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by 햇살아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이란 만화 제목을 좋아한다. 만화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봤던 이 만화의 제목은 오랫동안 내게 각인되어 있다. 이 제목이 강렬하게 남은 이유는 절로 '기대'와 '희망'이란 단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기대'라고 답 할 것이다. 기대가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다. 우리가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건 기대의 힘 덕분이라고 믿는다.


언젠가 아무런 기대도 느낄 수 없이 살았던 때가 있다. 내일 죽어도 미련이 없을 것만 같던, 암흑 같은 나날이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은 없었다. 일상은 마치 지옥 같았다. 그런 나날이 지속될수록 정신적으로도 지쳐갔다. 그래서인지 가끔 뉴스를 통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이들을 바라볼 때면,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면, 오늘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그 기분 말이다.


사실 기대는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만일 복권을 샀다면 복권 당첨을 기다리는 기대, 여행 계획을 세웠다면 다가올 날짜를 기다리는 그런 소소함 들이다. 나는 이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면 친구나 지인을 만날 기대,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할 기대, 연인이 있다면 연인을 만날 기대 같은 것들은 너무나 사소해서 소중한지 깨닫지 못하지만, 이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사소한 기대들이야말로 우리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나는 객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낯선 곳에서의 삶은 좁은 인연을 만들었고, 자연스레 기대할 일도 줄어들었다. 약속이 생기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지인이나 친구를 만나는 일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자연스레 고립된 환경이 만들어진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는 좀처럼 기대할 일이 없다. 혼자 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일상은 금세 무미건조해지고 삶은 쉽게 무거워진다.


혼자라는 감정은 아무리 익숙해지려 해도 익숙해질 수 없다. 그것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기 때문이다. 견디는 것은 늘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나는 바깥세상을 통해 기대와 즐거움 찾으려 애썼다.


낯선 도시 또는 낯선 환경과 마주하는 일을 좋아한다. 예상치 못한 새로움과 우연을 발견할 때면 삶이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낯섦이 주는 새로움은 강렬하다. 길 하나, 풍경 하나, 날씨나 바람조차 새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 계획을 세우기보단 무작정 점찍어 둔 곳을 찾아가는 일을 즐기곤 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지 목적지 하나만을 찾아가는 그런 여행 말이다.


인터넷으로 본 사진과는 달라 실망할 수도 있다. 막상 찾아갔더니 장소가 사라지거나, 주차할 곳이 없어 되돌아와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뜻밖의 감동을 얻을 수도 있다. 느슨함이 주는 뜻밖의 일들이다.


다만, 그것들도 사람이 주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다.


결국 기대를 가장 크게 만드는 건 사람이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 나누고,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기대는 더 깊어진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날들을 기대해보곤 했다. 터무니없는 기대지만, 기다림이 주는 설렘 말이다.


나는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속에서 여우가 말한 길들인다는 의미를 좋아한다.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여우는 길들여지면 상대방이 단순한 누군가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특별한 존재를 기다리는 일은 즐겁다. 기쁨이 넘친다. 지루함도 남지 않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만날 날을 기다릴 때 생의 즐거움도 깊어진다. 그가 내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은 특별하다. 그의 세계가 내 일부가 되는 것 말이다.


결국 가장 즐거운 기대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에 있다.


기대를 품다 보면 절로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나를 잊지 않았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소중 한 일인가. 만남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으랴. 그것만큼 특별한 기대가 또 있으랴.


나는 여전히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을 꿈꾼다. 그리고 그 기대가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



그러나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햇빛을 받은 듯 환해질 거야. 모든 발자국 소리와는 다르게 들릴 발자국 소리를 나는 듣게 될 거야. 다른 발자국 소리는 나를 땅속에 숨게 하지.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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