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문 - 스와디스타나 차크라(창조의 에너지)
천진난만한 꼬마야, 너에게 몸을 맡기면 자유로운 춤을 출수 있니.
기억의 창고 어딘가, 철퍼덕 다리를 벌리고 앉아 놀이를 하던 천진난만한 꼬마를 데려오고 싶었습니다. 얼어버린 말의 결정체를 녹이고, 심장을 조이는 사방의 벽을 걷어낼 방법을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가로세로 30cm 되는 가방에 옷가지를 넣어 "엄마 저 취직했어요. 일단 친구집에 있을게요" 하며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아기자기하게 예쁘게 꾸며놓은 친구의 자취방에서 일주일 신세를 졌습니다.
활기 넘치는 친구의 친구들이 모이는 자취방에서 활기차지 못한 제가 작아 보여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극단이 모여있는 대학로를 돌며 고시원을 알아보았습니다. 저렴하고 창문이 있는 방! 이것이 유일한 조건이었습니다. 최소한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는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대학로 4번 출구에서 내려 골목골목을 다니며 고시원을 죄다 훑었습니다.
번화가가 지난 골목 끝에 '명륜고시원' 간판이 걸려있는 허름한 건물 2층에 다행히 창문 달린 방이 하나 남아있었습니다. 한 달 치 고시원비 13만 원을 내고 친구에게 작별을 구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신세를 진다는 건 고마움에 심장이 눌리는 것만 같아서 도저히 계속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서울 올 때 가지고 왔던 작은 가방을 들고 고시원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팔다리를 겨우 펴고 누워, 창밖의 키 큰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자유롭고 홀가분했습니다.
잠잘 곳을 마련하고 오래전부터 눈여겨본 극단에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주황색 매트 바닥에 파란 천으로 벽을 둘러놓은 공간이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하고 독백을 시연한 뒤 극단 단원이 되었습니다. 연극은 평범했던 내게 특별함과 자유를 주었습니다. 꿈에서 깨지 않은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고,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양팔을 있는 힘껏 펼치고 손끝에 에너지를 실어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습니다. 하늘 위로 비상하듯 뛰어올라 새처럼 날아올랐습니다. 무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새로운 삶을 그려냈습니다.
그러나 1년, 2년, 3년… 시간이 흐르면서, 꿈은 어느새 올가미가 되어 심장에 엉겨 붙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상과 터무니없는 허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타인이 만들어 놓은 틀에 저를 밀어 넣었습니다. 생각에 갇혀 미약한 호흡만이 머물렀고, 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숨어들었습니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자신이 어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사는 주춤했고 뻗어낸 손가락은 굳어 쥐가 나곤 했습니다. 천진난만한 발걸음과 손짓만으로 그저 좋았던 시간은 어느새 사라지고 숨죽인 자신만 남아있었습니다.
대표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릇에 배우들을 찍어내고 싶어 했지만 배우들은 하나 둘 떠나고, 저도 서서히 지쳐갔습니다. 감정과 감각을 다루는 예술은 아이같기도 노인 같기도 합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대표는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저를 밀도 있는 노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감정을 끝으로 밀어내면서 말이죠.
"당신은 화의 힘이 생겨야 움직이는 것 같아요."
그렇게 평가하며 대표는 고의적으로 저를 비난하고 질책하여 화의 힘을 만들어냈습니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갇혀있는 자신을 깨고 나와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절망에 갇혀 숨 쉬기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결국 상처를 대충 봉합해 오랜 시간을 도망만 쳤습니다.
단단한 껍질 안에 웅크린, 꿈을 향해 망아지처럼 날뛰었던 아이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넘어서야 할 고비 앞에서 심장을 벌벌 떨며 뒤로 한걸음 두 걸음 물러서는 습성이 있습니다. 아이를 숨겨두고 평온한 척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덧씌우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글쓰기를 만났습니다. 한 문장 써놓고 멍해질 때 배우였던 나를 다시 만납니다. 도망가고 싶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이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마음을 만나면 꿈을 꾸며 창조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안쓰러워지려 합니다.
예술가가 되고 싶어 꿈꾸는 아이에게 창조성이 있기는 한 걸까 의심도 해봅니다. 재주가 있어서 아이는 존재하는 걸까? 세상에 놀잇감을 찾고 싶은 그저 순수한 마음일 뿐임을 압니다. 그래서 욕심을 걷어내야 아이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늘 도망가는 이유는 쓸데없이 만들어 놓은 스스로 멋지다고 여기는 터무니없는 틀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던 연극무대는 아니지만, 다시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고 싶어 요가 매트를 폈습니다. 작은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작은 요가 매트에서는 요가를 하는 동안 산도 되고, 전사도 되고, 물고기도 되고, 나비도 되고, 고양이도 되고, 여왕도 되는 마법 같은 세상이 펼쳐지니까요.
창의적인 행위는 천진난만한 아이와 지혜로운 노인이 동거를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노니는 아이의 움직임에 방향을 잡아줄 지혜로운 노파가 함께 하는 겁니다.
양쪽 다리를 쭉 펴고 할 수 있는 만큼 벌려서 허리를 곧추 세웠습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앞을 바라본 다음 서서히 상체를 숙여 아기처럼 발을 잡았습니다. 철퍼덕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천진난만하게 놀잇감을 찾는 아이처럼 말입니다. 순간 노란 은행잎 소복이 쌓인 낙엽이불에 앉아 까르르 웃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천진함으로 몸을 열고, 노인이 인내하듯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무언가를 시도해 봐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에 묻혀 잊어버렸던 창조의 에너지가 조금씩 깨어났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시도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싹트기 전, 놀이를 만나 두근 되던 심장의 느낌이 찾아들었습니다. 제 틈새에는 아마도 잊고 있던 것도 잘 보관되어 있었나 봅니다. 과거의 절망과 후회는 앞으로의 여정에 힌트가 되어 새로운 창조를 펼쳐낼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배꼽아래에 모인 에너지가 속삭였습니다.
안전하단다 아이야!
이제 나와서 맘껏 숨을 쉬렴.
웅크린 아이에게 '괜찮다' 속삭였던 에너지는 바로 두 번째 - 스와디스타나 차크라입니다.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는 무엇일까요?
스와디스타나 차크라(Svadhisthana Chakra)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는 ‘자아가 머무는 자리’, ‘나의 감각이 깃드는 곳’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자기 자신’을 뜻하는 Sva와 ‘머무는 자리, 거처’를 의미하는 Adhisthana가 합쳐진 말입니다.
차크라(Chakra)는 바퀴, 회전이라는 의미이고, 몸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순환되는 에너지의 중심입니다.
감각이 깃든다는 것은 흘려보내지 않고, 밀어내지 않고, 잠시 그 자리에 두어본다는 의미입니다. 이 작은 머무름에서 충동은 움직임이 되고, 움직임은 표현으로 이어집니다.
즉,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는 숨어 있던 감각이 밖으로 나와 만져보고, 시도하고, 만들어보게 하는 창조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는 물의 원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은 형태를 고정하지 않고 흐르며,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고, 막히면 고이게 됩니다. 이 차크라의 에너지도 마찬가지로 억누르면 정체되고, 자연스럽게 흐를 때 생기를 띱니다.
<요약>
물의 원소를 품은 에너지이고, 창조성, 즐거움, 감각, 관계, 친밀감의 본능과 연결됩니다.
주황색으로 표현되는 중간 에너지 파장이고
'잘해야 한다'보다 '느껴도 괜찮다'는 허락의 에너지입니다.
당신이 쓰고 있는 창조성은 번뜩이는 재능이 아니라 자기 감각에 머물 수 있는 용기입니다.
삶에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자세를 취해보는 겁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의 어린아이를 찾아 깨워보세요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자유로운 그림을 그려줄 겁니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파비스타 코나아사나(Upavistha Konasana)에 머물러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바닥에 앉아 두 다리를 앞으로 길게 뻗습니다.
숨을 뱉으며 엉덩이를 들썩여 좌골이 바닥에 닿아 있는 감각을 느껴봅니다.
바닥에 손을 짚고 숨을 들이마시며 척추를 길게 늘입니다.
다시 숨을 내쉬며 두 다리를 가능한 만큼 벌려봅니다.
(등이 펴지지 않는다면 다리 각도를 줄이세요.)
손을 등뒤에 놓고 바닥을 짚은 채
가슴을 부드럽게 확장하며 숨을 들이마십니다.
(무릎을 펴기 힘들다면 무릎을 살짝 접고 아래에 쿠션을 두어도 좋습니다.)
더 벌리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머물 수 있는 지점에 머무르면 됩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허리가 아니라 골반에서부터 상체를 천천히 앞으로 가져옵니다.
접힌다는 느낌보다 길어져 흘러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호흡이 원을 그리듯이 고요하게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숨을 마실 때 골반과 아랫배가 확장되고,
숨을 내실 때 앞으로 조금씩 나아갑니다.
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나아가되, 노인처럼 느긋하게 움직여보세요.
숨이 갇히지 않고 몸이 움츠러들지 않는 지점에서 충분히 머물러봅니다.
이 수련은 아이가 즐길 수 있는 상태를 찾아 그 자리에 머무는 연습입니다.
처음에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겠지만,
머물러 있다 보면 몸이 먼저 움직이고 싶어 집니다.
그때까지 나의 호흡에 몸을 맡겨보세요.
주의) 호흡이 막히거나 너무 힘들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무리하지 않도록 합니다.
시간은 그저 흐르고 지나갈 뿐인데, 우리는 지나온 시간 동안 갑옷처럼 단단하게 많은 틀을 몸에 두릅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만든 단단한 방어벽에 안심하며, 깊은 곳에 내 감정과 감각을 밀어 넣고 꺼내지 않습니다.
순수한 나의 어린 감정과 감각을 이제는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두려움에 웅크리지 말고 자유롭게 호흡하며 맘껏 펼쳐내는 겁니다. '그래도 괜찮다'라고 꼬마에게 안심시켜 주세요.
자신의 감각에 머물러 창조적인 에너지와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스와디스타나 차크라와 만나보았습니다.
창의적인 아이의 언어에 귀 기울여 보셨나요?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 물처럼 흘러가고, 불처럼 살아 있습니다. 그러다 공기처럼 가벼워지고, 공간처럼 넓어져, 마침내 빛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삶의 여정의 지도를 펼치고 내가 갈 길의 경로를 알고 간다면 조금 덜 두렵겠지요. 차크라의 에너지가 당신의 '삶의 지도'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감정과 창조의 에너지인 세 번째 차크라 - 마니푸라 차크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의 여정의 지도 - 차크라 7단계>
첫 번째는 물라다라 차크라(뿌리) - ‘나는 여기 존재한다’는 안정의 자리입니다.
두 번째는 스와디스타나 차크라(성골) - 감정과 창조의 흐름이 피어나는 곳입니다
세 번째는 마니푸라 차크라(태양신경총) - 나의 의지와 힘이 깨어나는 중심입니다.
네 번째는 아나하타 차크라(심장) - 사랑의 에너지입니다.
다섯 번째는 비슈다차크라(목) — 진실을 말하고 표현하는 통로입니다.
여섯 번째는 아즈나 차크라(제3의 눈) — 내면의 통찰과 지혜의 눈입니다.
일곱 번째는 사하스라라 차크라(정수리) —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빛의 자리입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세 번째 차크라 - 마니푸라 차크라(태양신경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