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뒤에 찾아오는 일곱개의 관문
죽음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불길에 휩싸인 고층 빌딩. 그리고 한 아이를 부둥켜 안은 소방대원 한명이 아슬아슬하게 로프를 타고 내려온다. 지상과의 거리는 5미터.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치고는 짧은 편이다.
끝까지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는 소방대원, 김자홍.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불씨가 로프에 옮겨 붙어 타오르기 시작하고, 야속하게도 아이와 김자홍의 생명을 붙잡고 있었던 로프는 삽시간에 툭 끊어져 버리고 만다.
추락하는 두 사람. 바닥에 펼쳐진 에어매트는 무심하게 김자홍을 빗겨 나가고, 그 와중에도 아이를 보호하려 애쓰는 그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 덕분에 결국 아이는 무사히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고, 김자홍은 뿌듯한 미소와 함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데, 주변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인간 김자홍, 차사들과의 어색한 동행을 시작하다
"김. 자. 홍."
또렷히 불리워지는 그 이름. 30여 년간 그 이름으로 살아왔던 한 남자는 자동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 본다. 키큰 남자와 키 작은 소녀. 그들은 아직도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김자홍에게 쓸데 없는 친절함을 베푼다.
예정된 날짜에 정의롭게 잘(?) 죽었다며 칭찬아닌 칭찬을 퍼붓는가 하면, 19년만에 처음으로 "귀인" 망자가 들어왔다며 좋아하기까지 한다. 이 모든게 어색하고 불편한 김자홍은 주위를 둘러 보다가 바닥에 누워있는 자신의 육신을 발견한다. 동료들은 참담한 표정으로 안타까워하고 누군가는 심폐 소생술을 시도하고 있다.
김자홍은 어머니 때문에라도 지금 죽을 수는 없다고 뒷걸음질 치지만,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아득한 저너머, 저승으로 향하는 블랙홀은 순식간에 김자홍을 빨아들여 버리고 만다.
김자홍의 환생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 그들의 동상이몽
대장 강림, 그의 오른 팔 해원맥, 그리고 어리지만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헤로인 덕춘. 자칫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구성이지만, 이래뵈도 47명의 사람들을 환생시킨 능력자들이다.
그러나 지옥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결코 안전하지 않은 지옥길. 아무리 능력좋은 차사들이라지만 저승귀들과의 숨막히는 혈투와 각 관문을 지키는 왕들과의 기싸움까지 손쉽게 견뎌내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갑자기 김자홍은 모든 것이 의문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들이 이토록 자신을 보호해주고, 무시무시한 지옥의 왕들 앞에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까지 자신을 변호해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은 환생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지만, 차사들을 도대체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길래 저렇게 지극 정성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어머니를 향한 애타는 사모곡, 김자홍의 선택
역시 모든 일에 공짜는 없다. 차사들은 지난 1000년 동안 47명을 환생시켰고, 이제 두 명 만 더, 즉 총 49명의 사람들을 환생시키면 그들 역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김자홍의 환생에 대한 결심을 불태우지 못한다. 이때 해원맥은 그의 구미를 당길만한 소식 한 가지를 전달해 준다.
바로 환생을 앞둔 사람은 이승에 남아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꿈에 나타나 못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즉 현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졸지에 혼자가 돼 버린 나이든 어머니를 위해, 김자홍은 환생, 그 까짓거 한 번 해보자고 새로이 다짐한다.
차사들의 마지막 희망, 49번째 귀인
파란만장한 49일간의 지옥 여행. 게다가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로 인하여 대장 강림은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가며 분투한다. 대장 없이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하는 해원맥과 덕춘 역시 고난의 행군을 멈출수 없다.
진짜 지옥에서 맛보든 지옥같은 나날들. 하루 하루 지날 수록 김자홍의 인생 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김자홍으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서 엇갈려 버린 생명들, 모든 생명의 무게는 똑같이 존엄하고 귀중하다. 김자홍이 저지른 죄, 그리고 그것을 벌하려는 자들. 그리고 김자홍을 환생시키려 고군분투하는 차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설전.
과연 김자홍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김자홍의 환생만큼이나 바랐던 차사 본인들의 환생. 이제 그것마저도 머지 않았다. 강림은 염라대왕 앞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환생 앞으로 1보 전진한다.
인간이 지은 죄를 벌하는 자는 누구인가?
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때는 21세기, 달나라도 간다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존재의 여부도 확실히 증명할 수 없는 신을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신은 누구고, 종교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교로 인해 마음의 위안을 찾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보다 신에 대한 축복과 감사를 우선시 하며 착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신을 믿는 다는 것, 그를 모시는 공간에 가서 입 맞추어 기도한다는 것이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은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과연 인간을 벌하는 것은 신일까?아니다. 신은 오직 판단할 뿐이다. 벌은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것이다.
자신이 지은 죄를 사하기 위하여 하는 억지 기도로는 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본인이 지은 죄에 대해 사과를 할 수 있는 용기가 모든 것을 바꾼다. 즉 가해자의 죄를 삭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피해자의 진심을 다한 용서 뿐인 것이다.
과거에 김자홍이 저지른 죄 역시, 신이 아니라 그 당사자인 피해자로부터 삭제되었다.
죄와 벌, 유죄와 무죄 사이를 가르는 양심에 대하여
가해자는 둘, 피해자는 하나다. 바로 김자홍의 동생 김수홍의 이야기다.
중위와 관심사병. 이 둘은 같은 죄를 저질렀다할지라도 그에 대한 대처는 달랐다. 지킬 것도 많고, 더 가지려는 욕심도 많았던 박중위는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기를 썼고, 실수를 저지르고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던 관심사병 원동연은 뒤늦게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상황을 되돌려보려 애썼다.
양심은 개인이 가진 이기심의 정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유연성을 지녔다.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수치로도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이 죄를 저지르면 일단 처벌이 두려워 회피하려고 한다. 그리고 학습되어진 도덕적 양심을 바탕으로 후회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선택해야만 한다. 처벌을 감수하고 솔직해질 것인지, 자신을 무너뜨리기 싫어 이기적인 사람으로 남던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말이다.
앞서 인간의 죄는 인간이, 인간 중에서도 피해자가 벌한다고 했었다. 늦게라도 뉘우치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스스로를 벌하려고 했던 관심사병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얻었다. 이에 신은 그의 죄에 대해 무죄로 판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박중위는 끝까지 발뺌하려하다 화를 당한다. 물론 현생에서는 처벌받지 않고 넘어갈지라도 지옥 문을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양심은 작아지고 도덕보다는 이익을 쫓게 된다.
혹자는 이런 행태를 두고 영리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옥문 앞에서는 결코 그러한 판정을 받지는 못 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