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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Oct 15. 2017

쇼펜하우어, <사랑은 없다>

컴플렉스가 많았던 노총각, 세계적인 철학자의 솔직한 이야기

쇼펜하우어의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져들었던 나의 이십대


이십대 초반 쇼펜하우어에 빠져 읽고 또 읽었던 책이다. 극렬한 감정 변화나 심정의 굴곡 없이 세상 다 산 도인처럼 죽음에 초연하고 사랑 별거 아니라는 투의 무미건조함이 마냥 좋았다.


그때 나에게 있어 사랑은 시시하고 무쓸모한 것이었고, 과거의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를 놓치고 사는 것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쇼펜하우어나 구한말의 지식인과 같은 염세주의자의 책을 읽는 것을 으레 자랑스레 여기곤 했었다.


아무리 깊이 공부를 해도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도 헤어지고 나면 남이 되며, 분명 어제까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유행에 이끌리다가도 금새 싫증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것에 열정을 쏟고, 집착을 하고 욕심을 내는 것이 단지 감정소모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체득하였으며, 근거없는 낙관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미 깨닫고 있었던 나에게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꼭 맞춤옷 같이 잘 맞는 옷이었다.


그러나 대게 허무주의, 염세주의 등으로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깊이 들여다 보면, 의외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구석이 있다. 그는 마냥 '인생은 허무하다. 삶은 무의미하다. 희망없이 죽음만 기다려라.'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은 유한하므로, 사사로운 감정에 연연하지 말고 참된 이상, 참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사랑, 행복, 부, 명예, 정치, 고뇌, 절망, 죽음 등 인간의 삶에서 중심이 되는 관심사에 대해 분석하고 있으며, 마지막 장에서는 처세론을 들어 웰빙을 위한 팁을 주기도 한다. 쇼펜하우어가 정성껏 차려 떠먹여주는 팁이니, 아무쪼록 잘 챙겨 먹고 마음을 살 찌우는 기회로 삼으시길 바란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하는 바에 대해 짧게 스포일러를 내비추자면, 바로 사랑과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래의 두 꼭지 정도면, 본식에 앞서 입맛을 돋우어 주는 에피타이저가 될까?

 

사랑, 거의 모든 생명의 탄생의 전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사랑은 인류 종족 유지 본능에 의한 인류에의 사명감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남녀 모두에게 사랑은 안정감을 찾기 위한 도구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연애는 단순한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 한 명의 반경 안에서 시작과 끝을 마무리 할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은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을 이루는 일으로, 두 명 이상의 반경을 지니며 훨씬 넓어진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혼한 사람들 중 몇몇은 부모의 존재로서 기존에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에게 과거보다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전 보다 높은 수준의 학력, 교양, 그리고 경제적 능력 등.


따라서 부모로부터의 자립 시기는 점점 늦어지고 있는데, 사회에서는 여전히 전통적 적령기를 고수함으로써 발생하는 간극이 꽤 넓다. 이는 부모가 될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한다. 부모 품을 떠나 사회인으로서 몇년 그 역할을 수행해 보지도 않은 젊은 커플이 결혼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시행착오는 안 그래도 어려운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 새로운 인류에의 지원 및 보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부모의 역할을 맡는 것은 조금 더 재고해봐야 할 것 같다.


예전처럼 '덮어놓고 낳다보면 어느새 길러져 있다'라는 생각은 확실히 틀리다. 더이상 사랑은 인류의 종족 번식이나 성적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험난한 세상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단 한 명의 사람을 고르는 일이 되었다. 바꿔 말하면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던 옛날의 트렌드에서 벗어나, 사랑이라는 것이 이제는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 만큼이나 복잡한 조건들을 내건 사업이 됐다는 것이다.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결혼, 출산, 육아, 노후 대비 등 모든 단계가 무너져 버린다. 낭만 없는 얘기지만 사랑만으로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죽음, 공수래 공수거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종교나 철학에 의지한다.


세상엔 죽겠다는 사람도 많고, 살겠다는 사람도 많으므로 죽음에 대한 의미도 상대적이다. 고로 개인의 의지에 따라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기도 하며,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는 계속 고뇌하라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찾은 이상적이고도 참된 의미를 찾고,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하라고 등을 떠민다. 그러나 고맙게도 최소한의 이정표는 놓아 주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며, 빈손으로 갔으니 잃을 것도 없다는 것. 두려워 할 존재가 아니라 태어난 사람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이치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며, 부라는 것이 얼마나 무가치한가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죽고나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죽고난 뒤, 더욱 사교활동에 매진했던 어머니를 보면서 여성혐오를 키워온 쇼펜하우어에게는 사랑도 부질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독신이었고, 사람보다 개가 좋다고 주구장창 말해 왔었다.


또한 낙관주의자였던 헤겔에 밀려 대학 강사 자리에서 짤릴 때, 그는 명성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다. 철학과 사상은 시대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 호황일 때는 낙관주의가 각광을 받고, 불황에는 비관주의가 더 인기몰이를 한다. 시대가 우울해지자 쇼펜하우어가 항상 말해왔던 대로, 그의 사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시대만 변했을 뿐, 그의 학식은 그대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인기의 달콤함을 누릴 새도 없이 그는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죽음 뒤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스스로가 증명했듯이 부도 사랑도 우정도 관 속에 같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고독은 필연적이다. 그가 생전에 그나마 가장 높이 평가했던 명예만이 쇼펜하우어가 죽고난 후 그의 사상을 지키고 있다. 


결론, 영원한 것은 없다.


정말 고민해서 산 옷이나 가방이 사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관심이 덜해지거나 유행에 맞지않아 옷장에 쳐박히고 우리는 또 옷이 없다며 구매하기를 반복한다.


열렬한 소망도 시간이 지나면 그 불꽃이 재로 변하고 만다. 성취했다손 치더라도 나중에는 더 큰 욕심으로 성취감을 잊고 또 다시 새로운 것에 열망과 고뇌를 바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나중 지닌 것은 고뇌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고뇌를 거듭하며 얻으려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 있을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고뇌를 시작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고뇌를 통해 이르고자 하는 목표는 우리의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 인간의 의지에 따라 고뇌는, 삶은, 부는, 사랑은 유의미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무의미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철학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곧 삶의 만족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으며, 인간의 인생은 유한하므로 끊임없는 고뇌를 통해 본인의 이상적인 참된 삶을 살라는 것이다.


부의 축적을 목표로 하는 것을 지양하고, 명예나 명성을 위해 살아라. 하지만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인생은 영원한 것이 없고 허무한 것이다.


사랑도 우정도 건강도 돈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또한 절대라는 것도 없다. 그러니 현재를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쇼펜하우어의 '사랑은 없다'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요약편 - 쇼펜하우어 다시 읽기

서론


쇼펜하우어는 오직 자신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철학을 택했다. 독일의 단치히에서 태어난 쇼펜하우어는 부유한 상인이자 폴란드 궁정 고문관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년시절부터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에 체류하며 경험을 쌓았다.


함부르크 사립학교에서 4년간의 학업을 마친 그는, 학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나 아버지의 반대로 사업가로서 견습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극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학문의 길로 돌아온다.


하지만 여류작가인 어머니와의 잦은 불화와 대립관계가 지속되면서, 쇼펜하우어 특유의 여성혐오가 싹을 틔운다. 또한 이 시기에는 대문호 괴테와의 교류로 색채론을 연구하고, 동양학자 F. 마이어로 인해 인도 고전에 눈뜬다.


플라톤과 인도의 베다 철학에 영향을 받은 탓에 세상에 대한 회의와 부정적 시각을 갖게된 쇼펜하우어는 염세 사상에 몰입한다. 이어, 인간의 끊임없는 욕구로 인해 삶의 고통은 필연적이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욕구없는 해탈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러한 상태는 '인간의 의지는 부정되고, 현상 세계는 무로 되돌아가는 불교의 열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덧붙이며.


'사람보다 개를 더 좋아한다'던 그

 

쇼펜하우어의 염세적 철학은 생전에는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베를린 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일때는 헤겔에 밀려 사직까지 했다.


염세주의, 여성혐오, 독신주의, 허무주의


쇼펜하우어를 수식하는 단어는 많으나, 내가 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키워드는 인생론이었다.


특히 이 책은 그의 인생 철학을 바탕으로 한 잠언집으로, 어렵지 않고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실용철학서나 마찬가지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읽고 욕심과 집착으로부터 한 겹 가벼워 질 수 있길 바라며 요약을 시작한다.


 

제 1 장 사랑은 없다


이 장을 통해 쇼펜하우어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육체적 관계의 갈망에 의한 것이라고 못 박고, 인간의 종족유지본능과 성욕, 쾌락에 기반을 둔 에로스적인 감정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번식 욕구에 의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남자에 비해 여자의 순결이 더욱 엄격하게 요구되며, 남녀는 서로가 갖지 못한 특질을 지닌 이성에 매료된다고 했다.


단순한 성적 충동에 의해 감각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이성을 찾아 뛰어난 후대의 자손을 만들어 내려는 의지로 인해 사랑을 감행한다고 했다.


남성은 출산이 가능한 가임기 여성에 끌리므로 젊은 여자에 환장을 하고, 여성은 남성의 체력과 용기에 반한다고 한다. 지성은 모계 유전이므로, 남자가 조금 멍청하다고 해도 큰 해가 안된다.


따라서 이성간의 사랑은 인류에의 사명감이 함축된 형이상학적 목적을 띈 행동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제 2 장 행복이라는 그림자


행복은 각자의 마음으로부터 기인한다. 즉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은 상황에도 받아들이는 개인의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정신 능력이 높을 수록, 고차원적인 행복을 받아 들일 수 있다.


그러나 건강은 객관적으로 입증된 행복이다. 단순히 육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이에 해당된다.


물질적인 부를 축적하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한 사람이 과연 행복한 사람인가? 결론적으로 그의 인생은 피폐해 지고, 자녀들의 감성도 메마를 것이다. 부를 추구하기 보다는 명예나 명성을 따르는 것이 더욱 가치있는 일이다.


 


제 3 장 재산의 조건


에피쿠로스는 인간이 가진 3대 욕구로 먹고 입는 욕구, 성욕, 부와 명예에 대한 욕구를 꼽았다. 인간의 소유욕은 상대적이므로 그 한계를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욕망의 대상은 다양하고, 그 기치는 상대적이나 돈만은 절대적이다. 재산이 있으면 생계를 걱정하며 원치 않는 일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며, 가난이 몸에 지닌 빛(재능)을 가리울 일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부는 천박한 것이며, 재산이 많아 자신의 천직을 아무런 방해 없이 이어나갈 수 있으면 자선을 통해 남을 돕는 것이 가장 가치있게 돈을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제 4 장 명예라는 이름의 독


인간의 명예욕은 제 3자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이 자아가 아닌 타인에게 있으면 불행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인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남의 이목과 남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욕심, 타인 본위의 허영심, 쓸데 없는 자존심을 버리면 행복해 질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국적에 대한, 혹은 민족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의 명성 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느 국민이나 다양한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국적이나 민족 특유의 장점 혹은 단점이랄게 없을 뿐더러, 연약한 인간은 젊음과 명성을 함께 누릴만 큼 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제 5 장 인간은 본래 이기적 존재다


인간은 이해타산적이며, 자기 중심적이다. 모든 개인의 이기주의를 합친 것이 곧 국가이므로, 법과 질서 없이 체제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제 6 장 종교는 신화다


철학, 신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공통된 관심사인 사후 세계에 대한 갈증으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양한 형태의 신을 믿고, 철학을 세워 도덕을 가르친다. 착하게 살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종교나 철학이 착한 사회를 위한 도구인지, 아니면 진짜로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착한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혜택을 주므로 긍정적 기능을 한다고 본다.


 


제 7 장 정치는 야성적으로 하라


전쟁이나 무정부 상태에서 인간은 동물과 진배없다. 따라서, 이러한 야수들을 통제하여 질서있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야성적인 정치를 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통치자로는 강하고, 지혜롭고, 깨끗하고 도덕적인 인물이 되어야 한다. 자격없는 통치자의 임기는 짧을 수록 좋고, 길수록 피해가 커진다.


국가의 목표는 경제성장이나 발전, 진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사는 세상, 즉 인간애가 있는 행복한 문명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수백억이나 백원이나 횡령은 횡령이다. 유토피아는 청렴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통치자에 의해 실현된다. 그런 통치자를 뽑는 것은 전적으로 국민의 의식 수준에 달려있다.


 


제 8 장 고뇌는 인간의 벗


건강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 처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이유, 생존 욕구가 샘솟게 된다.


불행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인간은 고뇌하려고 태어났다. 즐거움은 늘 기대에 못 미치며, 고통은 실제보다 더 괴롭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고, 매일 시간에 쫓기며, 숱하게 실패하고 좌절하고,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뇌하면서 종국에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아다과 하와의 자손들은 씻을 수 없는 원죄를 지니고 태어 났다. 그리하야 삶은 고통이요, 고뇌의 연속인 것이다.


어릴 때는 꿈과 희망에 가득찼던 나 자신이, 생의 후반부에 가서는 강렬한 쾌락보다는 다만 고통과 불행을 피하기만을 바라게 된다. 잘 살기를 바라기는 커녕, 아프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작아지게 되었을까?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기에 청춘도 곧 절망과, 외로움과, 회한에 사로잡힌 노년으로 시든다.


볼테르는 '파리가 거미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 것 처럼, 인간도 고뇌의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고뇌와 불행이 나쁜 것 만은 아니다. 그것을 잘 아는 자만이 제대로 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은, 신경 계통의 발달, 감성과 삼수성, 특수한 선택과 극렬한 심리적 변화를 동반하는 성적 욕구, 문제에 대한 인식 정도의 차이 쯤이 있겠다.


식물이나 동물은 대체로 만족하고 산다. 인간 중에서도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더 행복감을 느끼고 산다. 다시말해 고뇌는 고등동물의 특권이다.


자, 그럼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 보겠다. 당신은 동식물의 삶을 살 것인가? 단지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제 9 장 절망과 허무


행복은 파랑새와 같다. 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용케 찾아낸다 하더라도, 잠시 머물다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식욕, 서욕, 권태가 반복되는 3류 드라마와 같다.


사람들은 막연히 미래를 낙관한다. 하지만 현실을 겪고 나면 절망감과 허무함에 환멸과 비애를 느낀다.


희망에 속고 죽음과 씨름하면서도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는 실로 강하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기꺼이 받아 들여야 할 대상인 것이다.


 


제 10 장 죽음의 행복


태어나기 이전의 나는 '무존재'였다. 즉, 죽음의 상태였다. 태어 났다는 것은 죽음의 전제 조건임과 동시에 이성간 종족 번식 욕구에 따른 생식 행위의 결과다.


원래 없었던 존재였으므로, 우리는 무의미한 존재이며, 죽는다고해서 딱히 잃을 것도 없다. 오히려 죽음은 생존의 조건이다.


헛되고,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삶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참된 삶의 의미도 깨달을 수 있다.


 


제 11 장 처세론


이 장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좋은 책을 두 번 이상 읽어야 하는 이유, 인간이 느끼는 행복, 슬픔, 시기, 질투, 후회, 쾌락, 고통, 기쁨 그리고 거짓, 위선, 욕심, 이기심 등 삶을 이루는 근본적 철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려운 원론이 아니라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들로 이루어 져 있으므로, 꼭 한 번 읽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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