떤 때는 고작 1분도 되지 않을 만큼 짧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5분간 눈을 감고 있노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단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곧 출근을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킬 때 행복감은 손쉽게 사라진다.


이처럼 행복은 아주 소소하고 사소한 것일지 모른다. 러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여유와 게으름이라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현재를 즐기는 행위다. 이러한 놀이는 아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른에게도 아무런 목적 없이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쉼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쓰지만, 어른의 쉼은 아이와는 사뭇 다르다. 어른의 쉼은 다시 일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러니 행복을 찾고 싶다면 자신을 돌보는 일이 1순위 일 것이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행복을 포착하는 일이다.


하지만 행복을 무조건 좇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행복은 순간의 감정일 뿐, 행복한 삶이란 개념은 실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순간의 즐거운 감정들이 모여 행복이란 단어가 만들어지는 것이지, 행복이라는 것이 먼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행복에 대한 강박이 클수록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쉽다.


나는 행복한 삶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즐거운 삶을 원한다. 즐거움은 순간의 감정이지만, 즐거움이 쌓일 때 행복은 다가온다. 나는 일상에서 기대할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도 커진다고 믿는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날들을 만들고 싶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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