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마디(삼매)
『요가수트라』
tad evārtha-mātra-nirbhāsaṃ svarūpa-śūnyam iva samādhiḥ
대상(집중의 대상)만이 드러나고, 자아의 성질이 사라진 듯한 상태가 사마디이다.
아쉬탕가 요가의 마지막 8단계 사마디를 쓰기 위해 앉았습니다. 머릿속에 붙잡으면 그 정체를 드러낼까 싶어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읊조렸습니다.
사마디. 삼매. 사마디. 삼매.
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대단한 황홀경을 느끼고 초월한 존재가 되는 걸까 기대하며 그 정체를 찾아 헤맸습니다. 1단계에서 7단계까지 잘 왔으니 8단계가 기적처럼 나타날 거라 생각했으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요가비전> 책표지에 한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요가! 그 불멸을 향한 인간 완성의 길.
불멸. 이 단어에서 괴리감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고 결국은 사라지게 되는데 불멸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생각에 빠져있는데 달리는 폼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뭐 하는 거야?”
“플래시처럼 달리고 싶어. 빛보다 빠르게.”
“왜?”
“번쩍 사라졌다가 다시 올 거야.”
순식간에 사라졌다 돌아오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순간 아이의 현재를 늘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빛의 잔상을 보며 과거를 쫓느라 숨이 가쁘기만 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닿지 못한 지금의 순간에 머무는 것을 불멸이라 하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떻게 착각에서 벗어나 실재(實在)를 직시할 수 있느냐가 요가의 과제이다. (요가비전 p.40)
사마디는 초월한 존재가 되는 멋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겹겹이 쌓인 허상을 걷어내고 나타나는 찰나의 고요인지도 모릅니다.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던 고요의 순간이 내게도 있었을까. 스쳐갔던 그 느낌을 찾아 머릿속을 휘저어보았습니다.
첫 째가 아기였을 때 젖이 나오지 않아 유축을 하면서 젖소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유두가 두꺼워지고 갈라질 때까지 유축을 해도 아이에게 줄 양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젖이 뭐라고 나라는 존재가 희미하게 느껴져 애꿎은 가슴만 쥐어짜며 화풀이를 했습니다. 아이에게 자장가로 섬집아기를 불러주면서 울컥 올라오는 파도 같은 감정에 눈물이 넘쳐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혼란스러워 아이 옆에 앉아 숨을 가늘게 후- 하고 끝까지 뱉어냈습니다. 폐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그 빈 공간에 서서히 숨을 채우고 비우는 동안 눈물의 바다가 끊임없이 역류해 가슴을 쳤습니다. 호흡을 반복하는 동안 파도는 점점 잦아들었고 울렁이던 감정도 잔잔해졌습니다.
어느 순간 내 몸이 안개처럼 느껴지더니 그 미세한 공기 알갱이마저 흩어져 존재하지만 잡히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퍼져나가는 잔잔한 물결을 느끼며 스르륵 눈을 뜨자 명확한 행동지시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요가테라피를 배우자."
선명한 만큼 행동은 신속했고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사마디는 이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창문을 열었을 때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과 마주하는 것이구나 싶습니다.
단지 그것입니다.
요가원을 오픈하기 전에 요가원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습니다. 요가책을 찾아보며 거창한 이름들을 나열하며 있어보이는 이름 몇 개를 뽑아 신랑에게 어떤게 나은지 물어보았습니다.
"별론데! 차라리 요가스미스 어때? 요가 1번지는 어때?"
신랑은 장난스러운 이름을 툭 던졌습니다.
"스미스는 누구고, 1번지는 어디야? 스미스가 요가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요가를 가르치는 건 스미스가 아니고 바로 '나'지.
결국은 요가를 하는 나에 대한 생각으로 뻗쳐나갔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 뱃속의 나를 상상해 보았고, 내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원(靜苑). 고요한 동산'
요가는 불필요한 것을 비워내고 고요한 평온을 얻는 것이지. 요가의 고요한 동산.
'요가정원'
결국 나를 담는 이름이면서 사람들에게 고요함을 줄 수 있는 요가정원.
이 이름을 떠올렸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한 번씩 하늘에서 내리꽂은 듯, 종이 울리듯, 선명히 다가오는 메시지가 있었을 겁니다.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내게 사마디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항상 선명한 답이 내려진다면 참 좋겠습니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련을 합니다. 요가 철학이라는 어려운 것을 가져와서 지혜를 찾아 헤맵니다.
찾는 만큼 행하는 만큼 우리는 고요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사마디는 어딘가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지금에 머무는 일이었습니다.
마음을 가리는 막이 거둬지고 마침내 선명한 고요함을 만날 수 있기를.
진짜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기를.
아쉬탕가 요가 철학 8단계는 사마디(삼매三昧)에 가닿기 위한 하나의 길입니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도록 외부에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소중히 여겨 내면을 닦아내고,
몸이라는 집을 단단히 여며,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숨을 맘껏 쉬고,
한 걸음 떨어져, 집중하고, 고요함에 머물러, 마침내 모든 것이 비워지며 새로운 점을 찍습니다.
이렇게 찍어진 점이 이어져 삶을 그려냅니다.
영혼의 노래(songs of the Soul)
나는 자아도 이성도 아니며, 마음도 생각도 아니나니,
나를 들을 수도, 말속에서 찾을 수도, 냄새로도 눈으로도 잡지 못하리.
빛 속에서도 바람 속에서도 나를 찾을 수 없으리, 땅과 하늘 안에서도 나를 찾지 못하리라.
의식과 기쁨의 화신, 나는 그지없는 행복의 더없는 기쁨이어라.
...
중략
- 요가 디피카 p. 67
이로써 아쉬탕가철학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1단계에서 8단계까지의 철학을 기억해주세요. 습관처럼, 몸과 마음에 요가철학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이전에 썼던 일곱 개의 차크라를 수정하여 올릴 예정입니다.
차크라는 에너지의 통로가 만나는 지점이에요.
낯설지만 낯설지 않게 차크라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차크라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